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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백제초기 왕위계승의 비밀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 2015. 11. 1. 17:48

윤여동설 - 백제초기 왕위계승의 비밀찾기 - 최초주장 

 

                       졸본부여 건국시조 동명왕

                 ..................................|.............................

                     ↓                                                 ↓

       2대 부여무서왕                                      ?(실명)

                    ↓부마(사위)                          

고구려 건국시조 주몽왕(추모왕)              부여우태 = 소서노 (B.C.66년생)

                                                   ......................|....................

                    ↓                                         ↓                                  ↓

               유리왕                                  비류             백제 건국시조   온조왕

 

 

온조왕은 졸본부여 건국시조 동명왕의 후예이고, 주몽왕(추모왕)은 북부여 건국시조 천제 해모수의 후예로서 서로 혈통이 다르다.

 

  백제시조 온조왕의 어머니 소서노는 기원전 66년생이었다.

  따라서 그녀가 20세쯤에 장자인 비류를 낳았다면 비류는 기원전 47년생이 되고, 2년 후쯤 다시 둘째인 온조를 낳았다면 온조는 기원전 45년생이 된다.

 

비류와 온조는 한날 한시에 태어난 쌍둥이 형제였을 가능성도 많다.

 

  그렇다면 이로부터 백제초기 왕위계승의 의문을 풀어보기로 하자.

  우선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기록에 따라 백제 초기 왕위계승도를 그려보면 아래와 같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초기 왕위계승]

 

  시조 온조왕[재위46B.C.18-A.D.282, 생몰 B.C.45-A.D.28 73세훙}

             ↓온조왕의 원자

   2대 다루왕[재위50A.D.282-779]

             ↓다루왕의 원자

   3대 기루왕[재위52A.D.779-12811]

             ↓기루왕의 아들

   4대 개루왕[재위39A.D.12811-166]

             ↓개루왕의 아들

   5대 초고왕[재위49A.D.166-214]

             ↓초고왕의 장자

   6대 구수왕[재위21A.D.214-234]

             ↓구수왕의 장자

   7대 사반왕[A.D,234년에 왕위에 올랐으나 나이가 어려 곧 폐위되고 8대 고이왕이 왕위에 올랐다]

 

 

[가정1] 백제의 초기 왕들이 늦둥이 아들을 낳았을 경우

 

 

  삼국사기는 백제의 건국시기를 기원전 18년으로 기록하고 있고, 소서노의 출생년도를 기원전 66년으로 기록하고 있으므로 백제를 건국할 때 온조왕의 나이는 28세쯤이었고, 그는 재위 46년째인 서기 282월에 죽었다. 따라서 온조왕은 약 73세쯤에 죽었음을 알 수 있다.

  온조왕의 뒤를 이어 2대 다루왕이 왕위에 올랐는데, 삼국사기는 다루왕이 온조왕의 원자 즉 장자라 기록되어 있고, 그는 왕위에 올라 재위 50년에 죽었다. 따라서 다루왕이 정말로 온조왕의 장자라면 온조왕은 50세쯤의 나이에 늦둥이 아들을 얻어 왕위를 물려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다루왕의 뒤를 이은 3대 기루왕에 대하여 삼국사기에는 기루왕은 다루왕의 장자이다. 그의 의지와 식견이 넓고 원대하여 사소한 일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다루왕 재위 6년에 태자로 책봉되었고, 50년에 왕이 죽어 왕위를 이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기루왕은 태자로 책봉되고 나서도 무려 44년이 지난 후에야 왕위에 올랐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그의 재위 기간이 무려 52년이나 되고, 서기 12811월에 죽었다.

  삼국사기 기록대로라면 그 아버지로 기록되고 있는 다루왕이 70여세 정도에 죽었을 때 장자인 기루왕은 적어도 50세 이상 되었을 것인데, 재위기간이 52년이니 기록대로라면 기루왕은 약 100세도 넘게 살았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기루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4대 개루왕이 기루왕의 아들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4대 개루왕은 재위 39년인 서기 166년에 죽었다.

  그 아버지 기루왕이 약 100여세에 죽었고, 4대 개루왕이 정말로 그의 아들이라면 기루왕은 70여세쯤에 늦둥이 아들을 얻었다고 할 수 있고, 개루왕이 왕위에 오를 때 30세쯤의 나이였고, 70세쯤 죽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삼국사기는 또 개루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5대 초고왕을 개루왕의 아들이라 기록하고 있고, 초고왕은 재위 49년인 서기 21410월에 죽었다.

  그 아버지인 개루왕이 70세쯤에 죽었다면, 이 개루왕도 50세쯤의 나이에 늦둥이 아들을 얻었고. 초고왕이 왕위에 오를 때 20세 정도였을 것이고, 재위기간이 49년이었으니 초고왕은 70세쯤에 죽었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또 초고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6대 구수왕은 초고왕의 장자로 기록되어 있고, 그는 재위 21년인 서기 234년에 죽었다.

  그런데 그 아버지로 기록되고 있는 초고왕이 70세쯤에 죽었고, 구수왕이 초고왕의 장자라면 초고왕 역시 약 50세쯤에 늦둥이 아들을 낳았다고 할 수 있고, 구수왕이 왕위에 오를 때 20세쯤의 나이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구수왕은 재위 21년에 죽었으니 구수왕은 40여세쯤에 죽었다는 말이 되고, 구수왕의 뒤를 이어 잠깐 왕위에 올랐던 사람은 구수왕의 장자로 기록되어 있는 7대 사반왕이었다.

  그런데 8대 고이왕 조를 보면, “고이왕은 개루왕의 둘째 아들이다. 구수왕이 왕위에 있은 지 21년에 죽고 그의 장자 사반이 왕위를 이었으나 나이가 어려 정사를 처리할 수 없으므로 초고왕의 동복아우 고이가 왕위에 올랐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6대 구수왕이 40여세 정도의 나이로 죽었을 때 그 아들 사반이 매우 어렸다는 것이다.

  나이가 어렸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몇 살을 말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약 5-10세 정도라고 보았을 때 그 아버지 구수왕이 30여세 정도에 사반을 낳았다고 볼 수 있다.

 

[가정2] 백제 초기 손자가 할아버지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았을 경우

 

[윤여동설]

 

  시조 온조왕(재위46B.C.18-A.D.282)

             ↓

            자(실명) : 온조왕보다 먼저 죽었다

             ↓

   2대 다루왕(재위50A.D.282-779)

             ↓

            자(실명) : 다루왕보다 먼저 죽었다

             ↓

   3대 기루왕(재위52A.D.779-12811)

             ↓

            자(실명) : 기루왕보다 먼저 죽었다

             ↓

   4대 개루왕(재위39A.D.12811-166)

             ↓

   5대 초고왕(재위49A.D.166-214)

             ↓

   6대 구수왕(재위21A.D.214-234)

             ↓

            자(실명) : 구수왕보다 먼저 죽었다

             ↓

   7대 사반왕 : A.D.234년에 5-10세쯤의 나이로 왕위를 계승했으나 8대 고이왕에게 찬탈 당했다.

 

 

  필자는 백제의 초기 왕들이 손자에게 왕위를 직접 물려주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물론 백제의 초기 왕들에게도 아들이 있었지만 그 아버지 보다 먼저 죽어 왕위를 이을 수 없었고,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손자에게 왕위를 전하게 되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렇게 볼 경우 백제 초기의 왕위 계승 기록을 무리 없이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즉 시조 온조왕이 73세쯤으로 죽었을 때 그 장자는 적어도 40-45세쯤은 되었을 것인데 일찍 죽었을 것이고, 손자 다루가 10-15세 정도에 그 할아버지 온조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아 재위 50년에 60-65세에 죽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2대 다루왕의 아들은 일찍 죽고, 손자인 기루가 그 할아버지 다루왕으로부터 10여세에 왕위를 물려받아 재위 52년에 60-65세로 죽는다.

  다시 3대 기루왕의 아들은 일찍 죽고, 손자인 개루가 그 할아버지 기루왕으로부터 10여세에 왕위를 물려받아 재위 39년에 50여세로 죽는다.

  그리고는 4대 개루왕의 아들 초고가 그 아버지 개루왕으로부터 20여세쯤에 왕위를 물려받아 재위 49년에 70세쯤으로 죽고,

다시 5대 초고왕의 아들 구수가 그 아버지 초고왕으로부터 40여세에 왕위를 물려받아 재위 21년에 60여세로 죽는다.

  그런데 다시 6대 구수왕이 60여세로 죽었을 때 그 아들은 일찍 죽었고(살아 있었다면 30-35세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손자 사반이 5-10세 정도에 그 할아버지 구수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아 잠깐 왕위에 올랐으나 7촌 재당숙부인 고이에게 곧 왕위를 찬탈 당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는 고이왕에 대하여 개루왕의 둘째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개루왕의 장자로 기록되어 있는 초고왕은 A.D.166년에 왕위에 올라 재위 49년인 214년에 70세쯤의 나이에 죽었다. 따라서 고이왕이 실제로 개루왕의 둘째 아들이라면 초고왕과 비슷한 시기를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고이왕이 사반왕으로부터 왕위를 찬탈한 때가 A.D. 234년이었고, 재위 기간이 53년이었으니 고이왕이 개루왕의 둘째 아들이 아님은 명백하고, 필자가 보기에 고이왕은 개루왕의 둘째 아들(공손도의 딸과 혼인했다고 사서에 기록되어 전하는 구태로 추정된다)의 손자로서 사반왕의 7촌 재당숙부였을 것이다.

재당숙부가 나이어린 조카로부터 왕위를 찬탈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필자는 고이왕을 백제판 수양대군이라 부른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늦둥이설과 손자왕위계승설로 나누어 볼 수 있고, 또 두 설이 혼합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초기 왕위계승 기록이 비록 약간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세밀하게 검토해보면 충분히 설명이 가능한데도, 일부 역사학자들은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초기 기록을 부정하며 백제의 건국시기를 뒤로 미루어 한참 후대로 보려 한다는 것을 필자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