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익산 미륵사의 창건연도는 639년이 아니라 519년 기해년이다 - 최초주장
익산 미륵사지 서탑에서 출토된 사리봉안기
삼가 생각해보면, 법왕(부처님)께서 세상에 나타나셔서 감응하시고, 현신 하시는 것은 물 속에 달이 비치는 것과 같습니다. 왕궁에서 태어나셨으나 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시면서 8곡의 사리를 남겨 3천 세계를 이익 되게 하셨으므로, 정신을 맑게 하고 오색으로 빛나는 사리를 돌면 그 신통변화는 불가사의할 것입니다. 우리 백제왕후께서는 좌평 사탁적덕의 따님으로 지극히 오랜 세월동안 선을 베풀어 금생에 좋은 보은을 받아 만민을 기르는 동량이 되셨으므로 재물을 희사하여 가람을 세우시고, 기해 년(己亥年) 정월 29일에 사리를 받들어 모시게 되었습니다. 원하오니, 세세토록 공양하겠으니 겁겁이 다할 때까지 이 선한 마음 변치 않게 하여 주시고 대왕폐하의 수명은 산악과 같이 견고하게 하여 주시고 치세는 천지와 함께 영구하며, 위로는 정법을 널리 펼치고 아래로는 창생을 교화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 원하오니, 왕후의 마음을 수경과 같이 하여 법계를 비추게 하여 주시고, 몸은 금강처럼 불멸하게 하시어 칠세의 먼 조상까지도 함께 복리를 입게 하시고, 모든 중생들도 함께 불도를 이루게 하여 주시옵소서.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봉안기 명문 번역문]
우리는 지금 위 익산 미륵사지 서탑 사리봉안기를 보고, 익산 미륵사가 기해년에 창건된 절이었고, 창건주는 백제왕후였던 좌평 사탁적덕의 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기해년(己亥年)이라는 해는 60년 만에 한번씩 있게 되므로 어느 기해년인지는 이 기록만으로는 알 수 없고, 우선 백제가 대륙백제와 반도백제 두 백제가 있었음을 알아야 이 수수께끼를 풀 수 있다.
원래 온조백제의 건국지는 한반도가 아니라 사실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진황도 도산 부근이었다. 필자는 이를 대륙백제라 부른다.
그런데 차자파인 8대 고이왕이 장자파인 7대 사반왕의 왕위를 찬탈하여 왕위에 올라 9대 책계왕 10대 분서왕으로 이어졌는데, 11대 비류왕이 왕위를 다시 장자파로 되돌려 놓았으나 차자파인 12대 계왕이 또 왕위를 차자파로 가져가자 13대 근초고왕이 또 왕위를 빼앗아 다시 장자파로 되돌려 놓는다.
그리하여 13대 근초고왕과 12대 계왕의 아들 무광왕 사이에 왕위쟁탈전을 벌이게 되어 백제는 내란으로 치닫게 되는데, 20여년의 내란 끝에 365년경 근초고왕이 승리하게 되어 대륙백제는 장자파인 근초고왕의 후예들이 왕위를 이어가게 되고, 패한 계왕의 아들 무광왕은 대륙을 떠나 한반도로 도망쳐 와서 익산 금마에 도읍하고 다시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필자는 이를 반도백제라 부른다.
관세음응험기에 "백제 무광왕(武廣王)이 지모밀지로 천도하고 정사(절 : 제석사)를 새로 지었다(百濟 武廣王 遷都 枳慕密地 新營精舍)"라고 기록된 무광왕이 바로 반도백제의 건국시조이다.
그리하여 반도백제는 무광왕의 후예들이 왕위를 이어가게 되는데, 반도백제 5대(?) 왕인 모도왕 때 이르러서는 매우 강성한 나라가 되었던 듯하다.
대륙백제와 반도백제의 왕위계승도는 아래와 같다.
[대륙백제]
[장자파] [차자파]
↓ ↓
13대 근초고왕 12대 계왕
↓ ↓
[반도백제]
14대 근구수왕 무광왕(武廣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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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5대 침류왕 16대 진사왕 자(실명)
↓ ↓
17대 아신왕 자(실명)
↓ ↓
18대 전지왕 자(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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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9대 구이신왕 20대 비유왕 모도왕(牟都王,慕都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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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1대 개로왕 22대 문주왕 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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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자 ↓차자 ↓6자
23대 삼근왕 남제왕 24대 동성왕 25대 무령왕
[이하생략]
그러다가 대륙백제 21대 개로왕과 반도백제 모도왕 때 이르러 모도왕이 두 백제를 통합하기 위해 아들인 곤지를 대륙백제로 파견했으나 두 백제의 통합에 반대한 대륙백제의 외척인 해씨들 때문에 대륙백제의 국론이 분열되자 그 틈을 타 고구려 장수왕이 대륙백제를 침공하여 이때 개로왕은 고구려군에게 잡혀 죽게 되고, 동생인 22대 문주왕이 왕위에 올랐으나, 해씨들은 문주왕과 곤지를 모두 시해하고, 23대 삼근왕을 옹립하게 된다.
그러자 반도백제 모도왕은 대륙백제의 해씨들과 삼근왕을 타도하고 대륙백제를 흡수통합한 후 죽은 곤지의 둘째 아들인 모대를 대륙으로 보내 왕위에 오르게 하는데, 이가 곧 대륙백제 24대 동성왕이고, 반도백제 모도왕은 488년경에 죽고 그 장손자인 남제왕이 왕위를 잇게 된다.
남제서에, 백제 동성왕이 북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남제에 사신을 보내자 남제에서는 동성왕을 “사지절 도독백제제군사 진동대장군으로 삼고 알자복야 손부를 사신으로 보내 책명으로 모대를 그의 죽은 할아버지 모도의 뒤를 이어 백제왕으로 봉했다”라고 기록한 모도왕이 바로 반도백제의 왕이었고, 동성왕 모대의 할아버지였다.
남제왕은 그 할아버지 모도왕으로부터 대제국으로 거듭난 통합백제(반도백제+대륙백제)를 물려받았고, 스타하치망 인물화상경 명문에 나타나는 반도백제의 6대왕(?)으로서 501년 12월에 이르러 대륙백제에서 동성왕이 또 백가에게 시해를 당하자 이복동생인 사마를 대륙으로 보내 대륙백제의 왕위에 올리는데 이가 곧 백제25대 무령왕이다.
스타하치망 인물화상경은 바로 이 대륙백제 무령왕이 503년(이때 무령왕은 42세였다)에 그 장형인 반도백제 남제왕(이때 남제왕은 사실상 황제였고 54세였을 것이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위하여 대륙백제에서 예국사람 금주리 등을 반도백제로 보내 만든 동경인데, 그 동경 뒷면에 여러 명의 인물상과 아래와 같은 48자의 명문이 삥 돌려 배치되어 있다.
명문은 아래와 같고, 인물상은 남제왕과 형제자매들의 어릴 적 모습이 아닌가 생각된다.
무령왕은 형제자매들이 옛날 어릴 적 추억을 생각하며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기를 바랐던 듯하다.
스타하치망 인물화상경 명문
癸未年 八月 日 계미년(A.D.503) 팔월 일
十六王年 男弟王 在意紫沙加宮時 재위 16년 남제왕이 의자사가궁에 있을 때
斯麻 念長壽 사마가 (남제왕의) 장수를 염원하며
遣開中費直 穢人今州利 二人等 개중비직과 예국 사람 금주리 두 사람 등을 보내
取白上同二百旱 作此竟 백상동 2백한으로 마침내 이를 만들었다
[스타하치망 인물화상경 명문과 번역문]
반도백제 남제왕은 무령왕의 염원대로 70세도 넘게 오래 살았던 듯하다.
따라서 익산 미륵사지 서탑에서 출토된 사리봉안기 명문에 나타나는 기해년은 서기 519년으로 추정해 볼 수 있고,
백제왕후인 좌평 사탁적덕의 딸은 바로 이 반도백제 남제왕의 왕후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남제왕은 그 할아버지 모도왕으로부터 강력해진 통합백제의 강토를 물려받아 39세에 왕위에 올랐고,
재위 14년인 501년에는 이복동생인 사마를 대륙으로 보내 대륙백제의 왕위에 오르게 했다.
이때의 반도백제 남제왕은 사실상 황제였던 것이다.
재위 16년인 503년에는 대륙백제의 왕위에 오른 무령왕이 동경 제작 기술자를 선발하여 그 멀고 먼 한반도까지 보내 큰형님인 남제왕의 장수를 기원하는 동경을 만들어 바쳤으며,
재위 32년인 서기 519년 기해년에는 이해가 남제왕의 나이 70세가 되는 해였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 때 남제왕의 왕후였던 좌평 사탁적덕의 딸이 왕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하여 재물을 희사하여 가람(절)을 짓고 탑을 세워 그 탑 속에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면서 봉안기를 써서 함께 넣었던 것이다.
이해 대륙백제의 무령왕은 58세 때인데, 큰형님을 깎듯이 모셨던 무령왕이 큰 형수가 남제왕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하여 절을 짓는다는 소식을 접했다면 나 몰라라 했을 리는 없을 것이고, 무언가 역할을 했을 것인데, 아직 그에 관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결론적으로 익산 미륵사는 서기 519년에 반도백제 남제왕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하여 건립되었을 것이다.
학자들이 인식하고 있는 639년보다 무려 120년 전에 세워진 절일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익산 미륵사는 무왕 때 지은 절이 아니다.
☆ 반도백제가 언제까지 존속했고, 또 도읍이전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아직 알 수 없지만, 건국시조 무광왕, 2대 실명, 3대 실명, 4대 실명, 5대 모도왕, 6대 남제왕의 능은 지금의 익산 금마 부근에 조성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