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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백제(대륙백제) 건국 초기 백제의 서북쪽 낙랑(樂浪)과의 국경은 지금의 하북성 폭하(瀑河)였다 – 최초주장

윤여동 2023. 11. 17. 17:12

윤여동설 백제(대륙백제) 건국 초기 백제의 서북쪽 낙랑(樂浪)과의 국경은 지금의 하북성 폭하(瀑河)였다 최초주장

 

 

[백제 마수성(馬首城) 머리 형상의 지형(하북성 평천현)]

 

  삼국사기 백제본기 시조 온조왕 8(B.C.11) 조를 보면, “가을 7월에 마수성(馬首城)을 쌓고 병산(甁山)에 목책을 세웠더니 낙랑태수가 사람을 보내 말하기를, “지난날 서로 예방을 하고 우호관계를 맺어 한 집안과 같이 생각했었는데, 이제 우리의 영역에 접근하여 성을 쌓고, 목책을 세우는 것이 혹시 우리 땅을 차츰 먹어 들어올 심사가 아니오? 만일 옛날 우호의 정을 변하지 않으려거든 성을 허물고 목책을 뜯어 버려 즉시 억측과 의심을 없애야 할 것이오.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한바탕 싸워서 승부를 낼 수 밖에 없소하였다.

  이에 왕이 답하여 말하기를, “요새를 설치하여 나라를 지키는 것은 고금의 떳떳한 일인데, 어찌 이것으로서 화친과 우호에 변함이 있을 수 있으리오. 응당 당신이 의심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하오. 그런데 만약 당신이 강한 것을 믿고 군사를 발동한다면, 우리나라도 또한 이에 대응이 있을 뿐이오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낙랑과의 사이에 화친이 끊어졌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11(B.C.8) 조를 보면, “여름4월 낙랑이 말갈을 시켜 병산책(甁山柵)을 습격하여 파괴한 후 1백여 명을 죽이고 납치하여 갔다.

 

[병산(시루산) 추정지]

 

낙랑에서 말갈을 시켜 마수성(馬首城)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병산책을 공격하는 것으로 보아, 마수성은 백제의 강역 내에 축성했으나, 병산책은 당시 백제의 국경을 넘어 낙랑 땅에 책()을 설치했기 때문에 낙랑에서 강하게 반발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당시 낙랑과 백제의 국경이 지금의 폭하였다면, 마수성은 폭하의 동쪽으로서 백제의 강역에 속하고, 병산책은 폭하의 서쪽으로서 낙랑의 강역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가을7월 독산(禿山)과 구천(狗川) 두 곳에 목책을 설치하여 낙랑으로부터 오는 길을 막아버렸다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백제가 건국 초기인 기원전 11년에 마수성(馬首城)을 쌓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병산책(甁山柵)을 세우자 낙랑태수가 항의해 왔었고, 그로 인하여 급기야 두 나라 간에 전투가 벌어지기도 하는데, 그 뒤 백제에서는 오히려 국경 방어를 강화하여 독산책(禿山柵)과 구천책(狗川柵)을 더 세워 아예 낙랑(樂浪)으로부터 오는 통로를 차단해 버리는 것이다. 이후 백제와 낙랑의 관계가 더욱 악화되었을 것은 불문가지이지만, 이 기록 속에서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것은 백제 건국 초기에 낙랑과 백제와의 국경선이 과연 지금의 어디였느냐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즉 마수성, 병산책, 독산책, 구천책 부근이 당시 백제와 낙랑과의 국경이었던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백제 온조왕이 쌓은 마수성(馬首城)은 지금의 어디였을까?

  백제 마수성(馬首城)은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평천현(平泉) 사가영자(謝家營子) 일원을 말하는 것으로 밝혀졌고,

  구천(狗川)은 지금의 요녕성 능원시 삼십가자진(三十家子鎭)을 지나는 청룡하 최상류(필자주 : 옛 백제의 웅천 최상류이다)를 말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그 위치가 아직 확인되지 않은 병산책(甁山柵)이나 독산책(禿山柵)도 백제 마수성(馬首城) 부근에 설치되었던 목책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곳을 흐르는 강은 바로 폭하(瀑河)로서, 옛 예성강(禮成江)으로 비정되는 강이다.

  폭하는 지금 하북성 승덕시 평천현 북쪽 와룡진(臥龍鎭) 부근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평천(필자주 : 옛 풍천원으로서 궁예가 도읍했던 곳이다)을 지나고, 남오십가자진(南五十家子鎭, 필자주 : 옛 고구려의 철원이다)을 지나며, 또 관성만족자치현(寬城縣, 필자주 : 송악으로서 고려의 도읍 개경을 말하는 것이다)을 지나 난하(灤河, 필자주 : 옛 패수이다)에 합류되는 강이다.

  그렇다면 백제 건국 초기 북한산(北漢山, 필자주 : 지금의 진황도 도산을 말한다) 남쪽 위례성(慰禮城), 남한성(南漢城)에 도읍했던 초기 백제와 옛 왕검성(王儉城, 필자주 : 하북성 승덕시를 말한다)에 치소를 두었던 전한낙랑군(前漢樂浪郡)의 국경은 바로 지금의 폭하(瀑河)였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초기 백제 강역의 서북쪽에 해당하는 곳이다.

  다시 말하면 백제 건국 초기 백제 강역의 서북쪽 국경은 바로 지금의 폭하(瀑河)였을 것이라는 말이다.

  백제 건국 초기의 서북쪽 국경이 드디어 밝혀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