윤여동설 - 고구려 시조 추모왕릉(주몽왕릉) 용산(龍山)의 위치 - 최초공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추모왕(주몽왕) 19년(B.C.19) 조를 보면,
"가을 9월 왕이 죽으니 이 때에 나이 40세(필자주 : 사실은 61세였다)였다.
용산(龍山)에 장사지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 주몽왕(추모왕)은 기원전 79년에 동부여에서 태어나 22세 때인 기원전 58년에 동부여에서 도망쳐 졸본으로 갔고, 그곳에서 졸본부여왕의 둘째공주와 혼인함으로써 부마가 되었다가 졸본부여왕이 죽자 그 왕위를 물려받았다.
그러다가 기원전 37년에 졸본부여의 국호를 고구려로 바꿈으로서 고구려의 건국시조가 되었고, 기원전 19년에 죽었으니 61세에 죽은 것이다.
그런데 주몽왕(추모왕)이 동명왕이 세운 졸본부여의 국호를 버리고 “고구려”라고 바꾼 것은 주몽왕 자신이 북부여 천제 해모수의 고손자였기 때문이었다.
호태왕 비문을 보면,
“遣黃龍來下迎王 王於忽本東岡黃龍負昇天(황룡을 내려보내 왕을 영접해가니 왕이 홀본 동쪽 언덕에서 황룡을 타고 승천하셨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추모왕의 능이 홀본(졸본) 동쪽에 위치한 용산(龍山)에 조성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그렇다면 졸본(홀본) 동쪽 용산(龍山)은 지금의 어디일까?
바로 위 사진이 졸본 동쪽 압록강변에 위치한 용산이다.
산의 형상이 용을 닮았다고 하여 옛 사람들은 그 산을 용산이라 불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