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카테고리 없음

윤여동설 - 환웅천왕(桓雄天王)은 환인천제(桓因天帝)의 아들이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 2019. 9. 8. 16:17

윤여동설 - 환웅천왕(桓雄天王)은 환인천제(桓因天帝)의 아들이 아니다 - 최초주장

 

 

  어느 날 동녀동남 800이 흑수(黑水) 백산(白山)의 땅에 내려왔다. 이에 환인은 또한 감군으로서 천계(天界)에 계시면서 돌을 부딪쳐 불을 일으켜서 날 음식을 익혀 먹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치셨다. 이를 환국(桓國)이라 하고 그를 가리켜 천제환인(天帝桓因)이라 불렀다. 또한 안파견(安巴堅)이라고도 했다. 환인은 일곱 대를 전했는데 그 연대는 알 수가 없다.

 

  뒤에 환웅씨(桓雄氏)가 계속하여 일어나 천신의 뜻을 받들어 백산흑수지간(白山黑水之間)에 내려왔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을 천평(天坪)에 마련하고 그곳을 청구로 정했다.

  천부(天符)의 징표[필자주 : 천부인 3개 즉 옥새 세 개를 말하는 것이다]를 지니시고 오사(五事)를 주관하고, 세상에 계시면서 교화를 베푸시니 홍익인간 하였더라.

  또 신시(神市)에 도읍을 세우시고 나라를 배달(倍達)이라 불렀다.

[환단고기(桓檀古記) 삼성기(三聖記) 전상편(全上篇) 안함로(安含老)]

 

  옛날 환국(桓國)이 있었나니 백성은 부유하였고 또 많았다.

  처음에 환인(桓仁)께서 천산(天山)에 올라 도를 얻어 오래도록 사셨으니 몸에는 병도 없었다. 하늘을 대신하여 널리 교화하시니 사람들로 하여금 군사를 동원하여 싸울 일을 없게 하였으며, 누구나 힘껏 일하여 주리고 추위에 떠는 일이 없게 되었다. 다음에 혁서환인(赫胥桓仁), 고시리환인(古是利桓仁), 주유양환인(朱于襄桓仁), 석제임환인(釋提壬桓仁), 구을리환인(邱乙利桓仁)에 전하고 지위리환인(智爲利桓仁)에 이르더라. 환인(桓仁)을 혹은 단인(檀仁)이라고도 한다.

 

  환국(桓國)의 말기에 안파견(安巴堅)이 삼위태백(三危太白)을 내려다보며,

  모두 가히 홍익인간(弘益人間)할 곳이로다하시며, 누구로 하여금 다스리게 할 것인가 물으시니,

   오가(五加)가 모두 대답하기를, “서자(庶子) 환웅(桓雄)이 있는데, 용맹함과 어진 지혜를 함께 갖추었으며, 일찍이 홍익인간의 이념으로서 세상을 바꿀 뜻이 있었사오니 그를 태백산(太白山)에 보내시어 이를 다스리게 함이 좋겠습니다하니 마침내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내려 주시며 이르기를 사람과 사물이 이미 다 이루어졌도다. 그대 수고로움을 아끼지 말고 무리 3천을 이끌고 가 하늘의 뜻을 열고 가르침을 세워 세상을 잘 다스려서 만세의 자손들에게 큰 모범이 될지어다라고 하셨다.

  이에 환웅(환웅)이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太白山) 꼭대기 신단수(神壇樹) 아래로 내려오시니 이곳을 신시(神市)라 하고, 이 분을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한다.

[환단고기(桓檀古記) 삼성기(三聖記) 전하편(全下篇) 원동중(元董仲) ]

 

  조대기(朝代記)에 이르기를 이때 사람은 많고 생산은 적어 그 살아갈 방법이 없어 걱정이었는데, 서자부(庶子之部)에 환웅(桓雄)이라는 대인이 있어 여러 사정을 살피더니 하늘에서 내려가 땅위에 하나의 광명세계를 열고자 생각하였다..........천부인 세 개를 주시고 그를 보내어 이들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천을 이끌고 처음으로 태백산의 신단수 아래로 내려오시니 이를 신시라 한다.

[태백일사(太白逸史) 신시본기(神市本紀) 3 이맥(李陌) 편찬]

 

환웅의 신분에 대하여 직설적으로 환인왕조 서자부의 대인(책임자)”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서자부는 일반백성들의 삶을 담당하는 부서로 생각된다.

 

  환웅천왕(桓雄天王)은 기쁘게 명령을 받들고 천부인(天符印) 세 개와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 3천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太白山) 단목(檀木) 아래로 내려왔다. 태백산은 곧 백두산(白頭山)이다. 모든 무리들이 천왕을 군장(君長)으로 추대하니 이 분이 신시씨(神市氏)이다.

[규원사화(揆園史話) 조판기(肇判記) 북애자(北崖子) ]

 

  고기에 이르기를 옛날에 환인(桓因)이 있었는데, 서자(庶子) 환웅(桓雄)이 자주 천하를 차지할 뜻을 가지고 인간세상을 탐내고 있어 그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산(三危太伯山)을 내려다보니 가히 홍익인간 할만 했다. 이에 환인은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환웅에게 주어 인간세상을 다스리게 했다. 환웅은 무리 3천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마루턱에 있는 신단수(神壇樹) 아래로 내려왔다. 이곳을 신시(神市)라 하고, 이 분을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고조선 왕검조선 일연(一然) ]

 

  우리는 지금 위와 같은 기록들을 읽으면서 환웅천왕이 환인천제의 아들이라고 인식하고 있었으나, 조금만 세밀하게 읽고 유추해보면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옛 기록들에 서자(庶子) 환웅(桓雄)”이라는 기록이 있었기 때문에 환웅천왕을 환인천제의 적자(嫡子)가 아닌 서자(庶子)라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하고, 또는 여러 아들 중 하나라는 의미로 이해하기도 했는데, 알고 보니 서자(庶子)”라는 말은 왕족이 아닌 서민(庶民)이라는 의미로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환웅천왕은 환인천제의 아들이나 왕족이 아닌 일반인 즉 제3의 인물이었던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맥(李陌) 태백일사(太白逸史) 신시본기(神市本紀) 3서자부(庶子之部)에 환웅(桓雄)이라는 대인이 있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필자의 주장을 뒷받침 해 준다.

 

 

  너무도 먼 옛날 일이기 때문에 당시 환인왕조의 환국(桓國)에 어떠한 사건이 발생했었는지 확실히는 알 수 없겠으나, 어찌되었든 이때 환국의 민심이 환인왕조에서 떠나 환웅에게 쏠렸던 것은 확실할 것이고, 따라서 환인천제는 권력을 잃게 되어 왕권을 환웅에게 넘겨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것이고, 결국 환인천제는 환웅에게 천부권력의 상징인 천부인 세 개(필자주 : 옥새 세 개)를 넘겨주었을 것인데, 천부인 세 개를 환인으로부터 전해 받은 환웅은 그 천부인의 권위로 새로운 나라 환웅국(배달국이라고도 한다)을 세우고 천왕의 자리에 올라 도읍을 신시에 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가들은 전제왕조시대에 왕족도 아닌 서자 환웅이 환인천제로부터 왕권을 탈취했다는 기록을 사실대로 남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를 곧이 곧 대로 기록으로 남겨 놓을 경우 왕권탈취를 부추긴다는 이유로 벌을 받게 될지도 모르고, 또 역적으로 몰려 멸문지화를 당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 세조3(A.D.1457)에 내려진 고서적수거령을 보면, “고조선비사, 대변설, 조대기, 주남일사기, 지공기, 표훈삼성밀기, 안함로 원동중의 삼성기 등을 제출하라고 하였는데, 전제왕조시대에 그러한 책들을 일반백성들이 읽지 못하도록 거두어들인 것은 그 내용 중에 역성혁명을 부추길 수 있는 위험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들은 환웅을 환인천제의 서자(庶子)”라고 기록함으로써 역성혁명을 부추겼다는 위험 부담을 피해가려 했다고 판단되고, 아리송하게나마 전해놓으면 후대 누군가는 그 역사의 진실을 알아차릴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어찌되었든 옛 사관들도 역사의 진실을 사실대로 전하고 싶었음에는 틀림없다.

  원동중의 삼성기 전하편을 보면, 환인이 신하들에게 묻기를 삼위태백 지역은 누가 적임자인가?” 하고 묻자 5(五加)가 모두 서자 환웅이라는 사람을 추천하며, 환웅은 용맹하고, 지혜로우며, 일찍이 세상을 바꿀 뜻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라고 덧붙여 설명하고 있고, 환인천제는 5가의 의견에 따라 환웅에게 천부인 세 개를 주었다는 것인데, 사실은 이때 5가들도 백성들의 민심이 환웅에게 쏠려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을 것이고, 환인천제 또한 이미 대세를 되돌릴 수 없다고 판단하고, 천부왕권의 상징인 천부인 세 개를 환웅에게 넘겨주지 않을 수 없었으며, 결국 왕조의 교체로 이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삼국유사에도 환웅이 왕권을 탈취한 사실을 고기의 기록을 인용하는 형식을 빌어 위 필자의 주장과 비슷한 맥락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를 확인해 보면, “서자 환웅이 자주 천하를 차지할 뜻을 가지고 있었다라거나 인간세상을 탐내고 있었다라고 하는 기록들이 바로 그러한 상황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옛날 전제왕조시대에 역모가 아니고서야 서자 환웅은 어떻게 자주 천하를 차지할 뜻을 품을 수 있었으며, 어떻게 인간세상을 탐낼 수 있었을까?

  자주 천하를 차지할 뜻을 품었다는 것은 여러 차례 반란을 일으켜 기존 왕조를 무너뜨리고 그 땅을 빼앗아 차지하려 했다는 말에 다름 아닐 것이고, 인간 세상을 탐내고 있었다는 것은 그 백성을 빼앗으려 했다는 말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환웅천왕은 환국 말기에 왕족이 아닌 일반백성으로서 역성혁명을 일으켜 백성들의 지지를 받아 환인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라를 세워 천왕의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로 추정해 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