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카테고리 없음

윤여동설 – 천년의 의문 열수(洌水, 列水), 습수(濕水), 선수(仙水)의 위치 찾기 – 최초공개

윤여동 2022. 1. 2. 09:35

윤여동설 천년의 의문 열수(洌水, 列水), 습수(濕水), 선수(仙水)의 위치 찾기 최초공개

 

                                     

 

 

   후한서 지리지 제23 군국5 낙랑군 조를 보면,

  “낙랑군은 (전한) 무제 때 설치했는데, 낙양 동북5천리에 위치한다. 18개성으로서 호구수는 61,492호이고, 인구는 257,050명이다.

  조선(朝鮮), (: 남감), 패수(浿水), 함자(含資), 점선(占蟬), 수성(遂城), 증지(增地), 대방(帶方), 사망(駟望), 해명(海冥), 열구(列口)[곽박 왈, 산해경(山海經)에 이르기를 열()은 물의 이름이라 했다. 열수(列水)는 요동(遼東)에 있다], 장잠(長岑), 둔유(屯有), 소명(昭明), 누방(鏤方), 제해,(提奚) 혼미(渾彌), 낙도(樂都)“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전한 무제 때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땅을 나누어 4(四郡)을 설치했는데, 이것이 소위 한사군(漢四郡)으로서 낙랑군(樂浪郡), 진번군(眞番郡), 임둔군(臨屯郡), 현토군(玄菟郡)이었다.

  그런데 전한 낙랑군 25개현 중에도 열구(列口)가 있고, 후한 낙랑군 18개현 중에도 열구(列口)”가 있으며, 그곳에 열수(列水)”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후한서에는 낙랑군 조의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먼 옛날 기록인 산해경(山海經)을 인용하여 주를 달아 열수가 요동에 있다고 기록한 것이다.

  앞뒤가 잘 맞지 않는 기록이라 할 것인데, 필자는 이를 열수가 요동군에 속했다는 말이 아니라 광의의 요동에 위치하고 있다고 기록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또 사기 권115 조선열전 제55를 보면,

  “朝鮮有濕水,洌水,仙水三水合爲洌水疑樂浪,朝鮮取名於此也(조선에는 습수, 열수, 선수가 있는데, 세 물이 합하여 열수가 된다. 의문스럽지만 낙랑, 조선의 지명을 이에서 취하였다고도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열수(列水)와 열수(洌水)의 한자가 약간 다르게 표기되었지만 이는 같은 강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마치 노파의 얼굴모습을 하고 있는 대륙 강화의 지형 : 마고 전설의 발상지로 보인다]

 

  그렇다면 고대의 열수(列水, 洌水)는 과연 지금의 어느 강을 말하는 것일까?

  요동군(遼東郡)은 요수(遼水)의 동쪽에 위치한 군이라는 뜻으로서, 고대의 요동군(遼東郡)은 지금 중국의 도읍인 북경지역을 말하는 것으로서,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우리의 고구려와 백제는 바로 이 북경 동쪽 1천여리에 위치하고 있었던 나라였고, 신라, 가야 역시 발해 북쪽 대륙에 위치하고 있던 나라였다.

  우리의 삼국과 가야는 모두 한반도에 위치하고 있던 나라가 아닌 것이다.

 

고대의 요동군을 천진지역이라 주장하는 사학자도 있던데, 고대에 천진지역은 저지대로서 갯펄이 형성되어 있어 사람이 살기에 그리 알맞은 곳이 아니었다. 고대의 요동군은 지금의 중국 북경지역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고대의 요수(遼水)는 지금 북경 서쪽을 지나 발해로 흘러들어가는 지금의 영정하(永定河) 강줄기를 말하는 것이 틀림없고,

  요동에서 450리 떨어져 있고, 강물 빛이 오리의 머리색과 비슷하여 압록강(鴨綠江)이라 불렀다는 강은 지금 북경 북쪽, 동북쪽, 동쪽을 흐르는 백하(白河), 밀운수고(密雲水庫), 조백하(潮白河)로 이어지는 강 줄기를 말하는 것이며,

  고대의 살수(薩水)는 지금의 북경 동북쪽 고북구를 통과하여 밀운수고로 흘러드는 조하(潮河)를 말하는 것으로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살수대첩은 바로 지금의 이 고북구 부근에서 일어났던 전투를 말하는 것이며,

  패수(浿水)는 옛 왕검성, 평양성이었던 하북성 승덕시 부근을 지나는 강을 말하는 것으로서 지금의 난하(灤河)를 말하는 것이다.

  이는 수경(水經), "패수는 낙랑 누방현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임패현을 지나 동쪽으로 바다로 들어간다(浿水出樂浪鏤方縣 東南過於臨浿縣 東入於海)"라고 기록하고 있어 지금 한반도의 대동강과는 물길이 반대로 흐르기 때문에 한반도 북한 평양을 지나는 대동강을 옛 기록 속의 패수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지금 중국 하북성 진황도 서쪽 갈석산 부근을 지나 발해로 흘러드는 난하(灤河)는 내몽골 섬전하(閃電河)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흐르면서 승덕시 서쪽에서 이손하(伊遜河)를 합류하고, 승덕시의 남쪽을 지나면서 또 무열하(武烈河)를 합류한 후 다시 동남쪽으로 흐르다가 승덕현에서 노우하(老牛河)를 합류하, 대장자에서 유하(柳河)를 합류한 후 계속 흐르다가 폭하(瀑河)를 합류한 후 반가구수고로 들어가 만리장성을 통과하고 다시 남쪽으로 대흑정수고를 지나고 천서를 지나 장하(長河)를 합류하면서 동쪽으로 잠깐 흐른다. 그리고 다시 청하(淸河)와 합류해 방향을 동남쪽으로 돌려 천안을 지난 후 노룡에서 청룡하(靑龍河)와 합류한 후 서남쪽으로 잠깐 흐르다가 낙정 동쪽에서 물길을 동쪽으로 돌려 발해로 흘러 들어가는 강으로서 수경에서 말하고 있는 패수(浿水)에 대한 기록은 바로 이 강 즉 지금의 난하 강물의 흐름을 그대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라 판단된다.

  따라서 필자는 이 지금의 난하(灤河)가 바로 상고시대에는 열수(列水, 洌水)로 불리웠다가 어느 시점에 패수(浿水)로 바뀌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하여 옛 열수(列水)의 흔적이 후대까지도 남아 열구현(列口縣)이란 지명이 존속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즉 옛 상고시대 사람들은 지금의 난하(灤河)를 열수,

이손하(伊遜河)를 습수,

무열하(武烈河)를 선수라고도 불렀고,

또 우리의 삼국시대 고구려 사람들은 지금의 난하를 패수(浿水)라 불렀을 것이며,

그 하류에 위치했던 백제 사람들은 난하 하류를 백강(白江)이라고도 불렀을 것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열수, 습수, 선수가 합류되는 그 하류를 열수(洌水)라고도 했다고 하였으므로 이는 지금의 난하를 말하는 것으로서 옛 열구현(列口縣)과 열수(列水)는 지금의 난하 중류에 접한 일부지역을 말하는 것으로서, 필자는 지금의 하북성 당산시 천서현 일원을 옛 열구현으로 비정하고 있고, 지금의 난하 대흑정수고 부근을 열수(列水, 洌水)로 비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열구(列口)와 혈구(穴口)를 같은 곳으로 보면,

  열구(혈구)는 곧 강화를 말하는 것으로서 지금 하북성 당산시 천서현 일원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또 이곳이 옛 마고전설의 발상지로 보이기 때문이며, 이곳에는 지금까지도 옛 단군왕검의 세 아들들이 쌓았다는 삼랑성(三郎城)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고조선 때는 갑비고차(甲比古次)라고 불렀고, 고구려 때는 혈구군(穴口郡)으로 불렀다고 하며, 이 부근에 위치하고 있던 관미성(關彌城)을 차지하기 위해 백제와 고구려가 쟁탈전을 펼쳤던 곳이며, 고려 때는 그곳 지명이 강화로 바뀌었는데, 고려의 도읍 개경이 지금의 하북성 관성현(관성만족자치현)으로서, 그곳에서 가까운 이곳 강화(江華)로 천도하고 대몽항쟁을 펼쳤던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위 그림을 보시라.

 

한반도의 강화도는 이성계의 조선이 발해 북쪽 대륙으로부터 한반도로 천도한 후 그 대륙의 지명을 옮겨 놓은 가짜 강화도이다.

  반도식민사관론자들은 한반도의 강화도가 고조선 때 단군들이 하늘에 제사지낸 곳이라고 하기도 하고, 대몽항쟁을 할 때 삼별초의 중심지였다고 하기도 하는데, 이는 거짓으로서 고려는 한반도에 존속했던 나라가 아니라 지금의 발해 북쪽 중국 하북성 관성현(관성만족자치현)에 도읍하고 그 주변 땅을 차지하고 있던 나라였고, 한반도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대륙을 떠나 한반도의 한양으로 도읍을 옮김으로서 그 이후 우리 역사의 중심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