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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발해(대진국)는 왜 멸망했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 2015. 4. 18. 07:48

윤여동설 - 발해(대진국)는 왜 멸망했을까? - 최초주장

 

 

[신당서 발해전을 보면, 용원(동경용원부)은 일본으로 갈 때 이용하는 길이고, 남해(남경남해부)는 신라로 갈 때 이용하는 길이며, 압록(서경압록부)은 중국으로 갈 때 이용하는 길이며, 부여는 거란으로 갈 때 이용하는 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발해(대진국)의 멸망원인은 지금까지 미스테리였다.

  백두산 화산폭발 때문에 갑자기 멸망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으나 화산이 아무리 강하게 폭발했다고 하더라도 발해처럼 사방 5천리에 이르렀다는 큰 나라가 그로인하여 멸망했을 것이라는 주장은 말이 되지를 않고사실 발해는 지금의 백두산 부근에 위치하고 있지도 않았었다

  발해(대진국)는 지금의 내몽골 파림우기 부근에서 건국되었는데, 그 곳이 중경현덕부(中京顯德府)였고,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는 지금의 파림좌기였다.

 

[지금 중국에서는 위 파림좌기 고성터를 요나라의 상경임황부라고 하고 있는데, 사실 이곳은 발해의 상경용천부였다. 그러다보니 발해 때의 유물들이 졸지에요나라 때의 유물로 둔갑되어 해석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발해는 926년 대인선 때 거란의 침공을 받고 왕이 포로로 잡혀 멸망했다고 전해져 왔는데, 발해의 멸망과 관련된 구체적인 기록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살펴보면,

 

  발해가 거란을 속국으로 삼았고 그 부족민을 받아들여 중앙관리로 임명하였는데, 그 중 야율아보기를 5성대장군(五城大將軍)으로 삼고 거란을 담당하게 하였다. 거란에는 10만의 충성스런 군사가 있었다..................

대장군 야율아보기가 상경성에 입성하여 궁성을 습격하여 황제를 포로로 잡았고, 국호를 요국(遼國)이라 하고 진국(발해)의 관리를 그대로 등용하였다.[고려국지]

 

  916년에 발해의 애종황제는 거란출신의 야율아보기를 5성대장군 요왕(遼王)에 봉하였다...............

  9265성대장군 야율아보기가 정국이 혼란한 틈을 타 10만 대군을 이끌고 상경성에 입성하였고, 황제에게 양위를 강요하여 인새를 받아냈다[고려사력]

 

  926년 야율아보기가 상경성에 입성한 후 홀한성(忽汗城 : 발해 상경용천부)에서 요양 중인 황제에게 양위를 강요하였다[왜인흥망사]

 

위 기록을 보면, 발해는 황제국이었음이 확실하다.

 

  위와 같이 발해는 화산 폭발로 멸망한 것이 아니라 거란족인 야율아보기를 5성대장군 요왕으로 봉했다가 그가 쿠데타를 일으켜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상경용천부를 공격하여 입성한 후 발해황제(애종 대인선)를 포로로 잡고 겁박하여 강제로 황위를 양위 받았고, 국새를 빼앗았던 것이다.

 

위 기록 속 야율아보기의 행동을 보면, 옛날 연나라 사람 위만이 고조선으로 망명한 후 고조선 서쪽 변방의 제후로 봉해지고 점점 세력이 강해지자 왕검성을 공격하여 준왕을 내쫓고 스스로 조선(위만조선)의 왕위에 오른 장면이 떠 오른다.

 

  이렇게 해동성국 발해는 멸망하고 말았고, 새로운 나라 요()나라가 건국되었는데, 요나라는 936년에 다시 석경당을 도와준 대가로 후진(後晋)으로부터 연운 16주를 할양받아 대제국으로 발돋움하게 되는데, 후일 993년에 거란이 고려를 침공했을 때, 거란의 소손녕이 서희에게 말하기를,  “너희 나라는 신라 땅에서 일어났고, 고구려 땅은 우리의 소유인데 너희 나라가 이를 침식하고 있다. 우리와 국경을 접하고 있음에도 바다 건너 송나라를 섬기니 이 때문에 와서 죄를 따지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땅을 떼어 바치고 조빙한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하자,

  고려의 서희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는 바로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이다. 그리하여 나라 이름도 고려라 하고 평양에 도읍(서경)한 것이다. 만약 땅의 경계를 논한다면 거란의 동경(필자주 : 동경요양부로서 지금의 북경부근)이 바로 우리의 지경에 있는데 어찌 우리가 침식했다고 한단 말인가?” 라고 응수하였다고 고려사에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