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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고구려의 비류수(沸流水)는 지금의 하북성 적성현의 홍하(紅河) - 최초공개

윤여동 2014. 1. 19. 15:25

 

윤여동설 - 고구려의 비류수(沸流水)는 지금의 하북성 적성현의 홍하(紅河) - 최초공개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의 위치]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시조 추모왕(주몽왕) 조를 보면,

  “졸본천[위서에는 흘승골성(紇升骨城)에 이르렀다고 하였다]에 이르러 그 지방의 토양이 비옥하고 산하가 험고함을 보고 곧 도읍을 정하였으나 미처 궁실을 지을 틈이 없어 비류수(沸流水)가에 초막을 짓고 살았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주몽이 동부여에서 도망쳐 졸본으로 와서 비류수라는 강변에 허름하게 집을 짓고 살았음을 알게 하는데, 지금까지 기록 속 “비류수(沸流水)”가 지금의 어느 강을 말하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

 

☆ 주몽은 북부여 해모수의 고손자였다.

  그 아버지 해불리지가 압록강가에서 어부(하백)의 딸 유화를 겁탈하여 잉태되었고, 유화의 아버지가 시집도 안간 처녀가 임신을 하였다 하여 집에서 쫓아내 유화는 동부여로 가서 주몽을 낳았다.

  그리고 주몽은 자라 동부여 왕궁의 말지기 노릇을 하였고, 예씨라는 여인과도 혼인을 하여 유리라는 아들이 임신 중일 때, 큰 사건에 연루되어 잡히면 죽을 지경에 이르자 그 어머니 유화와 부인 예씨를 동부여에 남겨두고 도망쳐 졸본으로 갔고, 그곳에서 아들이 없던 졸본부여 왕의 둘째 공주와 다시 혼인을 하였고, 왕이 죽자 그 왕위를 물려받아 졸본부여의 왕위에 올랐다가 기원전 37년에 이르러 국호를 고구려로 바꾸어 고구려의 건국시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중국 하북성 적성현 후성진 부근이 고구려의 첫 도읍 졸본(卒本 : 忽本) 임을 필자가 밝혀내었다.

  그렇다면 비류수는 지금의 후성진 부근을 흐르는 어느 강을 말할 것이다.

  위 지도를 보자.

  지금 후성진(졸본)으로 흘러드는 강은 백하(白河)와 홍하(紅河)이다.

  지금 백하는 독석구 부근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운주수고를 지나고 적성을 지나 홍하와 합류하여 후성진(졸본)에 도달하고, 다시 동쪽으로 백하보수고를 지나 흑하, 천하, 탕하 등을 합류하면서 밀운수고로 흘러들어 가는 강인데, 후한서 부여국 전을 보면, “부여국은 현토의 북쪽 1천여리에 있다. 남쪽은 고구려, 동쪽은 읍루, 서쪽은 선비와 접했고, 북쪽에는 약수가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지에도 동일한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주몽이 동부여에서 도망쳐 졸본으로 올 때 건넌 강이라는 엄호수(혹은 엄수, 엄리대수라고도 하고, 혹은 마자수, 개사수라고도 한다)가 지금의 백하(白河) 상류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록이다.

  그런데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를 보면, 동부여에서 졸본으로 도망쳐 와서 비류수 가에 자리 잡은 주몽이 비류수 중류에 채소 잎이 떠내려 오는 것을 보고는 그 상류에 사람이 살겠구나 생각하고 비류수를 따라 올라가 송양의 비류국(沸流國)에 이르렀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이 말은 지금의 홍하(紅河)가 곧 비류수(沸流水)였다는 말과 같고, 그 상류인 지금의 적성현 용관진(龍關鎭) 부근이 곧 옛 송양의 나라 비류국의 도읍이 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그 후 송양은 비류국을 주몽에게 들어 바치고 다물후(다물국왕)가 되고, 또 그 두 딸을 유리왕과 혼인시키기도 하며 고구려 초기 정치의 중심세력(필자주 : 소노부, 연노부, 서부라고도 한다)이 되었다.

 

  그리고 삼국사기 열전 개소문 조를 보면, “그의 아버지 동부대인(혹은 서부대인이라고도 한다) 대대로가 죽으매 개소문이 응당 뒤를 이어야 했으나..........” 라고 기록되어 있어 그가 고구려의 동부 혹은 서부 사람 임을 알 수 있는데,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영류왕 25년(A.D.642) 조를 보면, "왕이 서부대인 개소문에게 명령하여 장성을 쌓는 역사를 감독하게 하였다. 겨울 10월에 개소문이 왕을 죽였다” 라고 기록하고 있어 개소문이 서부(소노부) 출신 임을 알게 한다.

  그렇다면 개소문의 조상들은 원래 졸본, 또는 비류국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