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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의 현장 위화도(威化島)의 진짜위치를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 2021. 2. 6. 23:12

윤여동설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의 현장 위화도(威化島)의 진짜위치를 찾았다 최초공개

 

[위 : 북경시 회유구]

[위 : 위화도 태조봉(太祖峰) 추정지 : 지금의 북경 회유구 대라산(大羅山, 해발 약95m) 좌표 동경116도44분03초 북위40도18분04초]

 

 

   신증동국여지승람 권지53 평안도 의주목(義州牧) 산천(山川) 조를 보면,

   어적도(於赤島)는 난자도(蘭子島)의 북쪽에 있는데, 둘레가 17리이다. 그 땅이 평평하고 넓어서 밭 60여경()을 일구었다.

   검동도(黔同島)는 의주(義州)에서 서쪽으로 15리 떨어져 있는데, 둘레가 15리이다. 압록강이 여기에 이르러서 3갈래로 나누어지는데, 이 섬이 두 섬사이에 있으며, 삼씨량(三氏梁)이 있다. 모든 강을 건너는 사람들이 반드시 이 섬의 북쪽을 지나는데, 중국의 도읍으로 가는 사신들이 입조하는 길이기도 하다.

   위화도(威化島)는 검동도의 아래에 있는데, 둘레가 40리이다. 두 섬 사이를 압록강의 지류가 가르고 있는데, 굴포(掘浦)라고 부르고 의주성에서 25리 떨어져 있다.

  위의 세 섬은 모두 그 땅이 기름지고 넉넉하여 백성들이 많이 농사를 지었다...............

  고려의 신우(우왕)가 요양(遼陽 : 요동)을 치기를 꾀하여 평양에 주둔해서 여러 도의 군사와 백성들을 징집하여 10만을 일컬었다. 우리 태조(이성계)로 하여금 거느리게 하여 좌, 우군이 압록강을 건너서 위화도(威化島)에 주둔하였는데, 도중에 도망병이 계속되자 우(우왕)가 도망병은 사살하라고 명하였으나 막을 수 없었다..............장마비가 몇일 간 내렸어도 물이 넘치지 않았는데, 회군하는 군사들이 모두 압록강(鴨綠江)을 되건너자 홍수가 밀려와서 온 섬이 잠기니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여겼다.

   난자도(蘭子島)는 위화도의 북쪽에 있는데, 둘레가 10리이다. 수위가 내려가면 육지와 이어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 조선왕조실록에는 위화도에 태조봉(太祖峰)이라는 산봉우리가 있다고도 하였다.

 

  그렇다면 고려 말에 이성계가 요동(遼東)을 정벌하려 하다가 회군하였던 위화도(威化島)”는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한반도 북쪽 압록강 하류 강 가운데에 위치한 위화도가 고려 말에 이성계가 회군하였던 바로 그 위화도일까?

 

  고대의 요동(遼東)은 지금의 요하 동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북경 (北京) 부근을 말하는 것으로 밝혀졌고,

  평양성(平壤城)은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열하행궁)을 말하는 것이며,

  고려의 도읍 개경(開京)은 하북성 관성현(寬城縣 : 관성만족자치현)을 말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고대의 압록강(鴨綠江)은 지금의 북경 북쪽을 흐르는 백하(白河)와 밀운수고(密云水庫), 조백하(潮白河)로 이어지는 강줄기를 말하는 것으로서 옛 사서들의 기록에 언급되어 있는 압록강은 대개 지금의 북경 동북쪽 밀운수고 부근을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고려 말 이성계가 요동정벌군을 이끌고 가서 주둔했다가 회군을 했던 위화도(威化島)는 지금의 밀운수고(密云水庫)부근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의 북경 동북쪽 밀운(密云)이 옛 의주(義州)이고,

  지금의 회하(懷河)와 조백하(潮白河)가 합류하는 지점의 바로 북쪽 땅 즉 지금의 북경시 회유구 양송진(楊宋鎭), 북방진(北房鎭) 일원이 바로 600여 년간 그 위치가 아리송했던 진짜 위화도(威化島)이다.

 

☆ 옛 사람들은 바다 가운데에 있는 땅 만을 섬으로 표기했던 것이 아니라 내륙의 강물로 둘러싸인 곳도 섬[島]으로 불렀는데, 예를 들면 하북성 진황도(秦皇島)는 섬이 아니지만 島(섬도)자를 붙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 고대의 요동이 지금의 북경이라는 것을 모르고, 고려의 개경이 하북성 관성현(관성만족자치현) 임을 모르고, 한반도 압록강 하류의 위화도를 이성계가 회군했던 바로 그 위화도로 착각하는 한 위화도의 위치에 관한 모든 연구는 엉터리일 수 밖에 없는 것인데, 근래에 어느 학자가 위화도가 요녕성 단동시 관전현(寬甸滿族自治縣) 서점자(徐店子)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착각에 착각을 더하고 있고, 가설에 또 하나의 가설을 더한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