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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고구려 건국시조 추모왕(주몽)의 탄생지를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 2021. 9. 4. 10:13

윤여동설 고구려 건국시조 추모왕(주몽)의 탄생지를 찾았다 최초공개

 

 

   호태왕비문을 보면, 고구려의 건국시조 추모왕(주몽왕)의 혈통에 대하여 북부여 천제의 자손이고, 어머니는 하백의 딸(河伯女郞)이다.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내려와 태어나시니 성덕이 있고..........하늘의 명을 받아 남쪽으로 순행하여 부여의 엄리대수를 지날 때 왕이 나루에 다달아 말하기를 나는 황천의 자손이요 어머니는 하백(河伯)의 딸인 추모왕이다. 나를 위하여 갈대로 엮은 거북이여 떠오르라소리치니 갈대로 엮은 거북이 떠올라 다리를 만들어 주었다. 강을 건너 비류곡 홀본(졸본) 서쪽 성산 위에 도읍을 세웠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시조 추모왕(주몽왕) 조를 보면, “(동부여의) 해부루가 죽고 금와가 왕위를 이었다. (왕이) 어느 날 태백산 남쪽 우발수(優渤水)에서 한 여자를 만나 물으니, ‘我是河伯之女 名柳花(나는 하백의 딸로서 이름은 유화입니다). 어느 날 동생들을 데리고 나가 놀고 있는데, 마침 어느 사내가 나타나 자칭 천제의 자손이라 하면서 나를 웅심산 아래 압록강가에 있는 집안으로 유인하여 동침하고 가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나의 부모님은 내가 중매도 없이 남자와 관계한 것을 꾸짖고는 우발수(優渤水)로 귀양보냈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유화(柳花)가 곧 호태왕비문에 하백의 딸(河伯女郞)이라고 새겨져 있는 고구려의 건국시조 추모왕(주몽왕)의 어머니로서 주몽은 바로 이 우발수(優渤水) 부근에서 탄생했을 것이다.

 

삼국사기에 유화(柳花)와 만났다고 기록되어 있는 금와왕은 동부여 해부루왕의 오기임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주몽은 기원전 795월생이고, 동부여의 금와왕은 기원전 77년생으로서 주몽이 금와보다 두 살이 위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화가 귀양살이를 하고 있었다는 태백산(太白山) 남쪽 우발수(優渤水)를 찾으면 고구려의 건국시조 주몽의 탄생지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우발수(優渤水)는 지금의 어느 강을 말하는 것일까?

   앞서 필자는 고대의 태백산(太白山)이 지금의 북경 동북쪽 칠로도산(七老圖山)산맥 중 최고봉인 대광정자산(大光頂子山, 해발2,067m)임을 밝혀냈고, 동부여가 지금의 내몽골 정람기(正藍旗) 부근에 위치했었음을 밝혀냈었다.

   따라서 주몽의 어머니 유화(柳花)가 귀양살이를 했다는 우발수(優渤水)는 태백산 남쪽이며, 동부여의 도읍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역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동부여의 도읍으로 비정되는 지금의 내몽골 정람기(正藍旗), 다륜(多倫)의 동쪽에 고대의 태백산(太白山)이었던 지금의 대광정자산(大光頂子山)에서 발원하여 서남쪽, 남쪽으로 흘러 난하에 합류되는 소난하(小灤河)라는 강이 있고, 그 상류에 옛날 청나라의 강희제가 그곳을 지나갔다고 하여 어도구(御道口)라는 이름이 붙여진 산골 동네가 있다.

 

☆ 옛날 고구려의 태조대왕이 서기 121년에 동부여에 가서 유화태후의 사당에 제사지내고 돌아왔던 것이 청나라의 강희제가 지나갔다고 잘못 전해진 것은 아닐까?  

 

   그 주변은 지금 풍경이 아름다워 어도구초원삼림풍경구(御道口草原森林風景區), 도산호경구(桃山湖景區) 등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그곳은 공기가 시리도록 아주 맑고, 산자락에 형성되어 있는 넓은 초원에서 양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가적인 풍경이 펼쳐지며, 가을에는 군데군데 울긋불긋 물든 단풍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필자는 바로 이 소난하(小灤河) 상류의 어도구향(御道口鄕) 부근이 주몽의 탄생지일 것으로 보고 있는데, 아마 옛날 동부여의 해부루왕도 단풍구경을 하려고 기원전 80년 가을쯤에 이 어도구 부근에 왔다가 그곳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던 유화를 만났을 것이고, 다음해인 기원전 7955일에 주몽은 그곳에서 탄생했을 것이며, 주몽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동부여를 탈출하여 졸본으로 도망쳤던 곳도 그곳일 것이며, 또 후일 유화가 동부여에서 죽자 동부여의 금와왕이 태후의 예로써 장사지내고 사당을 지어 주었다는 곳도 바로 그곳일 것이며, 주몽의 아들 유리가 그 어머니 예씨와 함께 동부여에서 탈출하여 졸본으로 향했던 곳도 그곳일 것이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지금 중국 학자들이 원 상도성터라고 하는 유적이 있는 내몽골 정람기 부근을 여행하실 기회가 있거든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 어도구(御道口) 부근을 방문하셔서 고구려의 건국시조 주몽과 그 어머니 유화를 생각하며 주몽의 탄생지와 유화의 능을 찾아보신다면 의미 있는 여행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