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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신라 사람들은 왜 서라벌 천경림(天鏡林)을 신성한 장소로 여기게 되었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 2021. 4. 3. 21:57

윤여동설 신라 사람들은 왜 서라벌 천경림(天鏡林)을 신성한 장소로 여기게 되었을까? - 최초주장

 

                                                    [금주시박물관 천후궁(天后宮, 天后行宮)]

 

  [천후궁(天后宮) 마조묘(媽祖廟) : 사소태후의 모습으로 추정된다]

 

[신라시조 혁거세의 어머니 사소(파소)태후의 젊을 때 모습으로 추정되는 진황도 산해관 해신묘 천후궁(天后宮)의 천후성모상(天后聖母像) : 사소(파소)태후는 신라에서 호국신으로 추앙받았던 듯하다]

 

   발해 북쪽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錦州市)는 필자가 신라(新羅)의 천년도읍지 서라벌(徐羅伐)로 밝힌 곳인데, 지금 그곳에 천후궁(天后宮)이 있다.

   신라 역사에서 천후성모(天后聖母)로 추앙받을 인물이라면 건국시조인 혁거세거서간의 어머니 사소태후(필자주 : 동부여 해부루왕의 딸인 사소공주이다. 파소라고도 한다)를 빼고는 생각할 수 없고,

   또 삼국유사 감통 선도성모(仙桃聖母) 수희불사 조를 보아도 나라에서 제사를 지낼 때 혁거세의 어머니인 사소태후를 성모(聖母), 신모(神母)로 부르며 항상 맨 위에 자리하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어 신라에서 사소태후를 극진히 예우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신라 법흥왕 때 서라벌에는 당시 신라 사람들이 신성한 장소로 여기던 천경림(天鏡林)”이라는 숲이 있었는데, 천경림(天鏡林)”을 신라 사람들이 왜 신성한 장소로 여기게 되었는지 그 확실한 이유는 전해지지 않았으나, 필자가 보기에 이는 건국시조인 혁거세거서간의 어머니인 사소(파소)태후[필자주 : 선도성모(仙桃聖母), 동신성모(東神聖母), 천후성모(天后聖母)라고도 불렀던 듯하다]와 관련이 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앞서 동부여 사소(파소)공주가 어느 남자와 정을 통하여 혼전임신이 되자 그 사실을 다른 사람이 알게 될까봐 두려워 그곳을 떠나 개마산을 넘고 동옥저를 거쳐 배를 타고 동예를 지나 진한 땅으로 와서 서라벌 동쪽에 위치한 양산(楊山)의 남쪽 나정(蘿井)에서 혁거세를 낳은 후 천경림(天鏡林)에 자리 잡고 머물러 살던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금주고탑역사문화공원 부근이 바로 옛날 신라 사람들이 신성한 장소로 여겼던 천경림(天鏡林) 터였음을 필자가 앞서 밝혔는데, 사소(파소)공주가 진한으로 온 이후 자리 잡고 살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천후궁(天后宮)도 바로 그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고, 또 그곳에 후일 흥륜사(興輪寺 : 필자주 : 지금 금주시의 광제사(廣濟寺)가 옛 신라의 흥륜사였을 것이다)가 세워졌고, 탑도 세워졌는데, 지금의 금주고탑(錦州古塔)이 바로 옛날 신라에서 유명했던 그 흥륜사탑으로 비정되기 때문이다.

 

                [옛 신라 흥륜사탑으로 비정되는 지금의 금주고탑(錦州古塔)]

 

            [멀리 보이는 금주고탑 옛사진과 금주시의 옛 읍성성벽 사진]

 

   따라서 법흥왕 때 다른 곳도 아닌 ,

  당시 이미 신격화(神格化) 되어,

  온 신라 백성들로부터 성모(聖母)로 추앙받고 있었을,

  바로 그 사소(파소)태후가 살았던 장소인 신성한 천경림(天鏡林)의 나무를 베어내고 그곳에 절을 지으려고 했으니,

  처음에 신라 사람들이 그에 적극 반대했을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 삼국유사 흥법 제3 아도기라(阿道基羅) 조를 보면, 금교(金橋) 동쪽의 천경림(天鏡林)이 전불시대 서라벌 일곱 곳의 절터 중 하나였다고 기록되어 있기도 한데, 이는 천경림 등 서라벌 곳곳에 절을 짓기 위한 명분 세우기였을 가능성이 많다.

 

 

   신라(新羅)는 한반도 경주에 없었다.

   신라는 발해북쪽 지금의 중국 요녕성 금주시(錦州市)를 중심으로 천년왕조를 이은 나라였다.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錦州市)가 신라의 천년도읍지 서라벌(徐羅伐)이었다.

  따라서 삼국사기 기록 속 신라(新羅)의 역사는 한반도가 아닌 발해 북쪽 지금의 중국 요녕성 금주시(錦州市)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고구려와 백제도 그 부근 하북성에 위치하고 있었다.

   한반도에서 신라를 찾지 마라.

   한반도 남부에는 투후 김일제의 후손들이 왕망의 신()나라가 멸망하자 대륙에서 도망쳐 와서 세운 흉노족왕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 현재의 요녕성 금주시(錦州市)의 천후궁 건물은 청나라 옹정, 가경 연간에 지은 것이라 한다.

한편의 소설 같기도 한 동부여 사소(파소)공주의 일생을 한편의 드라마로 제작하면 매우 흥미진진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