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카테고리 없음

윤여동설 – 동부여 북쪽의 약수(弱水)와 말갈, 동옥저, 동예의 동쪽 대해(大海)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 2023. 4. 22. 23:56

윤여동설 동부여 북쪽의 약수(弱水)와 말갈, 동옥저, 동예의 동쪽 대해(大海) 찾기 - 최초주장

 

 

  후한서 부여국(夫餘國) 전을 보면,

  “부여국(필자주 : 동부여이다)은 현토(玄菟)의 북쪽 1천리에 있다.

  남쪽은 고구려(高句麗), 동쪽은 읍루(挹婁), 서쪽은 선비(鮮卑)와 접하였고, 북쪽에는 약수(弱水)가 있다. 땅이 2천리인데, 본래는 예(, 필자주 : 창해군 예군 남려의 예를 말한다)의 땅이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후한서 예() 전을 보면, “원삭 원년(B.C.128)에 예군(濊君) 남려(南呂) 등이 (위만조선의) 우거(右渠)를 배반하고 28만구()를 이끌고 요동(遼東)으로 내속하였으므로 한()의 무제는 그 땅을 창해군(蒼海郡)으로 만들었다가 수년 후에 폐지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지 부여(夫餘) 전에도,

  “부여는 장성(長城)의 북쪽에 있는데, 현토(玄菟)에서 1천리 거리에 있다. 남쪽은 고구려(高句麗), 동쪽은 읍루(挹婁), 서쪽은 선비(鮮卑)와 접했고, 북쪽에는 약수(弱水)가 있다. 땅이 사방 2천리이며, 백성은 8만호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부여(필자주 : 동부여이다)의 북쪽에 약수(弱水)라는 호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후한서 읍루(挹婁) 전을 보면,

  “읍루는 옛 숙신국(肅愼國)이다. 부여(夫餘)의 동북쪽 1천여리에 있는데, 동쪽은 대해(大海)에 닿았고, 남쪽은 북옥저(北沃沮)와 접했으며, 북쪽은 그 끝을 알 수 없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진서(晉書) 숙신씨(肅愼氏) 전에는,

  “숙신씨는 일명 읍루(挹婁)라고도 하는데, 불함산(不咸山) 북쪽에 있다. 부여(夫餘)에서 60일쯤 가야하는 거리에 있다. 동쪽으로는 대해(大海)에 닿았고, 서쪽으로는 구만한국(寇漫汗國)과 접했으며, 북쪽 끝은 약수(弱水)에까지 이른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구당서 말갈(靺鞨) 전을 보면,

  “말갈은 대개 숙신(肅愼)의 땅으로서 후위(後魏) 때의 소위 물길(勿吉)이다.

  경사(장안)에서 동북으로 6천여리에 있다.

  동쪽은 바다()에 이르고, 서쪽은 돌궐(突厥)과 접하며, 남쪽은 고구려(高句麗)와 경계하고, 북쪽은 실위(室韋)와 인접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숙신, 읍루, 물길, 말갈의 동쪽에 큰 바다인 대해(大海)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후한서 동옥저(東沃沮) 전을 보면,

  “동옥저는 고구려 개마대산(蓋馬大山)의 동쪽에 있다. 동쪽은 대해(大海)까지이고, 북쪽은 읍루(挹婁)와 부여(夫餘), 남쪽은 예(), ()과 접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후한서 예() 전을 보면,

  “(동예)는 북쪽으로는 고구려(高句麗)와 옥저(沃沮), 남쪽으로는 진한(辰韓)과 접했고, 동쪽은 대해(大海)에 닿았으며, 서쪽은 낙랑(樂浪)까지이다. , 옥저, 고구려는 본래 모두 조선(고조선) 땅이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필자주 : 동예이다)와 동옥저의 동쪽에 대해(大海)가 위치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종합하면, 결국 부여(동부여)의 북쪽에는 약수(弱水)라는 큰 호수가 있었고, 말갈(靺鞨 : 숙신, 읍루, 여진), 동옥저(東沃沮), 동예(東濊)의 동쪽에는 큰 바다 즉 대해(大海)가 위치하고 있었다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반도사관에 찌들어 있는 강단사학자들은 부여(동부여)가 한반도 북쪽 흑룡강성 목단강시(牧丹江市) 일원에 위치하고 있었고, 말갈(숙신)은 한반도 동북쪽 연해주에 위치했으며, 동옥저와 예(동예)는 한반도 동해안에 위치했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순 엉터리 주장이다.

  왜냐하면, 사실 동부여는 지금 중국 북경(北京)의 북쪽 방향인 내몽골 석림곽륵맹(锡林郭勒盟) 정람기(正藍旗) 부근에 위치했던 나라였고, 말갈(숙신)은 내몽골 파림좌기(巴林左旗) 일원에, 동옥저는 내몽골 적봉시(赤峯市) 일원에, 동예는 내몽골 통요시 고륜기(庫倫旗) 일원에 위치했던 나라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여(동부여) 북쪽의 약수(弱水)는 내몽골 정람기의 북쪽에서 찾아야 하고,

  말갈(숙신), 동옥저, 동예 동쪽의 대해(大海)는 지금의 대흥안령(大興安嶺) 동쪽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위 그림을 보시라.

 

 

  고대의 약수(弱水)는 지금의 내몽골 호륜호(呼倫湖, 후룬호) 부근을 말하는 것으로서 지금의 흑룡강(아무르강) 최상류 지역을 말하는 것이다.

  약수는 어머어마하게 큰 내륙의 담수호였으나 언젠가 천재지변으로 지형의 변화가 이루어져 호수의 물이 지금의 흑룡강(아무르강)을 따라 빠져나가면서, 약수가 있던 지역은 평원지역이 되었으며, 호륜호(후룬호) 등 크고 작은 호수들이 옛 약수(弱水)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고대의 대해(大海)는 지금 중국의 동북평원(東北平原) 지역을 말하는 것인데, 이곳 역시 내륙의 담수호였으나 크기가 지금의 발해 보다도 컸기 때문인지 옛사람들은 이를 대해(大海)라고 불렀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 이 대해(大海)는 고려말, 조선 초쯤에 천재지변으로 지금의 중국 동북평원 동쪽 산맥(소흥안령산맥 중 일부)이 무너지며 지금의 송화강(松花江)을 따라 대해의 물이 모두 빠져 나가 아무르강에 합류되어 오오츠크해로 흘러 나가버림으로써 역사서에 기록되어 전해진 말갈, 동옥저, 동예 동쪽의 대해(大海)는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