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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익산 쌍릉은 무광왕이 세운 반도백제의 왕과 왕후의 능일 가능성 - 최초주장

윤여동 2017. 7. 29. 07:45

윤여동설 - 익산 쌍릉은 무광왕이 세운 반도백제의 왕과 왕후의 능일 가능성 - 최초주장

 

 

  한반도 전북 익산시 석왕동에 가면 사적 제87호로 지정된 익산쌍릉이라는 유적지가 있다.

  일제 강점기에 발굴을 하였으나 이미 도굴된 상태로서 관의 장식 일부와 치아, 그리고 도기편 등만 일부 수습되어 아직까지 그 고총의 주인공을 정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단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 고총이 사서의 기록에 나타나는 고조선의 준왕(위만에게 왕검성을 빼앗기고 좌우근신을 이끌고 남하하여 금마(金馬)에 다시 한()을 세우고 마한, 진한, 변한을 다스렸다고 전해진다)의 능이라고 하기도 하고, 백제 30대 무왕의 능이라고도 하는 등 주장들만 무성할 뿐 실제 그 고총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아직 확실하게 모르고 있어 다시 재발굴을 하려고 한단다.

 

  그런데 필자는 그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는 왕궁리유적과 제석사지 그리고 미륵사지의 성격을 먼저 확실하게 규명하지 못하는 한 익산 쌍릉의 주인공은 절대 밝힐 수 없고, 추정조차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학자라는 사람들이 온조백제가 한반도가 아닌 지금 중국 북경 동쪽의 난하 부근에서 건국되었음을 먼저 이해해야 하고,

[이를 이해할 수 있을지.........]

  관세음응험기에, 백제 무광왕(武廣王)이 지모밀지로 천도하고 새로 정사()를 지었다는 기록 속 무광왕의 정확한 신분,

[이를 밝힐 수 있을지.............] 

  남제서 등에 나타나는 동성왕의 할아버지 백제 모도왕(牟都王)의 정확한 신분,

[이를 밝힐 수 있을지............] 

  그리고 우전팔번신사 인물화상경 명문에 나타나는 남제왕의 정확한 신분과 사마(무령왕)와의 관계 등을 먼저 밝혀야 하며,

[이 역시 밝힐 수 있을지.........]

  대륙에서 8대 고이왕이 집안조카인 7대 사반왕으로부터 왕위를 찬탈함으로써 시작된 백제초기 장자파와 차자파 간에 벌어진 왕위찬탈전을 먼저 이해해야 하고,

[왕위찬탈전이 있는 것 까지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나, 그것이 한반도가 아닌 북경 동쪽 대륙에서 일어났던 사건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지........]

  그 대륙에서 12대 계왕의 아들과 13대 근초고왕 사이에 백제의 왕위를 놓고 20여 년간에 걸친 다툼이 있었음을 알아야 하고,

[이 역시 이해할 수 있을지..............]

  그 왕위 다툼에서 패한 계왕의 아들이 한반도로 도망쳐 와서 다시 백제를 세우고 지모밀지에 도읍함으로써, 세상에 대륙백제와 반도백제 두 개의 백제가 존재했었음을 이해해야,

[이 역시 세상에 대륙백제와 반도백제가 있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백제 역사를 제대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강단사학에 속한 역사학자라는 사람들이 과연 필자가 위에서 지적하는 것들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인드와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

 

  그리하면 관세음응험기 기록 속 백제 무광왕(武廣王)이라는 인물이 무강왕이나 무왕이 아니라 곧 백제 12대 계왕의 아들로서 반도백제의 건국시조였고, 제석사가 바로 그가 세운 한반도 최초의 절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고,

  무광왕의 후손(무광왕의 고손자쯤?)인 반도백제 모도왕 때 반도백제가 대륙백제를 흡수 통합한 후 모도왕이 둘째손자인 모대(대륙백제 24대 동성왕)를 대륙으로 보내 왕위에 오르게 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며,

  남제왕과 사마왕의 관계를 알게 되면, 사마왕이 동경제작 기술자를 보내 동경을 다량 제작하게 했는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며,

  익산 미륵사지 서탑에서 출토된 사리봉안기 명문 속 백제왕후 좌평 사탁적덕의 딸이 바로 반도백제 남제왕의 왕후였음을 알게 될 것이고,

  익산 미륵사지가 반도백제 남제왕이 70세 때인 519년 기해년에 그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하여 세워진 절이라는 것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익산 쌍릉은

  반도백제 건국시조인 무광왕과 그의 왕후릉일 가능성이 가장 많고,

  또는 모도왕과 그의 왕후릉,

  또는 남제왕과 그의 왕후릉,

  또 이름이 전해지지 않은 반도백제의 왕과 왕후의 능일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역사학자라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마인드가 따라주지 않는데 재발굴을 한다고 해서 과연 그것을 정확히 밝혀낼 수 있을지는 매우 의문스럽다.

  재발굴비용만 수억 들어가고 해석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일 가능성이 108, 9.

  차라리 그 돈으로 반도백제 왕들의 능이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익산 쌍릉 주변을 포함하는 그 주변 일대를 샅샅이 뒤져 새로운 반도백제의 왕릉들을 찾아보는 게 더 현명한 방법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