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왕검조선(고조선)의 장당경(藏唐京 : 당장경) 찾기 - 최초주장
왕검조선(고조선)의 첫 도읍 아사달에 대하여 규원사화에는 태백산 동남쪽(필자주 : 원문에는 서남쪽으로 되어 있는데, 오기이므로 필자가 고쳤다) 우수하벌판에 위치했었다고 했고, 장당경(당장경) 역시 아사달 가까이 위치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고대의 태백산(太白山 : 長白山, 白頭山)은 지금의 하북성과 내몽골의 경계에 위치한 대광정자산(大光頂子山, 해발 2,067m)으로 밝혀졌고, 왕검성은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열하행궁)으로 밝혀졌다.
그리하여 왕검조선(고조선)의 첫도읍 아사달과 장당경(당장경)을 비정해 보았는데,
아사달은 내몽골 영성현 서쪽에 위치한 영성대명진고성으로 비정되었고,
장당경(당장경)은 그 동쪽에 위치한 지금의 내몽골 적봉시 영성현(寧城縣 : 天義鎭)으로 비정되었다.
☆ 삼국유사 아사달의 주에는 “아사달이 무엽산(無葉山)이라고도 하고, 또는 백악(白岳)이라고도 하는데, 백주(白州)에 있었다. 혹은 또 개성 동쪽에 위치했다고도 하는데, 이는 바로 지금의 백악궁(白岳宮)이다”라고 주를 달아 설명하고 있는데, 아사달이 개성 동쪽 또는 백악궁이라고 한 것은 오기로 보이고, [필자주 : 첫도읍 우수하지원의 아사달과 세번째 도읍 백악산아사달을 헷갈린 결과이다]
규원사화에는 “나라를 다스린 지 30여년에 홍수를 만나 큰 파도가 하늘로 치솟아 요동과 만주의 벌판을 덮어 패수가 넘쳐나고 평양(왕검성)이 물에 잠겨 네 아들을 보내 마땅한 땅을 두루 살피게 했다. 그리하여 아사달 아래 당장의 땅을 차지하고 살게 되었다. 지금의 문화 구월산(아사달) 아래의 장평이 바로 그 땅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당장경(장당경)이 문화구월산 아래 장평이라는 기록 역시 오기로 보인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황해도 문화현의 구월산(九月山)을 왕검조선의 도읍 아사달산(阿斯達山)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나 역시 오기일 것이다.
그리고 신당서 발해전에는 “고구려의 옛 땅으로 서경을 삼으니 압록부이며, 신주(神州), 환주(桓州), 풍주(豊州), 정주(正州)의 4개주를 다스린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혹시 이 중 “신주(神州)”가 왕검조선의 백악산아사달과 관련 있는 장소가 아닌가 생각되는데, 지금의 북경 동북쪽 무령산(霧靈山) 부근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또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에는 “난하는 운주보 북쪽 60리에 있는 탄산, 빙정, 난천에서 발원하여 합해져서 이 강이 된다. 난하는 북쪽으로 흘러 고환주(古桓州)를 지나 남쪽으로 흘러 개평의 경계로 들어간다(灤河在雲州堡北六十里發源炭山氷井亂泉合為此河 北流經古桓州南下流入開平界)”라고 기록되어 있어 지금의 내몽골 정람기 부근을 고환주(古桓州 : 이를 보면 고환주와 신환주의 위치가 달랐을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로 비정할 수 있다.
기록들이 이렇듯 헷갈렸기 때문에 아사달과 장당경(당장경)의 위치를 아직까지 확실히 찾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