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백제 한산부아악(漢山負兒嶽)의 위치 공개 - 최초공개
삼국사기 백제본기 시조 온조왕 조를 보면,
“.............이리하여 한산(漢山)에 이르러 부아악(負兒嶽)에 올라서 살만한 곳을 살피다가 비류가 바닷가에서 살고 싶어 하니 열 신하가 간하여 말하기를 ‘이 하남의 땅은 북대한수(북쪽으로 한수가 띠를 두르고)하고, 동거고악(동쪽은 높은 산이 있으며) 하며, 남망옥택(남쪽으로는 평야가 바라보이고)하고, 서조대해(서쪽은 대해로 막혀 있으니)하니 그 천험의 지리가 얻기 어려운 지세이오니, 이곳에 도읍을 정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였으나 비류가 그를 듣지 않고 그 백성들을 나누어 미추홀(弥鄒忽)로 돌아가 살았다.
온조는 하남위례성(필자주 : 한수 남쪽의 위례성이라는 의미)에 도읍을 정하고 열 신하로서 보좌를 삼고 나라 이름을 십제라 하니 이때가 전한 성제 홍가 3년(B.C.18)이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 위 기록을 보면 소서노와 비류, 온조는 졸본을 떠나 한산 부근으로 와서 처음 자리 잡은 곳이 미추홀 부근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부아악에 올랐다가 “비류가 듣지 않고 미추홀로 돌아가 살았다”고 기록했을 것이고, 건국설화에서도 처음에 비류와 온조가 패수와 대수를 건너 미추홀에 와서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개의 중국 사서들에는 “백제가 대방 옛땅에서 건국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사실 백제는 대방 옛땅에서 건국되지 않았고, 한산(漢山) 부근에서 건국되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산부아악(漢山負兒嶽)이 어디를 말하는지 찾게 되었고, 백제의 초기도읍 위례성(慰禮城)을 찾으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무도 그를 정확히 찾아내지 못하고 이곳일 것이다 저곳일 것이다 하면서 주장들만 난무하게 되었던 것인데, 이는 난하, 도산 부근이 아닌 한반도에서 부아악과 위례성을 찾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논란에서 벗어나 우리 역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고 재정립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많은 역사학자들 조차도 우리의 백제가 한반도에서 건국되어 그 역사를 이었을 것으로 착각했지만 사실 삼국사기 기록 속 백제는 지금의 중국 하북성 당산과 진황도를 중심으로 존재했던 나라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