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카테고리 없음

윤여동설 - 한반도 강화(江華)는 고대의 혈구(穴口)가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 2016. 8. 21. 17:31

윤여동설 - 한반도 강화(江華)는 고대의 혈구(穴口)가 아니다 - 최초주장 

 

 

 

 

 

 

 

 

 

  규원사화 단군기를 보면,

단군이 제후를 봉한 후 천하가 밝아지고 고요하더니 10년 만에 남이(南夷)의 반란이 일어났다. 갑비고차(甲比古次)는 이미 남이인의 땅이었다. 그리하여 부여(夫餘)를 보내어 군사를 거느리고 평정하였다. 후에 부소(夫蘇)와 부우(夫虞)를 더 보내어 갑비고차에 성을 쌓게 하고, 남쪽으로 내려와서 지키게 하였다. 이곳이 지금 강화도의 삼랑성(三郞城)이다.

  마리산(摩利山)에는 참성단(塹城壇)이 있으니 이것이 곧 단군이 단을 만들고 하늘에 제사지내던 두악(頭嶽)이다......

  단군이 하늘에 제사지내는 곳은 북쪽으로 사냥가면 태백산(太白山)이었고, 남쪽으로 가면 두악(頭嶽)이었다.

  갑비고차는 바닷가에 있어 배를 타고 가기가 쉬워서 남쪽으로 행차할 때는 반드시 단소(壇所)에서 제사를 지냈다. 더구나 그곳은 육지와 떨어져 있어 조용하고, 산악이 정결하며 밝은 하늘과 바다가 보인다. 고요하고 깊고 밝고 깨끗한 기운은 사람들에게 신의 오르내림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단군세기 무오 51년 조를 보면,

임금께서 운사(雲師)인 배달신(倍達臣)에게 명하여 혈구(穴口)에 삼랑성(三郞城)을 쌓고, 제천단(祭天壇)을 마리산(摩璃山)에 쌓게 하였으니 지금의 참성단(塹城壇)이 바로 그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신증동국여지승람 강화도호부 건치연혁을 보면,

본래 고구려 혈구군(穴口郡)인데 갑비고차(甲比古次)라고도 한다. 신라 경덕왕이 해구(海口)라 고치고, 원성왕(元聖王)이 혈구진(穴口鎭)을 설치하였다. 고려 초에 지금 이름으로 고쳐서 현(: 강화현)으로 만들었다. 현종 9년에 현령(縣令)을 두었다. 고종이 몽고병을 피해 들어가 도읍하고 군()으로 승격시키고 이름을 강도(江都)라 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산천 조를 보면,“마니산(摩尼山)은 강화도호부의 남쪽 35리에 있다. 고려 고종 46년에 교서랑 경유의 말에 따라 이 산의 남쪽에 이궁을 지었다.

  전등산(傳燈山)은 강화도호부의 남쪽 32리에 있다.......

  갑곶진(甲串津)은 강화도호부의 동쪽 10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사단(祠壇)조를 보면,“참성단(塹城壇)은 마니산 꼭대기에 돌을 모아 쌓은 단이다. 높이는 10척이며, 위는 모가 나고 아래는 둥근데, 위는 사면이 각각 66촌이요, 아래 둥근 것은 각각 15척이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단군(檀君)이 하늘에 제사지내던 곳이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고적(古跡) 조를 보면,“삼랑성(三郞城)은 전등산에 있는데, 세상에 전하기를 단군이 세 아들을 보내 쌓았다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위 기록들을 종합해 보면,

  혈구(穴口), 갑비고차(甲比古次), 강화(江華)는 모두 동일한 곳을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또 마리산(摩利山), 두악(頭嶽), 마리산(摩璃山), 마니산(摩尼山)도 같은 산을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기록 속 강화는 과연 지금 한반도의 강화도를 말하는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고조선의 도읍 왕검성, 고구려의 도읍 평양성은 지금의 한반도 평양이 아니라 중국 하북성 승덕시 부근이고, 고려의 도읍 개경 역시 지금의 한반도 개성이 아니라 중국 하북성 관성(寬城)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고려는 개경(현 관성)에서 가까운 강화로 옮겨 대몽항쟁을 했던 것이다.

  따라서 원래의 갑비고차, 혈구, 두악은 한반도의 강화도가 아닌 지금의 중국 하북성 관성 부근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이 되고, 따라서 삼랑성, 참성단도 그 부근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의 천서(遷西)에서 동북쪽으로 난하(옛 패수)를 건넌 구성(舊城) 이 옛날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이 어려 있는 삼랑성과 단군이 하늘에 제사지냈다는 참성단이 있던 곳으로 비정되는 곳이다.

  이를 이해하는 것이 우리 고대 역사의 현장을 찾을 수 있는 지름길인데, 이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위 그림은 필자가 원래의 혈구(穴口)로 비정하고 있는 곳인데, 지금의 중국 하북성 관성과 천서의 중간지점인 난하 대흑정수고 동쪽지역이다. 그런데 잘 보면 지형이 마치 사람의 얼굴 옆모습처럼 보인다. 옛날 우리의 선조들도 강화의 지형이 사람의 머리형상과 비슷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 두악(頭嶽)이라고도 불렀을 것이다]

 

 

 

 

 

 

[지금의 중국 하북성 천서 삼랑성 추정지 성벽 일부인데, 바로 이 성이 옛날 단군의 세 아들들이 쌓았다는 성이다. 그리하여 삼랑성(三郞城)이라 부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