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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반도백제(무광왕백제)의 도읍이었을 가능성이 있는 전주(全州) - 최초주장

윤여동 2023. 10. 28. 21:33

윤여동설 반도백제(무광왕백제)의 도읍이었을 가능성이 있는 전주(全州) - 최초주장

 

 

  왕건의 고려는 등주, 래주, 빈주, 체주와 마주보는 위치인 발해 북쪽 대륙에 위치했던 나라로서, 도읍 개경은 하북성 관성현(관성만족자치현)이었다.

  그리고 견훤의 후백제 역시 한반도의 전북 전주(全州)에 도읍했던 나라가 아니라 발해 북쪽 대륙백제의 완산(전주)에 도읍했던 나라였다. 지금의 북경 동쪽 하북성 당산시가 고대 완산(전주)이었던 곳이다.

  따라서 한반도에 왕건의 고려나 견훤의 후백제는 없었다.

  그렇다면 한반도 전주에 후백제의 왕궁터가 있을 리 없고, 한반도에 견훤왕의 왕릉 역시 조성되었을 리가 없는 것이다.

  만약 한반도 전주에서 백제시대 왕궁터와 왕릉급 고분이 발견된다면 그것은 무광왕의 반도백제 흔적일 수는 있어도 견훤의 후백제 흔적은 절대 될 수 없다.

 

 

  무광왕(武廣王)이 세운 반도백제의 첫 도읍지는 관세음응험기에 의하면 지모밀(枳慕蜜) 땅”으로서 지금의 익산 왕궁면(금마)이었음이 확인되나 그곳에 언제까지 도읍했었는지는 지금 알 수 없다.

  그런데 만약 반도백제가 지모밀 땅에 도읍한 기간이 길지 않았고 바로 어디론가 천도했다면, 지형으로 보아 같은 만경강 유역인 남쪽의 전주로 도읍을 옮겼을 가능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전주는 익산 왕궁면 보다 지형적으로 적의 침공을 방어하기가 훨씬 용이하고, 아주 넓은 김제평야를 끼고 있기 때문에 백성들이 식량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며, 풍광도 수려하기 때문에 도읍지로서 손색이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도백제가 지모밀 땅에 도읍한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는 이유는,

  그곳에서 왕릉급 고분이 지금 익산쌍릉 외에 더 이상 발견되지 않고 있고,

왕궁도 적의 침공을 방어할 수 있도록 석축으로 튼튼하고 높게 쌓은 것이 아닌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필자주 : 혹시 지명처럼 탱자나무를 심어 목책(성벽) 역할을 하게 했었을까?]

  또 그 왕궁터 안에 불탑(왕궁리 오층석탑)이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지모밀은 건국시조인 무광왕(武廣王) 대 정도까지만 도읍으로 사용했었고,

 

그렇지만 이곳 지모밀(枳慕蜜)은 반도백제의 초기 도읍으로서의 위상이 있었고, 또 건국시조인 무광왕(武廣王)의 능과 사당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반도백제에서는 이곳 지모밀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대륙백제(온조백제) 왕들이 왕위에 오르면 반드시 동명왕(東明王)의 사당에 고했듯이, 반도백제 왕들 역시 왕위에 오르면 반드시 지모밀에 들러 무광왕(武廣王)의 사당에 고했을 것이다.

 

  반도백제 2대왕(실명) 때쯤 전주(全州)로 도읍을 옮겼다가, 그 이후 고마성(固麻城, 충남 공주), 거발성(居拔城, 충남 부여)으로 천도했을 수도 있고,

 

  또는 반도백제가 지모밀(익산 왕궁면)에서 강역의 확장에 따라 도읍을 고마성(충남 공주), 거발성(충남 부여)으로 옮겼다가 그 후에 다시 전주로 도읍을 옮겼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전주성이 실제 언제 처음 축성된 성인지 확실치 않지만, 만약 훨씬 이전에 쌓은 성으로서 혹시 반도백제가 400년경 처음 쌓은 것을 후세에 증축을 거듭하며 조선시대에 이르렀는데, 조선시대에 대대적으로 중수하고 전주부성(全州府城)으로 삼았다면 지금 전주성을 조선시대에 처음 쌓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 전주 부근에서 반도백제 초기 왕릉급 고분이 발견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전주가 반도백제의 도읍지였다고 단언할 수 없는 실정이지만, 전북 전주는 왕국의 도읍지였을 가능성은 충분한 땅이다.

  언젠가 확실한 왕궁터(필자주 : 필자가 보기에는 전주부성터가 옛 왕궁터로 추정되기는 하지만)와 확실한 왕릉 등이 발견되어, 지모밀(익산 왕궁면), 고마성(충남 공주), 거발성(충남 부여)에 이어 전북 전주가 반도백제의 도읍지로 거듭날 수 있을지 기대해 본다.

 

한반도에 있는 백제의 유적, 유물은 모두 대륙 삼국의 역사 기록인 삼국사기, 삼국유사 속 유적, 유물이 아니라,

무광왕(武廣王)이 세운 반도백제의 유적, 유물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백제 역사는 항상 무광왕(武廣王), 모도왕(牟都王)의 반도백제를 염두에 두어야 올바른 해석을 할 수 있고,

대륙백제의 역사와 연결시키면 미로를 헤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