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고구려 미천왕 을불설화 현장찾기 - 최초공개
미천왕[주 : 고구려 15대왕]의 이름은 을불[혹은 우불이라고도 한다]이니 서천왕의 아들 고추가 돌고의 아들이다.
앞서 봉상왕이 아우인 돌고가 다른 마음을 가졌다고 의심하여 죽이니 돌고의 아들 을불이 자기에게도 해가 미칠까 두려워 도망했었다. 처음에는 수실촌 사람 음모의 집으로 가서 머슴살이를 하였는데, 음모는 을불이 어떠한 사람인지 알지 못하고 심하게 일을 시켰다. 그 집 옆에 있는 늪에서 개구리가 울었는데, 음모는 을불을 시켜 밤새도록 기와조각을 던져 개구리가 울지 못하게 하고, 낮이면 온 종일 땔나무를 하여 오라고 독촉하여 잠시도 쉬지 못하게 하므로 고생을 견디다 못해 1년 만에 그 집을 떠나서 동촌 사람 재모와 함께 소금장사를 하였다.
배를 타고 압록에 이르러 소금을 가지고 강 동쪽 사수촌 사람의 집에 들렀는데 그 집 노파가 소금을 사겠다고 하여 한말 가량 팔았는데 덤을 더 달라고 하므로 주지 않았더니 노파가 원한을 품고 자기의 신발을 몰래 을불의 소금짐 속에 숨겨 두었다.
을불은 이것을 알지 못하고 소금을 지고 길을 떠났는데 노파가 쫓아와서 신발을 찾아들고는 을불이 신발을 도둑질했다고 거짓말로서 압록성주에게 고발하였다.
성주는 신발값으로 을불의 소금을 빼앗아 노파에게 주고 을불은 곤장을 쳐서 내 쫓았다.[필자주 : 도둑질을 하면 그 물건 값의 10배를 갚도록 하는 것이 고구려의 법이었다]
그리하여 을불은 얼굴이 여위고 의복이 남루하게 되어 사람들이 보아도 그가 왕손 임을 알 수 없었다.
이때에 국상 창조리가 장차 왕을 폐하고자 먼저 북부 조불과 동부 소우 등을 보내 산과 들을 뒤져 을불을 찾게 하였다.
그들이 비류하(沸流河, 필자주 : 주몽이 동부여에서 도망쳐 졸본으로 온 후 처음 자리잡은 곳이 비류수 중류라고 하였다) 물가에 이르러서 웬 사내가 배위에 있었는데, 비록 모습은 초췌하였으나 그의 몸가짐이 보통 사람과 다른 것을 보고 소우 등은 이가 을불 임을 짐작하고 나아가서 절을 하고 말하기를, “지금 국왕이 무도하므로 국상이 여러 신하들과 더불어 왕을 폐할 일을 도모하고 있는데, 왕손은 행동이 조신하고 검약하며 인자하고 사람을 사랑하므로 조상의 유업을 이을 수 있다하여 일부러 저희들을 보내어 받들어 오도록 하였습니다” 하니 을불이 의심하여 말하기를 “나는 평민이지 왕손이 아니니 다른 데 가서 알아보시오” 하였다.
소우 등이 말하기를 “지금 임금은 인심을 잃은 지 오래이며 진실로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여러 신하들이 왕손을 매우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으니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고 곧 받들어 모시고 돌아왔다.
조리가 좋아하면서 을불을 조맥 남쪽 인가에 머무르게 하고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게 하였다.
가을 9월에 왕이 후산 북쪽에서 사냥을 하는데 국상 창조리가 따라갔다.
조리가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나와 마음이 같은 사람은 내가 하는 대로 하라”하고는 곧 갈대잎을 모자에 꽂으니 여러 사람들도 모두 따라 꽂았다. 조리가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같음을 알고 드디어 그들과 함께 왕을 폐하여 별실에 가두어 두고는 군사들로 하여금 지키게 하고 곧 왕손을 맞아다가 옥새를 올려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위 기록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15대 미천왕 조에 전하는 “을불설화”인데, 기록 속에서 압록강, 압록성주 등이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을불이 소금장사를 하던 주 무대가 압록수(마자수) 유역임을 알게 한다.
추정해보면, 이때 을불은 지금의 북경 동북쪽 밀운수고(염난수)에 형성되어 있던 소금시장에서 소금을 사서 그 동쪽 사수촌으로 가서 소금을 팔다가 못된 노파의 술수에 걸려 온 재산을 빼앗기고 곤장을 맞고 쫓겨나게 되자, 압록수(백하)를 타고 올라가 졸본(필자주 : 적성현 후성진)을 지나 그 서쪽에 위치한 비류수까지 올라갔던 듯하다.
비류수는 지금 하북성 적성현 용관진[필자주 : 옛 송양의 비류국 도읍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부근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흘러 백하에 합류되는 홍하를 말하는 것으로서 을불은 바로 이 강가에 매어져 있던 배 위에 앉아 있다가 조불과 소우의 눈에 띄게 된다.
이 소금장사 을불이 곧 고구려 15대 미천왕으로서, 그는 왕위에 올라 고구려가 대제국으로 웅비하는 초석을 다지는 훌륭한 임금이 되었으므로 그의 어릴 적 이야기는 설화가 되어 전해진 것이다.
☆ 비류하(비류수)는 옛날 주몽이 비류하(비류수) 강변에서 고구려를 건국하였다고 전해지는 곳으로서, 고구려의 첫 도읍 졸본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 압록강(또는 졸본천이라고도 불렀던 듯하다)에 합류되는 지금의 홍하(紅河)를 말하는데, 졸본은 지금의 북경 북쪽 하북성 적성현 후성진 부근을 말하는 것이고 졸본천(압록강)은 백하(白河)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