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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고구려 초기 조나(藻那)와 주나(朱那)의 추정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 2014. 4. 26. 18:43

윤여동설 - 고구려 초기 조나(藻那)와 주나(朱那)의 추정위치 - 최초주장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6대 태조대왕 20년(A.D.72) 조를 보면, “봄2월 관나부(貫那部 = 灌奴部) 패자(沛者) 달가(達賈)를 보내 조나(藻那)를 쳐서 그 왕을 사로 잡았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 고구려 13대 서천왕의 동생 이름도 달가(達賈)로 나타나는데, 동명이인이다.

 

  같은 책 태조대왕 22년(A.D.74) 조를 보면, “겨울10월 왕이 환나부(桓那部 = 順奴部) 패자(沛者) 설유를 보내 주나(朱那)를 쳐서 그 왕자 을음을 사로 잡아 고추가를 삼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 기록 속 조나와 주나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태조대왕은 평생에 강역을 많이 넓혀 고구려의 기초를 튼튼하게 닦았는데. 특히 북쪽, 동쪽으로 강역을 넓히는데, 심혈을 기울인 왕이다.

  태조대왕 4년(A.D.56) 조를 보면, "가을7월 동옥저를 쳐서 그 땅을 빼앗아 성읍을 만들었다. 이리하여 고구려의 강역을 동쪽으로는 대해까지, 남쪽으로는 살수에 이르르도록 확장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그 후에는 동예와 맥을 복속시키는데 국력을 집중하였고, 동예에 책성을 설치하기도 한다.

 

☆ 삼국지 동옥저전을 보면, "동옥저는 나라가 작고 큰 나라 사이에 끼어 있어 마침내 고구려의 신하가 되었다. 고구려가 대인을 사자로 삼아 다스리게 하였다. 또 대가로 하여금 조세로서 담비가죽, 포, 소금, 해산물 등을  거두어 천리나 쳐 나르게 하고, 또 동옥저의 미인을 보내게 하여 비첩으로 삼았는데, 그들을 노복처럼 대우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조나(藻那)의 "조(藻)"는 해초 즉 미역, 다시마 등을 나타내는 글자이고, 이때 고구려는 동옥저를 차지함으로써 동쪽 국경이 바다에 닿았다고 하였으므로 이 조나는 동쪽 바닷가에 위치하여 미역 등 해초를 생산하던 나라였을 것이고,  주나 역시 조나 부근에 위치했던 조그만 소국이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 위치를 알 수 없었던 조나와 주나는 태백산 동쪽 동옥저와 동예, 맥 지역 부근에 위치했던 나라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