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금 6경과 고려의 위치 - 최초공개
발해(대진국)가 926년에 거란(요)에게 멸망한 지 189년이 지난 1115년에 이르러 다시 여진족 완안 아골타가 여진을 통합하고 나라를 세워 옛 발해의 상경용천부에 도읍하고 회령[會寧 : 지금의 내몽골 파림좌기 부근으로 비정된다]이라 하고, 국호를 금(金)이라 하게 된다.
그리고는 1125년에 서남쪽의 요나라를 멸망시킨 후,
건국지인 회령을 상경회령부[옛 발해의 상경용천부인 파림좌기이다]라 하고,
요나라 때의 중경대정부를 북경대정부[지금의 화초영진 부근으로 비정된다]라 하고,
요나라 때의 남경석진부는 중도대흥부[하북성 역현 부근으로 비정된다]라 하고,
요나라 때의 서경대동부는 그대로 서경대동부[산서성 대동이다]라 하고,
요나라 때의 동경요양부 역시 그대로 동경요양부[북경이다]라 하고,
북송의 개봉을 남경개봉부[하남성 개봉이다]라 한다.
☆ 금나라는 개봉을 침공하여 빼앗은 후 송 휘종과 흠종을 비롯하여 황족 등 3,000여명을 포로로 잡아 금나라 장백산 동쪽의 오국성으로 옮겨 억류하였다.
[금6경]
상경회령부
(上京會寧府)
북경대정부
(北京大定府)
서경대동부 중도대흥부 동경요양부
(西京大同府) (中都大興府) (東京遼陽府)
(연경)
남경개봉부
(南京開封府)
그런데 지금 이 금나라 때의 6경 중 그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곳은 남경개봉부(지금의 하남성 개봉)와 서경대동부(지금의 산서성 대동) 뿐이고, 나머지 금 4경 즉 상경회령부, 북경대정부, 중도대흥부, 동경요양부는 지금까지 그 확실한 위치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 물론 지금 중국학자들은 금나라 때의 북경대정부는 지금의 내몽골 영성, 중도대흥부는 북경, 동경요양부는 요녕성 요양이라 하지만 어림없는 주장이다. 기본적으로 발해, 요, 금, 고려의 위치 자체가 틀렸다.
그런데 이제 필자가 금 6경의 위치를 찾아 공개하는 것이다.
이제 고려사 속 금나라와 고려의 접촉기록을 아무런 무리없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