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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세 부여(북부여, 졸본부여, 동부여)의 삼각관계 – 최초주장

윤여동 2021. 12. 18. 20:07

윤여동설 세 부여(북부여, 졸본부여, 동부여)의 삼각관계 최초주장

 

 

단군왕검          천제                 해씨                                     해씨

넷째아들          해모수        |해모수 북부여       →  해부루 동부여(가섭원부여)

부여      →       부여    →    |     

                                           |동명왕 졸본부여     |   추모 고구려(해씨,고씨)

                                                부여씨                     |

                                                                                |    온조 백제(부여씨)

     

단군왕검의 넷째 아들이었던 부여씨(扶餘氏)의 맥이 졸본부여의 동명왕과 백제 온조왕으로 이어졌으니 백제가 고조선(왕검조선)의 정통맥을 이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역사상 나타나는 부여(扶餘)는 넷이다.

  고조선의 도읍 왕검성의 서쪽방향에 위치했으며, 단군왕검의 넷째 막내아들 부여(扶餘)에게 봉했던 원래의 부여(扶餘)가 있었고,[필자주 : 하북성 장가구시 일원]

  고조선(왕검조선) 말기에 왕실의 외척으로 보이는 해모수(解慕漱)가 기원전 239년에 원래의 부여를 차지하고 왕위에 올라 그 후손으로 왕위를 이어갔으나,

  기원전 108년의 혼란한 시기에 이르러 단군왕검의 넷째이들(막내아들) 부여(扶餘)의 혈손으로 보이는 부여두막루(扶餘豆莫婁 : 필자주 : 이가 곧 동명왕이다)가 부여의 남부 지역인 졸본을 차지하고 졸본부여(卒本扶餘)를 세우게 되어 이때 부여는 두 나라로 분국 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역사에서는 북쪽에 위치했던 부여는 북부여(北扶餘)라 하게 되고,[필자주 :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일원]

남쪽에는 졸본부여(卒本扶餘)가 위치하게 된다.[필자주 :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후성진 일원] 

  그랬다가 기원전 86년 동명왕(東明王)의 졸본부여가 북부여를 병합하게 되자 북부여의 해부루가 북부여 유민들을 이끌고 동북쪽 창해군 예()가 위치한 가섭원(迦葉原) 땅으로 옮겨가 그 땅을 빼앗아 차지하고 다시 부여를 재건하게 되는데, 역사에서는 이를 동부여(東扶餘)라 한다.[필자주 : 내몽골 석림곽륵맹 정람기, 다륜 일원]

 

동부여는 가섭원을 중심으로 사방 수천리의 강역을 가진 대제국을 이루어 580여 년간 유지하다가 결국 고구려 문자왕 때 고구려에 복속되어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동부여를 찾으려면 지금의 난하[필자주 : 옛 패수이다] 최상류인 내몽골 다륜, 정람기 부근으로 가야한다.

 

  한편 동부여에게 그 땅을 빼앗긴 창해군 예()는 동쪽으로 향하여 개마산을 넘어 동쪽 대해(大海) 가에 위치한 임둔[필자주 : 후일의 명주이다] 땅으로 옮겨가 다시 그 땅을 차지하고 예를 재건하게 되는데, 역사에서는 이를 동예(東濊)라 한다.[필자주 : 내몽골 통요시 고륜기 일원]

 

동예(東濊)에게 그 땅을 빼앗긴 임둔(臨屯) 사람들이 그대로 동예에 동화되어 소멸하고 말았는지, 그곳을 떠나 대해를 건너 어딘가로 옮겨 갔는지는 지금 잘 알 수 없다.

 

  한편 원래의 부여 땅을 통합했던 졸본부여는 후일 추모왕의 고구려로 거듭나게 되고,

  졸본부여 동명왕의 후손인 온조왕은 졸본을 떠나 대수와 패수를 건너 진번 남쪽 한산 부근으로 장소를 옮겨 그곳에 백제를 건국하게 되는 것이다.

 

후일 백제의 성왕이 도읍을 웅진에서 사비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南扶餘)라 했던 것은 백제 왕실이 동명왕이 세웠던 졸본부여의 영광을 다시 한 번 재현해 보고자 하는 염원의 발로였다고 볼 수 있다.

 

[졸본으로 추정되는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후성진의 풍광]

 

 

[옛 부여와 북부여의 도읍성으로 추정되는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동부여의 중심강역 난하 최상류 섬전하 유역, 사서에는 동부여의 강역이 동이 중에서 가장 평탄하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