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신라와 백제의 접경지역에 위치했던 신라 아막산성(阿莫山城)의 추정위치 - 최초공개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왕 조를 보면,
“3년 임술(A.D.602) 가을8월 왕이 군사를 출동하여 신라의 아막산성(阿莫山城, 母山城이라고도 한다)을 포위했더니 신라왕 진평이 정예 기병 수천을 보내어 막아 싸워 우리 군사가 불리하여 돌아 왔다.
신라에서 소타(小陀), 외석(畏石), 천산(泉山), 옹잠(甕岑) 등 네 개 성을 쌓아 우리의 변경을 침범하여 오므로 왕이 분개하여 좌평 해수(解讎)에게 명령하여 보병, 기병 4만을 거느리고 그 네 개 성을 치게 하였다.
신라 장군 건품, 무은 등이 군사를 거느리고 대항하여 싸우니, 해수가 불리하게 되어 군사를 이끌고 천산(泉山) 서쪽 큰 진펄 가운데로(泉山西大澤中) 후퇴하여 군사를 숨겨 놓고 기다렸더니 무은이 이긴 기세를 타서 갑옷 입은 군사 1천을 거느리고 큰 진펄까지 추격하여 왔을 때 숨었던 군사가 내달아 갑자기 치니 무은은 말에서 떨어지고 군사들은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
이 때 무은의 아들 귀산이 큰 소리로 말하기를 “내 일찍이 ‘군사는 싸움터에서 물러서지 말라’고 스승께서 말씀 하셨으니 어찌 달아나 스승의 가르침을 거역하겠는가?” 하면서 말을 아버지에게 주고 즉시 소장 추항과 함께 창을 휘둘러 힘껏 싸우다가 죽으니 나머지 군사들이 이것을 보고 더욱 분발하게 되니 우리 군사가 패하고 해수는 겨우 모면하여 단신으로 돌아 왔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평왕 조에도, “24년(A.D.602) 가을8월 백제가 와서 아막성(阿莫城)을 쳤다. 왕이 장병들로 하여금 맞아 싸우게 하여 역전시켰는데, 귀산과 추항이 여기에서 죽었다”라고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어 이때 백제가 신라의 아막산성(阿莫山城)을 공격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신라가 접경지역을 잠식해 들어와 소타성(小陀城), 외석성(畏石城), 천산성(泉山城), 옹잠성(甕岑城) 등을 쌓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백제 무왕은 대대적으로 군사들을 동원하여 국경을 넘어 잠식해 들어온 신라군을 내쫓고자, 그 지휘부 역할을 하고 있는 신라의 아막산성과 새로 쌓은 네 개 성을 쳤으나 오히려 백제군이 대패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때 백제군과 신라군은 지금의 어디에서 전투를 했던 것일까?
당시 신라의 천년 도읍 서라벌은 한반도의 경주가 아니라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錦州市)였고,
백제의 도읍 사비성은 하북성 당산시 난하변의 난주(灤州)였으며,
웅진은 진황도 노룡이었고, 백제의 북한산은 진황도 도산(都山)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고구려의 평양성은 하북성 승덕시였으며,
가야는 요녕성 호로도시 일원을 차지하고 있다가 신라에 병합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고대의 요동은 지금의 중국 북경지역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중국 사서들에 “고구려와 백제는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기록들이 남겨졌던 것이다.
따라서 이때 신라와 백제는 한반도가 아니라 발해 북쪽, 북경 동쪽 대륙에서 다투고 있었던 것으로서, 신라의 아막산성(阿莫山城)은 진평왕 24년(A.D.602) 당시 신라와 백제의 접경지역을 찾으면 바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앞서 신라의 진흥왕은 550년대에 강역을 많이 넓혔는데,
550년 : 고구려 도살성과 백제 금현성 탈취
551년 고구려의 10개 군을 탈취
553년 : 백제 동북지역을 빼앗아 신주(新州) 설치
554년 :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 성왕을 죽이고 대승
555년 : 완산주 비사벌에 설치
북한산 순행, 국경을 넓힘
556년 : 비열홀주 설치
557년 : 국원소경 설치
사벌주 폐지, 감문주 설치
신주 폐지, 북한산주 설치
558년 : 귀척자제와 6부호민으로 국원소경 실제화
562년 : 가야(대가야) 멸망
565년 : 완산주 폐지, 대야주 설치
568년 : 북한산주 폐지, 남천주 설치
비열홀주 폐지, 달홀주 설치 등이고,
진지왕 역시 짧은 재위 기간이었지만 백제와 대립하였고, 그 뒤를 이어 진평왕이 왕위에 올랐는데, 과연 이때 아막산성(阿莫山城)이 있던 신라와 백제의 국경은 지금의 어디쯤이었을까?
진흥왕이 555년에 순행했던 북한산(北漢山)은 지금의 진황도 도산(都山)으로 밝혀졌고,
557년에 설치했던 국원소경(國原小京)이 지금의 발해 북쪽 양하수고(洋河水庫)가 있는 하북성 진황도 무녕현 태영진(台營鎭) 부근으로 비정되므로 이때 신라와 백제의 국경은 아마 지금의 양하(洋河)였을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양하(洋河)는 발해 북쪽 지금 창려의 갈석산(필자주 : 옛 지리산이다)의 동쪽을 흐르는 강으로서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 발해로 흘러들어 가는 강인데, 진황도 무녕현(撫寧縣)이 바로 이 강의 강변 동쪽 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신라의 최전선에 위치했을 아막산성((阿莫山城), 母山城이라고도 한다)은 바로 이 무녕현에 위치한 성이었을 가능성이 많은데, 지금의 자금산(紫金山) 공원이 옛 아막산성(阿莫山城)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 진황도 무녕현에서 노룡현, 난주로 가기위해 넘는 고개가 그 유명한 탄현(炭峴)으로서 지리산(현 갈석산)의 북쪽에 위치한다.
그러므로 이때 신라에서 당시 국경선이었을 지금의 양하(洋河)를 건너 서쪽의 백제 영역에 소타성, 외석성, 천산성, 옹잠성을 쌓았던 듯하다.
양하(洋河) 서쪽지역은 지리산(필자주 : 지금의 진황도 창려 갈석산)의 동쪽, 남쪽 지역에 해당되는데, 백제가 이곳을 신라에게 빼앗길 경우 도읍인 사비성(필자주 : 당산시 난주)의 방어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리산의 서쪽 지역은 넓은 평원지역으로서 도읍방어를 위한 지형지물이 마땅하지 않기 때문에 잘못하면 기습을 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백제 무왕은 장수를 보내 신라의 아막산성(阿莫山城, 母山城이라고도 한다)을 쳐서 응징하려 했던 것이고, 또 백제 땅에 신라가 새로 쌓은 그 네 개 성 즉 소타성, 외석성, 천산성, 옹잠성을 빼앗으려고 했으나 오히려 대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신라의 아막산성은 진황도 무녕현에 있던 성이었고, 소타, 외석, 천산, 옹잠 등 신라가 백제 땅에 새로 쌓은 네 개의 성은 지금의 진황도 갈석산(필자주 : 옛 지리산) 동쪽, 남쪽 지역에 쌓은 성이었을 것이다.
이때 백제와 신라는 한반도가 아니라 지금의 발해 북쪽 진황도 창려의 갈석산(옛 지리산) 부근에서 다투었던 것인데, 지금 반도사관론자들은 한반도 전북 남원의 옛 성터를 아막산성이라 하고 있으니 이를 어찌 역사라 할 수 있으랴.
옛 사서의 기록들은 모두 발해 북쪽이 우리 고대사의 중심이라 말하고 있으나, 역사학자라는 사람들이 그를 인식하지 못하고는 한반도가 우리 고대사의 중심이라 우기고 있는 것이다.
인식의 전환이 그렇게도 어려운 것인가?
아니면 지금까지의 연구성과를 뒤집을 수 없어 눈감고, 귀막고 있는 것인가?
※ 삼국사기 권37 잡지 제6 지리4 고구려, 백제 조의 “三國有名未詳地分(삼국의 이름만 있고 그 위치가 미상한 곳)에 소타성(小陁城), 외석성(畏石城), 천산성(泉山城), 옹잠성(雍岑城)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할 당시인 1145년에 이미 그 위치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
삼국의 이름만 있고 그 위치가 미상한 곳(三國有名未詳地分)
조준향(調駿鄕) 신학촌(神鶴村) 상란촌(翔鸞村) 대선궁(對仙宮) 봉정촌(鳳庭村) 비룡촌(飛龍村) 사용향(飼龍鄕) 접선향(接仙鄕) 경인향(敬仁鄕) 호례향(好禮鄕) 적선향(積善鄕) 수의향(守義鄕) 단금향(斷金鄕) 해풍향(海豊鄕) 북명향(北溟鄕) 여금성(麗金成) 접령향(接靈鄕) 하청향(河淸鄕) 강녕향(江寧鄕) 함녕향(咸寧鄕) 순치향(馴雉鄕) 건절향(建節鄕) 구민향(救民鄕) 철산향(鐵山鄕) 김천향(金川鄕) 목인향(睦仁鄕) 영지향(靈池鄕) 영안향(永安鄕) 무안향(武安鄕) 부평향(富平鄕) 곡성향(穀成鄕) 밀운향(密雲鄕) 의록향(宜祿鄕) 리인향(利人鄕) 상인향(賞仁鄕) 봉덕향(封德鄕) 귀덕향(歸德鄕) 영풍향(永豐鄕) 율공향(律功鄕) 용교향(龍橋鄕) 임천향(臨川鄕) 해주성(海洲成) 강릉향(江陵鄕) 철구향(鐵求鄕) 강남향(江南鄕) 하동향(河東鄕) 격란향(激瀾鄕) 노균성(露均成) 영수성(永壽成) 보검성(寶劒成) 악양성(岳陽成) 만수성(萬壽成) 탁금성(濯錦成) 하곡성(河曲成) 악남성(岳南成) 추반성(推畔成) 진금성(進錦成) 간수성(澗水成) 방해성(傍海成) 만년향(萬年鄕) 음인향(飮仁鄕) 통로향(通路鄕) 회신향(懷信鄕) 강서향(江西鄕) 이상향(利上鄕) 포충향(抱忠鄕) 연가향(連嘉鄕) 천로향(天露鄕) 한녕성(漢寧成) 회창궁(會昌宮) 요선궁(邀仙宮) 북해통(北海通) 염지통(鹽池通) 동해통(東海通) 해남통(海南通) 북요통(北傜通) 말강성(末康成) 순기성(脣氣成) 봉천성(奉天成) 안정성(安定成) 내원성(萊遠城) 내진성(萊津成) 건문역(乾門驛) 곤문역(坤門驛) 감문역(坎門驛) 간문역(艮門驛) 태문역(兌門驛) 대호성(大岵城) 대산군(岱山郡) 고미현(枯彌縣) 북외군(北隈郡) 비뇌성(非惱城) 표천현(瓢川縣) 고이도(皐夷島) 천주(泉州) 냉정현(冷井縣) 위례성(慰禮城) 비지국(比只國) 남신현(南新縣) 요거성(腰車城) 사도성(沙道城) 골화국(骨火國) 마두책(馬頭柵) 괴곡성(槐谷城) 장봉진(長峰鎭) 독산성(獨山城) 활개성(活開城) 모로성(芼老城) 광석성(廣石城) 좌라성(坐羅城) 호명성(狐鳴城) 도야성(刀耶城) 호산성(狐山城) 임해진(臨海鎭) 장령진(長嶺鎭) 우산성(牛山城) 파리미성(波里彌城) 실진성(實珍城) 덕골성(德骨城) 대림성(大林城) 벌음성(伐音城) 수산성(橾山城) 다벌국(多伐國) 근암성(近嵒城) 근노성(靳努城) 가잠성(椵岑城) 당항성(党項城) 석토성(石吐城) 부산성(富山城) 아단성(阿旦城) 부라성(缶羅城) 이산성(耳山城) 감물성(甘勿城) 동잠성(桐岑城) 골평성(骨平城) 골쟁(骨爭)이라고도 이른다. 달함성(達咸城) 서곡성(西谷城) 물벌성(勿伐城) 소타성(小陁城) 외석성(畏石城) 천산성(泉山城) 옹잠성(雍岑城) 독모성(獨母城)부곡성(缶谷城) 서단성(西單城) 미후성(瀰猴城) 앵잠성(櫻岑城) 기잠성(岐岑城) 기현성(旗懸城) 혈책성(穴柵城) 와산성(蛙山城) 습수(濕水) 용마(龍馬) 저악(猪岳) 병산(甁山) 직붕(直朋) 달벌(達伐) 타산(朶山) 목출도(木出島) 구양(狗壤) 대구(大丘) 사현(沙峴) 능곡(能谷) 풍도(風島) 부현(斧峴) 낭산(狼山) 총산(叢山) 안북하(安北河) 박작성(泊灼城) 개마국(蓋馬國) 구다국(句茶國) 화려성(華麗城) 조나국(藻那國) 혁현진(赫炫鎭) 단려성(檀廬城) 가시성(加尸城) 석성(石城) 수구성(水口城) 비창성(卑倉城) 개모성(蓋牟城) 사비성(沙卑城) 우산성(牛山城) 도살성(道薩城) 백암성(白嵒城) 건안성(建安城) 창암성(蒼嵒城) 욕이성(辱夷城) 송양국(松讓國) 행인국(荇人國) 횡산(橫山) 백수산(白水山) 가섭원(迦葉原) 동모하(東牟河) 우발수(優渤水) 엄표수(淹淲水) 혹은 개사수(蓋斯水)라고도 이른다. 비류수(沸流水) 살수(薩水) 모둔곡(毛屯谷) 골령(鶻嶺) 용산(龍山) 골천(鶻川) 량곡(凉谷) 기산(箕山) 장옥택(長屋澤) 역산(易山) 여진(礪津) 위중림(尉中林) 오골(烏骨) 사물택(沙勿澤) 귀단수(貴湍水) 안지(安地) 살하수(薩賀水) 모천(矛川) 마령(馬嶺) 학반령(鶴盤嶺) 마읍산(馬邑山) 왕골령(王骨嶺) 두곡(豆谷) 골구천(骨句川) 이물림(理勿林) 거회곡(車廻谷) 갈사수(曷思水) 연야부(椽耶部) 북명산(北溟山) 민중원(閔中原) 모본(慕本) 계산(罽山) 왜산(倭山) 잠지락(蠶支落) 평유원(平儒原) 구산뢰(狗山瀨) 좌원(坐原) 질산(質山) 고국곡(故國谷) 좌물촌(左勿村) 고국원(故國原) 배령(裴嶺) 주통촌(酒桶村) 거곡(巨谷) 청목곡(靑木谷) 두눌하(杜訥河) 시원(柴原) 기구(箕丘) 중천(中川) 해곡(海谷) 서천(西川) 곡림(鵠林) 오천(烏川) 수실촌(水室村) 사수촌(思收村) 봉산(烽山) 후산(候山) 미천(美川) 단웅곡(斷熊谷) 마수산(馬首山) 장성(長城) 마미산(磨米山) 은산(銀山) 후황(後黃) 영류산(嬰留山) 소수림(小獸林) 독산(禿山) 무려라(武厲邏) 대부현(大斧峴) 마수성(馬首城) 병산책(甁山柵) 보술수(普述水) 봉현(烽峴) 독산책(禿山柵) 구천책(狗川柵) 주양성(走壤城) 석두성(石頭城) 고목성(高木城) 원산성(圓山城) 금현성(錦峴城) 대두산성(大豆山城) 우곡성(牛谷城) 횡악(橫岳) 견아성(犬牙城) 적현성(赤峴城) 사도성(沙道城) 덕안성(德安城) 한천(寒泉) 부산(釜山) 석천(石川) 구원(狗原) 팔곤성(八坤城) 관미성(關彌城) 석현성(石峴城) 쌍현성(雙峴城) 사구성(沙口城) 두곡(斗谷) 이산성(耳山城) 우명곡(牛鳴谷) 사정성(沙井城) 마포촌(馬浦村) 장령성(長嶺城) 가불성(加弗城) 위천(葦川) 호산(狐山) 혈성(穴城) 독산성(獨山城) 금현성(金峴城) 각산성(角山城) 송산성(松山城) 적암성(赤嵒城) 생초원(生草原) 마천성(馬川城) 침현(沈峴) 진도성(眞都城) 고울부(高鬱府) 갈령(葛嶺) 지라성(支羅城) 혹은 주류성(周留城)이라고도 이른다. 대산책(大山柵) 욱리아(郁里阿) 숭산(崇山) 장토야(張吐野) 절영산(絶影山) 청진(淸津) 유봉도(遺鳳島) 대거(大阹) 견롱(汧隴) 부서도(鳧栖島) 봉택(鳳澤) 용구(龍丘) 연성원(連城原) 부운도(浮雲島) 천마산(天馬山) 해빈도(海濱島) 학중도(壑中島) 옥새(玉塞) 연봉(連峯) 총림(叢林) 승천도(升天島) 승황도(乘黃島) 팔준산(八駿山) 절군산(絶群山) 구린도(求麟島) 부도도(負圖島) 토경산(吐景山) 하정도(河精島) 유기산(遊氣山) 평원(平原) 대택(大澤) 기린택(騏驎澤) 섭경산(躡景山) 금혈(金穴) 난지(蘭池) 서극산(西極山) 포양구(浦陽丘) 철가산(鐵伽山) 도림(桃林) 석력산(石礫山) 서린원(瑞驎苑) 녹원(麓苑) 사원(沙苑) 풍달군(風達郡) 일상군(日上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