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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고려의 청자(靑瓷)에서 조선의 백자(白瓷)로 갑자기 변화된 숨겨진 이유 - 최초주장

윤여동 2021. 11. 27. 10:17

윤여동설 고려의 청자(靑瓷)에서 조선의 백자(白瓷)로 갑자기 변화된 숨겨진 이유 - 최초주장

 

                                                               [위 : 고려상감청자주병]

                                                             [조선백자무문주병]

 

  대체적으로 고려시대 사람들은 청자(靑瓷)를 매우 선호했다고 전해지고 있고, 조선시대 사람들은 청자보다는 백자(白瓷)를 더 선호하며 사용했고, 그 전통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현대인들도 백자를 많이 사용한다.

  그런데 고려시대 사람들은 푸른 청자를 진짜 비취옥으로 만든 그릇인양 애지중지 하며 그 대체품으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 바로 후대인 조선시대 사람들은 왜 그토록 귀한 청자를 버리고 새롭게 하얀 백자를 만들어 사용했던 것일까?

  단순하게 백자가 청자에 비하여 깨끗해 보이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풍기기 때문에 좋아하게 되었던 것일까?

  물론 무슨 물건이던지 수백 년을 이어 사용했다면 식상할 만 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서서히 변화한 것이 아니라 갑자기 온 조선 백성들이 청자를 버리고 백자를 사용하게 되었다면 거기에는 분명 지금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이유가 있을 가능성이 많다.

 

                                                           [청 건륭제의 백옥옥새]

 

  예로부터 동양 사람들은 옥()을 매우 귀하게 여겼다.

  그리하여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숭고한 것을 지칭할 때는 옥()에 비유하는 관습을 가지게 된다.

  임금의 자리를 옥좌(玉座)라 했으며, 임금의 말소리를 옥음(玉音)이라 했고, 임금의 도장을 옥으로 만들고 옥새(玉璽)라 했으며, 관리의 꽃이라는 홍문관을 옥당(玉堂)이라고도 불렀고, 귀한 아들을 옥동자(玉童子)라 했다.

  그리고 옥으로 반지, 팔찌, 귀걸이, 목걸이, 떨잠, 옥대, 옥관자 등 장신구를 만들어 항상 몸에 패용했고, 옥으로 그릇이나 생활용기를 만들어 아주 소중하게 사용하기도 했다.

  옥()은 우리 동양인들에게 있어 지상 최고의 보물로 인식되고 있었던 것인데, 대체적으로 고려 사람들은 색깔이 푸른 비취옥(翡翠玉)을 더 선호했던 것으로 보이고, 조선시대 사람들은 백옥(白玉)을 더 선호했던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인데, ()의 품격으로 본다면 백옥이 더 상위에 속한다

  그런데 필자가 왜 비취옥(翡翠玉)과 백옥(白玉)을 언급하느냐 하면, 고려청자(高麗靑瓷)와 조선백자(朝鮮白瓷)가 그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 대부분의 일반 사람들은 우리의 고려가 한반도의 개성에 도읍하고 500년간 존속했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고려는 한반도에 위치하고 있던 나라가 아니었다.

  고려는 지금의 발해 북쪽 하북성 관성현(관성만족자치현)에 도읍하고 그 주변 땅을 차지하고 있던 나라였다. 따라서 비색의 고려청자는 바로 그 지역에서 만들어지고 사용되어 진 도자기였다.

 

고려의 그 앞 왕조인 신라, 백제, 고구려 역시 한반도가 아니라 발해 북쪽에 위치하고 있던 나라였고, 또 그 앞 왕조인 삼한, 고조선(왕검조선), 환웅의 단국, 환인의 환국 역시 대륙에 위치하고 있던 나라였다. 고려로부터 그 이전의 우리 고대사와 상고사는 한반도역사가 아니라 대륙역사이다.

 

  그런데 14세기 말 발해 북쪽 대륙에 위치하고 있던 고려를 멸망시킨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한 후 바로 그곳 대륙을 떠나 한반도의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다. 이때 조선 태조 이성계가 왜 선조들로부터 수천년간 대대손손 살아온 대륙을 떠나 한반도의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게 되었는지 그 내막은 전해진 것이 없어 확실하게 알 수 없으나 추정해보면, 욱일승천 하듯 강해지고 있는 명나라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고, 또 당시 명나라와 조선 간에 무슨 비밀 협정이 있었을 수도 있을 것이며, 또 우리가 지금 알지 못하는 천재지변이 있어 대륙을 떠나 한반도로 왔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되어 우리 선조들이 환인, 환웅시대로부터 대를 이어 살아왔던 발해 북쪽 대륙의 땅은 명()나라가 차지하게 되었고, 명나라를 이어 청()나라 땅이 되었기 때문에 지금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발해 북쪽 그 대륙의 땅이 우리의 옛 땅이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게 되고 말았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발해 북쪽 대륙에서 살다가 갑자기 한반도로 옮겨 왔을 조선의 왕실과 관리들 그리고 일반백성들은 처음에는 대륙에서 살았던 방식대로 한반도에서도 청자그릇을 사용하려고도 했을 것이나 그것이 여의치 않았을 가능성이 많다.

 

조선 초에는 고려시대에 비전되어 오던 청자의 제작기법이 이미 단절되어 있어 품질 좋은 청자를 만들어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자 대륙에서 온 도공들은 한반도에서 그릇을 구울 수 있는 점토를 찾아 나서야 했고, 결국 질 좋은 백토(白土)를 찾아냈을 것이다.

  그리하여 도공들은 그 백토를 이용하여 백자(白瓷)를 구워 보았을 것인데, 만들고 보니 그 색깔이 마치 진짜 백옥을 다듬어 만든 백옥기(白玉器)처럼 보였을 것이다.

  백옥(白玉)은 옥 중의 옥이라 할 수 있는 것인데, 백자가 마치 진짜 백옥으로 만든 백옥기(白玉器)처럼 보이자 조선왕실에서도 백옥빛깔을 띄고 있는 품위있는 백자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것으로 생각되고, 일반 백성들에게도 퍼져 나가 온 조선백성들이 백자를 사용하게 되어 명실 공히 조선은 백자의 나라가 되었다.

  그러다가 아무런 무늬가 없는 하얀 백자가 너무 밋밋하여 사람들이 싫증을 내기 시작하자 도공들은 그 하얀 백자 표면에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게 되었을 것인데, 청화백자, 철화백자, 진사백자 등이 그에 해당하고 또 고려 때의 상감기법을 적용한 백자가 생산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조선시대 사람들이 왜 백자를 사용하게 되었는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고, 백자가 백옥을 닮았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었는데, 생각을 조금 바꾸어 보니 조선시대 사람들은 백옥빛깔을 띄고 있는 하얀 백자를 만들어 백옥기처럼 생각하며 사용했을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추론이다.

  이를 보면, 결국 고려청자나 조선백자의 제작이유 중심에는 동양인들이 오랜 세월동안 귀하게 여기며, 천지의 정수로 대접한 옥()이 있었던 것이다.

  옥()의 신비한 불멸의 생명성이 그릇으로까지 나타났던 것이고, 비록 지금은 옥()이 옛날처럼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는 있지만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는 그 옥()의 영향이 내재되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동양인들의 지상 최고의 보물 옥()!

  그리고 그 옥()의 대체품으로 만들어진 우리의 고려청자(高麗靑瓷)와 조선백자(朝鮮白瓷)는 세계에 널리 알려야 할 우리의 자랑이라 할 것이다.

 

                                                                [위 : 조선백자]

 

                                                                 [위 : 춘천백옥원석]

 

                                                                  [위 : 화전백옥 원석]

                                                    [위 : 홍산문화 출토 옥제품]

 

                                                           [위 : 송대 백옥기]

 

                                                            [위 : 조선시대 옥제품]

 

                                               [위 :  무형문화재 장주원 작 백옥향로]

 

                                             [위 : 춘천옥산가의 우아한 백옥목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