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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북한산(北漢山), 대야성(大耶城)의 위치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 2014. 9. 5. 19:15

윤여동설 - 북한산(北漢山), 대야성(大耶城)의 위치 찾기 - 최초주장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 16년(A.D.555) 조를 보면,

  “겨울10월 왕이 북한산(北漢山)을 순행하고 국경을 넓혀서 정하였다.

  11월에 왕이 북한산으로부터 돌아와 교서를 내려 지나온 주와 군에 1년간 세금을 면제해 주고 지방 죄수들로서 중죄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면하여 주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 학자들은 이때 진흥왕이 북한산을 순수하고 순수비를 세웠을 것이라고 하는데, 어느 곳에도 순수비를 세웠다는 기록은 나타나지 않고, 지금 서울 북한산의 옛 비석을 진흥왕북한산순수비라고도 하는데, 실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때 진흥왕이 순수했던 진짜 북한산은 발해 북쪽 진황도에 있는 지금의 도산(都山)이었는데, 엉뚱하게 한반도의 서울 북한산에 순수비를 세웠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 2년(A.D.642) 조를 보면,

  “8월 장군 윤충을 보내 군사 1만을 거느리고 신라의 대야성(大耶城)을 치니 성주 품석이 처자를 데리고 나와 항복하였는데, 윤충이 그들을 모두 죽여 목을 베어 사비에 전달하고 남녀 1천여명을 사로잡아 나라 서쪽 주, 현들에 흩어져 살게 하고 군사를 머물러 두어 그 성을 지키게 하였다. 왕이 윤충의 공로를 표창하여 말20필과 곡식 1천석을 주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까지 대야성이 어디인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물론 이는 대륙의 기록을 한반도에 비정하여 그 위치를 찾으려 하기 때문인데, 실제 신라와 백제는 한반도가 아니라 지금의 발해 북쪽, 북경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백제는 난하 중, 하류를 중심으로 하는 그 부근이었고, 신라는 산해관 동북쪽 요녕성 금주시(錦州市)를 중심으로 하는 그 부근이었으며, 북한산은 지금의 진황도 도산(都山)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당시 신라와 백제말기의 국경은 지금의 요녕성 호로도, 흥성 부근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위 삼국사기 기록 속 대야성전투는 당시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을 지금의 요녕성 호로도시 대홍라산 부근에서 일어났던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