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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개마국(蓋馬國)의 원래 위치와 지명 유래 - 최초주장

윤여동 2020. 2. 1. 08:38

윤여동설 - 개마국(蓋馬國)의 원래 위치와 지명 유래 - 최초주장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9(A.D.26) 조를 보면,

   겨울10월 왕이 친히 개마국(蓋馬國)을 쳐서 그 나라 왕을 죽이고, 백성들을 위무하는 한편 군사들에게 인명과 재물을 침해하지 못하게 하고 오직 그 지역을 군현으로 만들었다.

   12월 구다국(句茶國) 왕이 개마(개마국)가 멸망하였다는 말을 듣고 화가 자기에게도 미칠까 두려워 나라를 바치고 항복하여 왔다. 이로 말미암아 고구려가 개척한 지역이 점점 넓어졌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 규원사화 단군왕검 조를 보면, “이때 단군의 교화가 두루 미치게 되어 북쪽으로는 대황(大荒)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알유(猰貐)를 거느리고, 남쪽으로는 해대(海岱)에 이르고, 동쪽으로는 창해(蒼海? 대해의 오기일 것이다)에 닿았다............천하의 땅을 나누어 공적에 따라 땅을 나누어 주었다.

치우씨의 후손들에게는 남서쪽의 땅을 주었는데, 들이 넓고 바다와 하늘이 푸르러 남국(藍國)이라 하고..........

신시씨의 후손에게는 북동쪽의 땅을 주니 산하가 웅장하고 풍기가 굳세어 루진국(僂侲國) 또는 숙신(肅愼)이라 했으며...........

고시씨의 후손에게는 동남쪽의 땅을 주었는데 산하가 아름답고 초목이 무성하여 청구국(靑丘國)이라 하였다..........

주인씨의 후손에게는 개마국(蓋馬國)을 주고, 여수기는 예(濊)의 임금을 삼았다.

부소, 부우 그리고 막내 부여에게는 모두 서쪽 땅을 주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개마국이 수천년의 오랜 역사를 이어온 나라였음을 알 수 있게 한다.

 

☆ 후한서 동옥저전을 보면, “동옥저는 고구려 개마대산(蓋馬大山)의 동쪽에 있다. 동쪽은 대해까지이고, 북쪽은 읍루와 부여, 남쪽은 예, 맥과 접했다.........창을 잘 다루어 보병전을 잘한다.........또 북옥저가 있는데, 일명 치구루(置溝婁)라고도 하는데, 남옥저에서 8백여리 떨어져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 개마(蓋馬)”가 무슨 의미인지, 그 곳을 왜 말과 연관시켜 부르게 되었는지 알 수 없어 전전긍긍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찾고 보니 개마국(蓋馬國)은 지리상 말머리 형상으로 생긴 지형의 말의 입에 해당하는 곳에 위치한 나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는 그렇다 치고, “()”는 무슨 뜻일까?

   ()” 자는 덮는다” “막는다는 뜻을 지닌 한자로서 결국 개마(蓋馬)”라는 의미는 말의 입을 막는다는 뜻이었다.

    蓋馬(개마)”는 말의 입에 씌운 망(필자주 : 소나 말이 풀을 뜯어먹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입에 씌우는 망을 입망, 부리망이라고도 부른다)을 뜻하는 말이었고, 개마국(蓋馬國)은 바로 지형 상 말의 입에 씌우는 망의 위치에 있던 나라라는 의미였고, 개마국(蓋馬國)의 위치를 찾고 보니 말갈(숙신)의 서남쪽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어 말갈(숙신)이 서남쪽방향의 내몽골 평원으로 진출하는 길목에 위치한 나라가 바로 개마국이었다.

   고구려는 개국 초기에 북옥저와 이 개마국을 차지함으로써 말갈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옛날 고구려의 철갑기병을 개마무사(鎧馬武士)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이는 원래 이 개마국의 기병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러다가 고구려가 개마국을 병합한 후 개마국의 기병을 중심으로 철갑기마부대를 만들었고, 이 부대가 특별히 용감하고 무적이었기 때문에 개마무사(蓋馬武士, 鎧馬武士)라고 불리우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