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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고조선 단군왕검의 아들들 부루(扶婁), 부소(扶蘇), 부우(扶虞), 부여(扶餘)에게 봉해졌던 봉국(封國)의 현재위치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 2023. 3. 4. 14:26

윤여동설 고조선 단군왕검의 아들들 부루(扶婁), 부소(扶蘇), 부우(扶虞), 부여(扶餘)에게 봉해졌던 봉국(封國)의 현재위치 찾기 최초주장

 

 

 

  고조선(왕검조선)의 건국시조 단군왕검(檀君王儉)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다고 전해져 오고 있는데, 곧 부루(扶婁), 부소(扶蘇), 부우(扶虞), 부여(扶餘)이다.

 

단군왕검의 아들들 출생순서가 장남 부루(扶婁), 차남 부우(扶虞), 삼남 부소(扶蘇),  막내 부여(扶餘)라고도 하고, 또는 장남 부루, 차남 부소, 삼남 부우, 막내 부여 순으로 태어났다고도 한다. 

 

  그런데 고조선(古朝鮮, 王儉朝鮮)

  첫 도읍 아사달(阿斯達)이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지,

  두 번째 도읍 평양 왕검성(王儉城)이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지,

  세 번째 도읍 백악산아사달(궁홀산아사달)이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지,

  장당경(당장경)이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지 우리는 그 위치를 잃어버렸었으나,

  필자가 그 위치를 찾아내었고, 단군왕검의 세 아들들이 힘을 합쳐 쌓았다는 갑비고차(甲比古次, 필자주 : 후세의 혈구, 강화를 말한다)의 삼랑성(三郎城) 위치도 찾아내었다.

 

  고조선의 첫 도읍 아사달은 지금의 발해 북쪽 내몽골 적봉시 영성현 서쪽에 위치한 대명진토성(大明鎭土城)이고,

 

지금 중국에서는 이 영성의 대명진토성을 거란() 중경대정부터라고 하고 있는데, 순 엉터리 비정이다.

 

  두 번째 도읍 평양 왕검성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이며,

  세 번째 도읍 백악산아사달(궁홀산아사달)은 지금의 북경 동북쪽 무령산(霧靈山) 부근이고,

  장당경(당장경)은 지금의 내몽골 적봉시 영성현(寧城縣)이다.

 

당장경(唐藏京, 唐莊京, 필자주 : 장당경이라고도 한다)() 자가 붙여져 있기 때문에 고조선의 네 번째 도읍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나, 사실은 도읍이 아니라 고조선(왕검조선) 초 평양 왕검성지역에 수재가 났을 때, 단군왕검의 명으로 피해 입은 백성들을 첫 도읍 아사달 아래로 이주시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던 곳이다. 그리하여 그곳은 고조선 왕실에서 직접 관할하는 직할지가 되었고, 그 백성들은 왕실에 절대충성하는 백성이 되었으며, 첫 도읍 아사달성을 관리하며 농사짓고 살았다. 그 부근이 들이 넓고 강 상류였기 때문에 수재가 없었고 농사가 잘되어 백성들이 부유해져 고조선의 낙원이라 불렸다고 한다. 지금의 내몽골 적봉시 영성현이 지금까지 그 위치를 잃어버렸던 당장경(장당경)인데, 후일 고조선의 마지막 단군 고열가가 권력을 잃고 장당경(당장경)으로 낙향하자 당장경(장당경) 백성들은 고열가를 받아들여 잠시 머무르게 하였고, 그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던 아사달성을 수리한 후 고열가 단군이 그 아사달성에 들어가 살면서 선조들의 제사를 모실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고대 우리 한민족의 성산(聖山)이었던 태백산(太白山, 필자주 : 후일 백두산이라 하였다)은 지금의 북경 동북쪽의 대광정자산(大光頂子山, 해발 2,067m)이고,

 

  고대의 요수(遼水)는 지금의 북경 서쪽을 지나 발해로 흘러 들어가는 영정하(永定河)이며,

  압록강(鴨綠江, 鴨淥江)은 지금의 북경 북쪽을 흐르는 백하(白河)를 말하는 것으로서, 일반적으로 지금의 북경 동북쪽 밀운수고(密雲水庫) 부근을 말하며,

  살수(薩水)는 북경 동북쪽에서 고북구(古北口)를 지나 밀운수고로 흘러들어가는 지금의 조하(潮河)를 말하는 것으로서 고구려때의 살수대첩(薩水大捷), 고려 때의 귀주대첩은 바로 이 고북구 부근에서 일어났던 전투를 말하는 것이며,

  패수(浿水)는 지금의 난하(灤河)를 말하는 것이다.

 

 

  자!

  사실이 이러하다면, 단군왕검의 아들들에게 주어졌던 봉지(封地)도 지금의 발해북쪽 대륙일 것인데,

  규원사화에는 부소(夫蘇), 부우(夫虞) 그리고 막내아들 부여(夫餘)는 모두 나라의 서쪽 땅에 봉했는데, 구려(句麗), 진번(眞番), 부여(夫餘) 등의 여러 나라이다라고 기록되어 전해졌는데, 사실 진번은 왕검성의 동쪽에 위치했던 곳이고, 구려는 왕검성의 서남쪽, 부여는 왕검성의 서쪽에 위치한 곳이었다.

  따라서 오늘은 그 아들들에게 주어졌던 봉지의 구체적 위치를 찾아보는 시간을 갖기로 한다.

  장자인 부루(扶婁)는 태자(太子)로 봉해져 도읍인 왕검성(필자주 :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에서 살았으므로 별도의 봉지가 필요 없었고,

  둘째인 부소(扶蘇)는 옛 환국(桓國)의 도읍이었던 진번(眞番) 지역에 봉했는데, 지금의 요녕성 능원시(凌源市) 일원이다.

  지금 능원 우하량선사유적지는 옛 환국으로부터 이 부소의 후손으로 이어진 유적일 가능성이 많고, 후일 진번(眞番), 맥국(貊國)으로 거듭나게 되는데, 이 부소의 후손들은 후일 성씨를 소씨(蘇氏)라 했던 듯하고, 먼 후손들은 진한지역으로도 옮겨가 신라 건국의 주역이 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셋째인 부우(扶虞)는 도읍인 왕검성의 서남쪽에 위치한 구려(句麗) 지역에 봉했는데, 이곳은 요동(遼東, 필자주 : 고대의 요동은 지금의 북경일원을 말하는 것이다)과 매우 가까이 위치해 있고, 서남쪽 선비와 중국 세력들의 침공을 방어할 수 있는 요충지로서 지금의 북경시 연경(延慶) 일원이다.

  이 부우의 후손들은 성씨를 고씨(高氏)라 했고, 태조대왕(太祖大王)으로부터 그 이후의 고구려 고씨왕(高氏王)들이 바로 이 부우의 후손들로 보인다.

  넷째인 막내아들 부여(扶餘)는 왕검성의 서쪽에 봉했는데, 지금의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赤城縣) 일원으로서, 고조선의 강역 서쪽, 서북쪽으로부터 침공해 오는 외적을 방어할 수 있는 요충지이다.

  졸본부여의 건국시조 동명왕(東明王)과 백제 건국시조 온조왕(溫祚王)이 바로 이 부여의 직계 후손이었기 때문에 성씨를 부여씨(扶餘氏)라 했던 것이고, 북부여의 해모수(解慕漱) 천제와 동부여의 해부루왕(解夫婁王)은 이 부여의 외손으로 추정되며, 고구려 건국시조 추모왕(주몽왕)은 북부여 해모수 천제의 혈손이었다.

   그리고 고구려 6대 태조대왕(太祖大王)으로부터 나타나는 고씨왕(高氏王)들은 추모왕(주몽왕, 해씨)의 딸 해씨가 구려의 고씨에게 시집가 낳은 후손들이니, 이는 결국 후일에 이르러 부여의 혈손과 부우의 혈손들이 힘을 합쳐 세운 나라가  곧 고구려라는 말이 된다.

  부소의 후손들은 후일 진번국, 맥국으로 변화했던 것이고,

  부우의 후손들은 후일 구려에서 고구려로 재탄생했던 것이며,

  부여의 후손들은 후일 졸본부여, 백제로 거듭났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고조선 단군왕검의 네 아들들 즉 부루, 부소, 부우, 부여의 이름이 수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고 전해오고 있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참고]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군기(檀君紀),

이때 단군의 교화가 사방에 두루 미치게 되어,

북쪽으로는 대황(大荒)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알유(猰貐)를 거느리고,

남쪽으로는 해대(海岱)에 이르고,

동쪽으로는 창해(蒼海, 필자주 : 대해의 오기이다)에 닿았다.

위엄과 가르침이 더욱 높고 커져 천하의 땅을 나누어 훈적에 따라 나누어 주었다.

치우씨(蚩尤氏)의 후손들에게는 남서쪽의 땅을 주었는데, 들이 넓고 바다와 하늘이 푸르러 람국(藍國)이라 하니 치소는 엄려홀(奄慮忽)이다.

신지씨(神誌氏)의 후손에게는 동북쪽의 땅을 주니 산하가 웅장하고 풍기가 굳세어 오진국(傲侲國) 또는 숙신(肅愼)이라 했는데 방언으로 호장(豪莊)이라는 의미이다. 치소는 숙신홀(肅愼忽)이다.

고시씨(高矢氏)의 후손은 동남쪽의 땅에 봉했는데, 산하가 수려하고 초목이 무성하여 청구국(靑丘國)이라 하였다. 치소는 낙랑홀(樂浪忽, 필자주 : 이것은  이상하다)이다.

주인씨(周因氏)의 후손에게는 개마국(蓋馬國)을 주고,

여수기(余守己)는 예군(穢君, 濊君)으로 삼았다.

부소(夫蘇), 부우(夫虞) 그리고 막내아들 부여(夫餘)는 모두 나라의 서쪽 땅에 봉했는데, 구려(句麗), 진번(眞番, 필자주 : 진번은 왕검성의 동쪽에 위치했었다), 부여(夫餘)등의 여러 나라이다.

그 후에 부루가 동쪽에서 온 세 사람을 각지에 봉하였다.

후세의 옥저(沃沮), 졸본(卒本), 비류(沸流)라고 한 것은 봉국의 나라 이름이다.

단씨의 세대를 통하여 보면, 큰 나라는 아홉, 작은 나라는 열둘로 나뉘어 천하의 여러 주를 다스렸으나 자세한 것은 지금 알 수 없다.“라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