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조조의 노룡새(盧龍塞)는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공개
[발해 해수면 20m 상승시 발해연안 지형변화도]
조조가 요서 오환을 정벌할 때 지났다는 곳이 그 유명한 “노룡새(盧龍塞)”라는 곳인데, 아직까지 아무도 그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한다.
☆ 많은 사람들이 노룡새의 위치를 아직까지 찾지 못한 것은 지금의 요하 서쪽을 요서군으로 인식하고, 난하부근을 우북평군으로 인식하고는 그 부근에서 노룡새를 찾으려 했기 때문이었는데, 사실 옛 요수는 지금의 영정하로서 원래의 요서군은 지금의 북경 서남쪽 방산 부근을 말하는 것이다.
207년 2월에 이르러 조조는 업성을 출발하여 북쪽으로 향하여 5월에 우북평군의 무종(無終)에 도착하게 된다.
그런데 홍수로 요서로 가는 도로가 불통이었기 때문에 난감한 상황이 되었는데, 이때 전주라는 사람이 노룡새를 넘는 옛 샛길이 있다고 하면서 자기가 안내하겠다고 자청하여 조조는 전주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노룡새를 넘었으나, 역시 도로가 불통이었다.
그리하여 이때 우회공격로를 개척하게 되는데, 산을 파내 계곡을 메꾸어 500여리 길을 만들며, 백단(白檀), 평강(平剛), 선비정(鮮卑庭)을 경유하여 유성(柳城)을 향하여 진군하게 된다. 아마 지금의 자형관 부근으로부터 거마하를 따라 길을 만들어 탁주 부근으로 나아가 유리하 부근으로 향했을 것이다.
☆ 유성은 옛 고죽국이 있던 곳으로서 지금의 북경 서남쪽 방산 유리하진 부근이다.
8월에 백랑산(白狼山)에 이르러 전투를 하여 승전하게 되고,
9월에 군사를 이끌고 개선하면서 유성에 이르러 전투에 공이 있는 사람들에게 논공행상을 하고,
11월에 역수(지금의 역현 부근)를 건너고,
208년 1월에 도읍인 업성으로 개선하게 된다.
개선할 때 조조가 갈석산(碣石山)에 올라 읊었다는 관창해(觀滄海)라는 시가 지금까지 전해진다.
☆ 요동군은 지금의 북경 부근을 말하고, 갈석산은 지금의 하북성 보정시 서북쪽에 위치한 낭아산으로 비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