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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태조(太祖) 성한왕(星漢王)은 투후 김일제의 고손자 김성(金星) - 최초주장

윤여동 2014. 5. 31. 17:17

윤여동설 - 태조(太祖) 성한왕(星漢王)은 투후 김일제의 고손자 김성(金星) - 최초주장

 

 

                                         휴도왕(休屠王)

                                            ↓

                                  투후 김일제(金日磾)

                                           

                    .......................,.....................................

                   ↓                                   ↓

           투후 김상(金賞)                        김건(金建)

                   ↓                                   ↓

           투후 김상(金尙)                        실명

                   ↓                                   ↓

           투후 김국(金國)         →      투후 김당(金當)

                     (절손)              (김당은 왕망(B.C.45년생)과 이종사촌간으로서

                                               나이도 비슷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김당은 왕망과 함께

                                                    한(漢:전한)을 없애고

                                                    신(新)을 건국하는데 적극

                                                          가담하게 된다)                                                                   

                                                                       

                                                  투후 김성(金星)

                                                  (이 사람이 바로 성한왕(星漢王)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 투후는 지금의 산동성 하택시 부근을 봉지로 하사받은 제후를 말하는 것인데, 김일제는 죽기 직전 투후의 작위를 받았고, 아들 김상(金賞), 손자 김상(金尙), 증손자 김국(金國), 증손자 김당(金當), 고손자 김성(金星)으로 세습되었다.

  그리고 김일제의 동생인 김윤(金倫)은 일찍 죽었다고 하고, 그의 아들 김안상(金安上)을 성도후(成都候)에 봉했는데, 이후 세습하여 김안상의 아들 김상(金常), 손자 김흠(金欽), 증손자 김탕(金湯)으로 이어졌다. 지금의 사천성 성도부근에 봉해졌던 듯하다.

 

  왕망의 신(新)나라는 서기 9년으로부터 약 15년간 존속했던 나라였다.

  그런데 서기 23년 10월에 이르러 후한 광무제가 왕망을 잡아 죽이고 나라를 되찾게 되자 광무제는 왕망을 따르던 잔존세력을 제거하게 된다.

  왕망과 함께 신나라를 건국하고 핵심적 역할을 하다가 죽었을 투후 김당(金當 : 투후 김일제의 증손자)의 아들 김성(金星)이 이끄는 무리들은 이제는 쫓기는 신세가 되어 후한 광무제의 힘이 미치지 않는 어디론가로 도망치는 길 만이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급히 가재도구와 재물을 챙겨 투현에서 배를 타고 가까운 황하를 타고 내려와 일단 요동(遼東)으로 도망치게 되는데, 요동은 지금의 북경 부근을 말하는 것이다.

  그랬다가 일부는 요동 즉 지금의 북경부근에 남아 숨어살게 되고, 김성(金星)을 따르는 무리는 요동이 영구히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땅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하고 다시 요동을 출발하여 한반도로 향하게 되었을 것이다.

 

☆ 대당고김씨부인묘명이 발견되었는데, 묘지명에 김씨부인이 투후 김일제의 후손으로서 난리통에 요동으로 도망쳐 숨어살았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그들이 요동을 출발할 때가 북서풍이 부는 겨울철이었으므로 지금의 북경, 부근에서 배를 타고 출발하여 발해연안을 따라 산동반도를 돌아 동남쪽으로 향하여 서해(황해)를 가로질러 한반도의 남해안 낙동강 하구에 도착했던 듯하다.

  그리하여 일부는 김해, 고령, 경주 부근에 정착하여 나라를 세웠을 것으로 판단되는데, 국호가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는 투후 김성(金星)을 초대 왕으로 추대하였을 것인데, 이가 곧 “성한왕(星漢王)”으로 비정되는 인물이다.

  그의 이름자 “성(星)”과 한나라의 “한(漢)”을 조합한 것이 아닌가 싶다.

  어떤 사람들은 성한왕이 곧 신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와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김알지는 서기 65년생(삼국사기)이고, 성한왕 김성은 기원전 30년경생이다. 따라서 성한왕이 김알지 일 수는 없는 것이다.

 

☆ 왕망과 함께 신나라를 세웠던 사람들이 신(新)을 사용하지 않고, 한(漢)을 시호로 사용한 것을 보면 옛날 한 무제가 투후 김일제에게 베푼 은혜를 잊지 않고 있었던 듯하다.

            

                                                                                 

 

  경주에서 발견된 신라 문무왕비편이라 하고 있는 비석 조각 명문을 보면,

  “秺侯 祭天之胤 傳七葉...........(투후 제천지윤 전칠엽 : 투후 제천지윤으로부터 일곱 후손에게 전해져............)” 

  “(二)十五代祖 星漢王

         십오대조 성한왕(필자주 : 二十五에서 二가 탈락되었을 것이다)”이라는 명문이 보인다.

  그렇다면 이 비석의 주인공은 성한왕 김성의 십오(이십오)세손이라는 말이 되므로 성한왕 김성이 세운 나라가 정상적으로 부자간 왕위계승을 했다면 이 비석의 주인공은 성한왕 김성이 세운 나라의 16(26)대왕이 된다.

  따라서 비석을 세울 때 이 왕국은 400(600)여년 정도 존속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비문 속 十五代祖 星漢王은  二十五代祖 星漢王에서 二 자가 탈락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또 흥덕왕릉이라고 전하는 곳에서도 "태조성한(太祖星漢)"이라고 새겨진 비편이 발견되었고, 성한왕의 24대손이라는 명문도 발견되었다. 따라서 이 성한왕이 세운 왕국이 최소한 600년 정도는 정상적으로  유지되었을 것으로는 추정이 가능한데 그 후 언제까지 존속되었는지, 어떻게 멸망했는지, 또 어떻게 다른 왕조로 변천이 되었는지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지금으로서는 잘 알 수가 없다.

 

 

           [위 : 황남대총 출토금관]

 

 

          [위 : 유목민들이 사용하던 오르도스형 동복]

 

 

[태조성한(太祖星漢) 명문 비편]

 

 

              [동복을 말등에 실은 유목민 모습의 기마인물형토기]

 

[한반도에서도 많이 출토되는 왕망 때의 화폐인 화천(貨泉)]

 

                                    [이상하게도 서역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경주 괘릉의 무인상]

 

☆ 이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한반도 남부지역에 건설되었던 성한왕(星漢王)을 건국시조로 하는 왕국에 대한 기록들이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고, 왜 왕릉의 비석들이 깨어진 것인지 매우 이상한 일이다. 혹시 이들은 강한 세력의 침공을 받고 멸망하게 되자 한반도를 떠나 또 한번 다른 곳(혹시 지금의 일본열도로?) 으로 이주해 갔던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왕조에 대한 기록들이 불태워졌고, 왕릉들의 비석들도 모두 깨어져버렸던 것은 아닐까?

 

  지금 한반도 경주지역에 있는 고대 왕릉들을 무조건 신라와 연관시켜 해석하려 하지 말고, 흉노족이었던 투후 김일제의 고손자인 성한왕 김성이 세운 나라에 포커스를 맞추어 새롭게 해석해 보면 아리송하기만 한 경주 부근에 산재해 있는 고대 왕릉들의 정체를 밝힐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 경주나 김해, 고령 지역에 산재해 있는 고분들에서 출토되는 유물들이 한결같이 유목민족인 흉노문화와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흉노와 연관이 있을 것인데, 역사상 흉노족이 멀리 떨어진 한반도까지 망명해 올 수 있는 계기는 왕망의 신나라가 멸망한 때 밖에 없기 때문이고, 지금 경상도 지방의 언어가 중국어와 비슷한 억양을 가지고 있는 것도 결코 우연 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