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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신라에서 “군주(軍主)”라는 명칭은 진짜 언제부터 사용했던 것일까?

윤여동 2016. 1. 15. 20:50

윤여동설 - 신라에서 군주(軍主)”라는 명칭은 진짜 언제부터 사용했던 것일까?

 

 

 

  삼국사기 신라본기 9대 벌휴이사금 2(A.D.185) 조를 보면,

  “2월에 파진찬 구도와 일길찬 구수혜를 임명하여우 군주(軍主)로 삼아 소문국을 쳤다. 군주라는 명칭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7(A.D.190) 조를 보면,

  "가을 8월 백제가 서쪽 국경 원산향을 습격하고 또 나아가 부곡성을 포위하므로 구도가 강한 기병 5백을 거느리고 나가 치니 백제군사가 거짓으로 달아나는 것을 구도가 와산까지 추격하다가 백제에게 패하였다. 왕이 구도가 실패한 책임을 물어 부곡성주로 강직시키고 설지를 좌군주로 삼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또 삼국사기 신라본기 22대 지증왕 6(A.D.505) 조를 보면, “2월 왕이 친히 국내의 주와 군과 현을 정하였다.

실직주를 설치하고 이사부로서 군주(軍主)를 삼으니 군주라는 명칭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라고 또 기록되어 있다.

 

  지증왕 때로부터 무려 320년 전인 벌휴왕 때 좌군주(左軍主), 우군주(右軍主)를 임명하므로써 신라에서 군주(軍主)”라는 명칭을 이미 사용했다는 것이다.

  기록대로라면 신라에서 군주(軍主)”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한 때는 벌휴이사금 2년인 서기 185년이라고 해야 옳다.

  그런데 삼국사기는 지증왕 6(A.D.505)에 신라에서 처음으로 군주(軍主)”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고 또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는 왜 이러한 이중적인 기록을 남겼던 것일까?

  만약 신라에서 군주라는 명칭이 처음으로 사용된 때는 언제인가?” 라고 시험문제가 출제된다면 벌휴왕 때라고 답해야할까 아니면 지증왕 때라고 답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