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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신라 동쪽 장인국(長人國)의 진짜 위치를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 2023. 4. 15. 14:08

윤여동설 신라 동쪽 장인국(長人國)의 진짜 위치를 찾았다 - 최초공개

 

 

 

 

   삼국사기 권제34 잡지 제3 지리1(신라편)을 보면,

  『신라의 국토 경계는 옛날 앞선 기록들이 한결같지 않다.

  두우의 통전(通典)에는 신라의 선조는 본래 진한종이오, 그 나라는 백제, 고구려 두 나라의 동남방에 있으며, 동쪽은 대해(大海)와 닿았다고 하였고,

  유후(劉喣)의 신당서(新唐書)에는, “신라의 동, 남쪽이 모두 대해(大海)를 한계로 하였다고 하였으며,

  송기의 신서(新書)에는, "동남쪽은 일본, 서쪽은 백제, 북쪽은 고구려, 남쪽은 바다에 닿았다"고 하였고,

  가탐의 사이술(四夷述)에는 "진한은 마한 동쪽에 있는데, 동쪽은 바다에 맞닿고, 북쪽은 예(필자주 : 동예를 말한다)와 접하였다"고 하였다.

  신라의 최치원은 "마한은 고구려요, 변한은 백제이며, 진한은 신라이다"라고 하였으니, 이와 같은 여러 설이 모두 유사하다고 할 만하다.

 

마한은 백제요, 변한은 가야요, 진한은 신라이다라고 해야 옳았을 것이다.

 

 

  신·구당서에서는 모두 "변한의 후예들이 낙랑 땅에 있었다"고 하였으며,

  신서에는 또한 "동쪽으로 장인(長人 : 長人國)에 이른다고 하였는데, 장인(長人)이라는 것은 키가 3(세 길)이며, 톱날 이빨과 갈쿠리 손톱으로 사람을 잡아먹으므로, 신라에서는 항상 활 쏘는 군사 수천명을 주둔시켜 수비하였다"라고 하였으나, 이는 모두 전해지는 소문이지 실제적인 기록은 아닐 것이다.

  두 한지(전한서, 후한서)에 의하면, "낙랑군은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5천리"라고 하였고, 주에는 "유주에 속했고, 고조선국이다"라고 하였은 즉 낙랑군은 계림과는 멀리 떨어져 있었던 듯하다.

  또한 전래되는 말로는 동해의 외딴 섬에 대인국(大人國)이 있다고 하지만, 이를 본 사람이 없으니, 어찌 활 쏘는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는 일이 있었겠는가?

  상고해보면,

  신라 시조 혁거세는 전한 오봉 원년 갑자에 나라를 세웠는데, 왕도는 장(가로)3,075, (세로)3,018보이며, 356부로 되어 있었다.

  국호는 서야벌(徐耶伐)이라 하였는데, 혹은 사라(斯羅) 혹은 사로(斯盧) 혹은 신라(新羅)라고 하였다.

  탈해왕 9년에 시림에서 닭우는 소리가 들리는 이상한 일이 있어 계림(鷄林)으로 바꾸어 불렀다. 이 일로 인하여 이것으로 국호를 삼았다가 기림왕 10년에 다시 신라(新羅)라고 하였다.

  처음 혁거세 21년에 궁성을 쌓아 이름을 금성(金城)이라 하였으나,

  파사왕 22년에 금성 동남쪽에 성을 쌓아 월성(月城) 혹은 재성(在城)이라고 불렀는데, 그 둘레가 1,023보였다.

  새 월성(月城) 북쪽에 만월성(滿月城)이 있는데 둘레가 1,838보였다.

  또한 새 월성 동쪽에 명활성(明活城)이 있는데 둘레가 1,906보였다.

  또한 새 월성 남쪽에 남산성(南山城)이 있는데 둘레가 2,804보였다.

  시조 이래 금성에 살았고, 후세에 이르러서는 거의 두 월성에서 살았다.

  처음에는 고구려 백제와는 국경이 개의 이빨처럼 엇갈려 때로는 서로 화친하기도 하였고, 때로는 서로 침략을 하다가, 후일에 당나라와 함께 두 나라를 침공하여 멸망시키고, 그 영토를 평정한 다음 마침내 9주를 설치하였다.

 

 

  본국 지역 내에 3주를 설치하였다.

  왕성 동북쪽 당은포 방면을 상주(尙州)라 하고, 왕성 남쪽을 량주(良州)라 하고, 서쪽을 강주(康州)라 하였다.

  옛 백제 지역에 3주를 설치하였다.

  백제의 옛 성(필자주 : 사비성) 북쪽 웅진구(熊津口)를 웅주(熊州)라 하고, 그 다음 서남쪽을 전주(全州)라 하고, 그 다음 남쪽을 무주(武州)라고 하였다.

  옛 고구려 남쪽 지역에 3주를 설치하였다.

  서쪽으로부터 첫째를 한주(漢州)라 하고, 그 다음 동쪽을 삭주(朔州)라 하였으며, 그 다음 동쪽을 명주(溟州)라고 하였다.

주에서 관할하던 군, 현은 무려 450개소였다.

  [방언으로 말하던 향, , 곡 등 잡다한 것은 여기에 갖추어 적지 않는다]

  신라 지역의 넓이와 길이가 이렇게 굉장하였는데, 그 나라가 쇠약하게 되자 정사가 거칠어지고 백성들이 흩어지니 강토가 날로 줄어들어, 마지막 임금 김부(경순왕)가 나라를 가지고 우리 태조(왕건)에게 귀순하니 그 나라를 경주(慶州)라 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신라가 동쪽으로 장인국(長人國, 필자주 : 키가 큰 사람들이 사는 나라)과 직접 접경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을 비롯한 고려의 사관들은 이 장인국(長人國)에 대한 기록들을 허황된 이야기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

 

고려 때는 옛 장인국(長人國) 강역이 고려의 땅이었다. 그렇다면 김부식은 그렇게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사실인지 그 여부를 확인해 볼 수 있었고, 또 거인들 일부가 그때까지도 어느 깊은 산속, 어느 골짜기에 살고 있는지 조사해 볼 수도 있었을텐데, 당시 김부식이나 고려의 사관들은 그러한 노력까지는 기울인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신당서 신라전을 보면,

  “신라는 변한의 먼 후예이다. () 나라 때의 낙랑 땅에 사는데, (강역이) 횡으로 1천리, 종으로 3천리이다. 동쪽은 장인(長人 : 장인국, 거인국)에 닿고, 동남쪽은 일본(日本 : 왜국), 서쪽은 백제(百濟), 남쪽은 바다()에 닿아 있으며, 북쪽에는 고구려(高句麗)가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신라의 동쪽에 장인국(長人國, 巨人國)이 위치하고 있었다고 하고,

  또 “장인(長人, 필자주 : 키가 아주 큰 거인을 말한다)은 그 키가 보통 사람의 세 배쯤 되고, 톱니 이빨에 갈쿠리 손톱을 하고 털이 온몸을 덮고 있다.

  화식(火食, 필자주 : 불에 익혀 먹는 것)을 하지 않아 새나 짐승을 생으로 뜯어 먹으며, 때로는 사람을 잡아먹기도 한다.

부인을 얻어 옷이나 만들게 한다.

  그 나라의 산은 수십리씩 연결되어 있는데, 산골짜기 입구에 튼튼한 쇠로 문짝을 만들어 달고 관문(關門)이라 한다.

  신라는 항상 이곳에 노사(弩士, 필자주 : 쇠뇌를 쏘는 군사) 수 천명을 주둔시켜 지킨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신라에서 장인(長人)들의 침공 또는 장인들이 신라 백성들을 잡아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쇠뇌(석궁)를 쏘는 군사 수천명을 주둔시켜 지켜야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 때 김부식 등도 그랬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이 기록의 신빙성에 대하여 매우 회의적일 것이다.

  그렇지만 신라와 밀접하게 접촉했던 당나라의 정사서에 이러한 장인(長人)에 대한 기록을 넣은 것을 보면, 당시 당나라의 사관들은 이러한 사실 여부에 대하여 신라 사관들에게 물어보았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역사적 사실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사서에 그 내용을 수록하여 전했을 것이다.

  또한 지금 세계적으로 거인유골이 여러 곳에서 발굴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과거 지구상에 거인족이 살았던 것만은 확실한 것이니, 신라 동쪽에 키가 아주 큰 거인족이 실제 살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으니 옛 사서의 기록들을 무조건 부정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신라 동쪽 장인국(長人國)은 과연 지금의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었던 나라였을까?

  신라의 천년 도읍 서라벌(徐羅伐)은 한반도의 경주가 아니라 지금의 발해 북쪽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일원을 말하는 것이고, 신라 초기인 파사이사금 23(A.D.102)에 신라에 복속된 실직국(悉直國)과 읍즙벌국(音汁伐國)은 지금의 요녕성 부신(阜新) 부근이다.

  따라서 당시 신라 초기의 강역은 요녕성 금주시 부근으로부터 동북쪽으로 부신 부근까지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장인국(長人國)은 신라의 동쪽에 위치했고, 그 나라에 수십리 이어진 산맥이 있다고 하였으므로, 지금의 요녕성 북진(北鎭) 의무려산(醫巫閭山) 동쪽에 장인국(長人國)이 위치했을 것으로 비정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장인국(長人國)의 강역은 지금의 요녕성 북진시(北鎭市), 흑산현(黑山縣), 팔도호진(八道壕镇), 신립둔진(新立屯镇) 부근이었을 것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의무려산(醫巫閭山)이나 요녕성 북진시(北鎭市) 일원에서 거인의 유골이 발굴된다면, 그 부근에 장인국(長人國)이 위치했을 것이라는 필자의 주장도 확인될 수 있을 것이다.

  기다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