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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대방군(帶方郡)을 찾기 어려웠던 이유 - 최초주장

윤여동 2018. 1. 29. 05:17

윤여동설 - 대방군(帶方郡)을 찾기 어려웠던 이유 - 최초주장

 

 

 

 

 

 천년의 의문 대방군(帶方郡)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준화(遵化) 부근을 말하는 것이다.

 

 

                                                      [준화 부근의 지형]

 

공손강이 둔유현 남쪽의 황무지를 대방군으로 만들었다고 전하는데, 낙랑군 둔유현은 지금의 준화북쪽 백기영자(白旗營子), 반벽산진(半壁山鎭) 부근으로 비정된다. 그런데 반도식민사관론자들은 대방군이 한반도 황해도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하니 이를 어찌 역사해석이라 할 수 있으랴.

 

  고대의 요동(遼東)은 지금의 북경(北京)부근을 말하는 것이고, 요수(遼水)는 지금의 영정하(永定河)를 말하는 것이며, 전한 낙랑군은 피서산장이 있는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부근을 말하는 것이며, 고대의 왜국은 지금의 요동반도에 위치하고 있었다.

 

후한서 권1하 광무제기 제1하 건무6(A.D.30) 조의 주에 낙랑은 군이다. 옛 조선국이다. 요동에 있다(樂浪, , 故朝鮮國也, 在遼東)”라고 기록되어 있고, 후한서 권52 최인열전 제42의 주에도 장잠은 현이다. 낙랑군에 속했다. 그 땅은 요동에 있다(長岑, , 屬樂浪郡, 其地在遼東)”라고 기록되어 있다. 낙랑군은 옛 요동인 지금의 북경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말이지, 한반도 평양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가 옛 고조선의 왕검성이었고, 낙랑군의 치소였으며, 고구려의 평양성이었고, 고려의 서경이었으며, 원나라 때의 동녕부였다.

 

 

  그리고 대방(帶方)의 남쪽에 위치했던 마한(馬韓)은 지금의 하북성 당산시 풍윤(豊潤) 부근을 말하는 것이며, 준왕의 능은 바로 이곳 풍윤에서 찾아야 한다.

 

진한(辰韓)은 요녕성 금주(錦州) 부근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곳이 신라의 천년도읍 금성이었고, 변한(弁韓)은 요녕성 흥성(興城) 부근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곳이 금관가야의 도읍 금관성(金官城)이었다.

 

  그런데 북경 동쪽 지금의 준화에는 청나라 때 황제들의 능인 청동릉(淸東陵)이 조성되었기 때문에 대방군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옛 대방군의 흔적들이 모두 청동릉에 의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청동릉은 중국 하북성(河北省) 당산(唐山) 준화에 있는 청나라 황족의 능원으로서 15기의 황릉에 황제 15, 황후 15, 비빈 136, 공주 2, 왕자 3명이 묻혀 있다고 한다.

 

  위 그림과 아래 사서들의 기록을 비교하며 그 위치를 비정해 보시면, 필자의 주장이 매우 옳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스스로 깨우치지 않으면 수수께끼 같은 우리 역사의 비밀을 절대 풀 수 없습니다.

 

  전한서 권28하 지리지 제8하 낙랑군(樂浪郡)

  조선(朝鮮), 남감, 패수(浿水), 함자(含資), 점선(黏蟬), 수성(遂成), 증지(增地), 대방(帶方), 사망(駟望), 해명(海冥), 열구(列口), 장잠(長岑), 둔유(屯有), 소명(昭明 : 남부도위치소), 루방(鏤方), 제해(提奚), 혼미(渾彌), 탄열(呑列), 동이(東暆), 불이(不而: 동부도위치소), 잠태(蠶台), 화려(華麗), 사두매(邪頭昧), 전막(前莫), 부조(夫租) [이상 25개현]

 

  후한서 지제23 군국5 낙랑군(樂浪郡)

  조선(朝鮮), (: 남감의 오기), 패수(浿水), 함자(含資), 점선(占蟬), 수성(遂城), 증지(增地), 대방(帶方), 사망(駟望), 해명(海冥), 열구(列口), 장잠(長岑), 둔유(屯有), 소명(昭明), 루방(鏤方), 제해(提奚), 혼미(渾彌), 락도(樂都) [이상 18]

 

  삼국지 권30오환선비동이전 제30()

  한(: 마한) 대방(帶方)의 남쪽에 있다. 동서는 바다를 한계로 하였고, 남쪽은 왜와 접했다. 강역이 4천여리이다. 삼종이 있는데, 첫째는 마한(馬韓)이요, 둘째는 진한(辰韓)이며, 셋째는 변한(弁韓)이다. 진한(辰韓)은 옛 진국(辰國)이다................환령지말(桓靈之末)에 한()과 예(: 동)가 강성해서 군현에서 통제할 수 없자 많은 백성들이 한국(韓國)으로 들어갔는데, 건안(建安 : A.D.196-220) 중에 공손강이 둔유현(屯有縣) 이남의 황무지를 대방군(帶方郡)으로 만들었다.

 

  후한서 권85 동이열전 제75 ()

  왜()는 한()의 동남 대해 가운데에 있는데 산과 섬에 의지하여 산다. 무릇 백여국이다.

 

  삼국지 권30 위서30 오환선비동이전 제30 ()

  왜인(倭人) 대방(帶方) 동남 대해 가운데에 있는데, 산과 섬에 의지하여 국읍을 이루었다. 옛날에는 백여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