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우리 역사해석의 핵심은 고대의 요동군(遼東郡) 찾기 - 최초주장
[위 기주협우갈석도 상 어양군, 우북평군, 상곡군은 그 위치가 잘못 배치되어 있다]
우리의 고대 역사는 요동군(遼東郡)이 어디였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지게 된다.
요동군의 위치를 올바르게 찾는 것이 바로 우리 역사해석의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구려와 백제는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위치하고 있었고, 고구려의 졸본, 국내성, 환도성, 평양성과 백제(대륙백제)의 위례성, 미추홀, 한성, 남한성도 그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고, 신라, 가야는 백제의 동쪽 또는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따라서 삼한인 마한, 진한, 변한도 그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고, 위만조선도 그 부근에 있었고, 한사군도 그 부근에 있었다.
옛날 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침공할 때 순체는 요동에서 출발했고, 양복은 제(지금의 산동반도)에서 출발하여 발해를 건넜다.
그리고 수양제는 고구려를 침공할 때 군사들을 탁군(지금의 탁주시)에 집결시켜 요동을 향하여 진군하였고, 평양성까지 갔으나 결국은 패전하였고,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침공했을 때에도 정주(定州)에서 출발하여 갈석을 지나 요택과 요수를 건너 요동성을 함락시킨 후 요동성에서 가까운 안시성까지 갔으나 그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결국 철군하고 말았다.
고대에 지금의 요동반도는 요동군이 아니라 옛 왜국이었다. [지금 이를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지금의 요동은 명나라 초쯤 지명을 이동시킨 결과로 보인다.
그렇다면 고대의 요동군은 과연 지금의 어디였을까?
고대의 요동은 지금의 “북경부근”이었음이 확실하고, 요수는 지금의 영정하였음이 또한 확실하다.
토달지 말고 스스로 사서의 요동군 관련 기록을 지금의 북경 부근에 맞추고 역사서를 해석해 보면 모든 의문이 풀릴 것이다.
2016년에는 우리 모두 힘을 합쳐 고대의 “요동군(遼東郡)”을 확정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