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통일신라의 9주, 5소경은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신라 9주의 위치
삼국사기 경덕왕 16년(A.D.757) 12월 조를 보면,
"사벌주를 상주(尙州)로 고쳐 주1, 군10, 현30을 소속시키고,
삽량주를 양주(良州 또는 梁州)로 고쳐 주1, 소경1, 군12, 현34를 소속시키고,
청주를 강주(康州)로 고쳐 주1, 군11, 현27을 소속시키고,
한산주를 한주(漢州)로 고쳐 주1, 소경1, 군27, 현46을 소속시키고,
수약주를 삭주(朔州)로 고쳐 주1, 소경1, 군11, 현27을 소속시키고,
웅천주를 웅주(熊州)로 고쳐 주1, 소경1, 군13, 현29를 소속시키고,
하서주를 명주(溟州)로 고쳐 주1, 군9, 현25를 소속시키고,
완산주를 전주(全州)로 고쳐 주1, 소경1, 군10, 현31을 소속시키고,
무진주를 무주(武州)로 고쳐 주1, 군14, 현44를 소속시켰다"
라고 기록하고 있어, 이때 신라의 9주 체제가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위치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기록하지 않았고, 지도가 전해지지 않아 그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게 되었다.
☆ 지금 우리에게는 고려시대로부터 그 이전의 지도는 한 점도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 잡지 제3 지리1에는,
"시조가 일찍이 금성에 와서 살았고, 후세에 이르러 대개 두 월성에 살았다. 처음에는 고구려, 백제와 함께 그 땅이 개의 이빨과 같이 맞물려 있어 때로는 서로 화친하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침략을 하다가 후일에 이르러 당나라와 함께 두 나라를 침공하여 없애버리고, 그 영토를 평정하고 아홉주를 설치했다.
본국(원래의 신라 땅) 내에 세 주를 설치했는데,
왕성 동북쪽의 당은포 방면을 상주(尙州)라 하고,
왕성 남쪽을 양주(良州)라 하고,
서쪽을 강주(康州)라 했다.
옛 백제지역에 세 주를 설치했는데,
백제 옛 성(사비성) 북쪽 웅진구를 웅주(熊州)라 하고(百濟故城北熊津口曰熊州)
그 다음 서남쪽을 전주(全州)라 하고(次西南曰全州),
그 다음 남쪽을 무주(武州)라 했다(次南曰武州).
옛 고구려 남쪽지역에 세 주를 설치했는데,
서쪽으로부터 맨 왼쪽을 한주(漢州)라 하고(從西第一曰漢州),
그 동쪽을 삭주(朔州)라 하고(次東曰朔州),
그 다음을 명주(溟州)라 했다(又次東曰溟州)." 라고 기록하고 있어 그 위치를 대강 짚어볼 수 있게 하는데, 후일 경덕왕은 이때 나눈 아홉 주를 기본으로 하여 새로이 9주를 획정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한반도 경주가 신라의 도읍 서라벌(금성)이었다고 생각하고 이 기록을 해석하여 왔는데, 이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신라지역에 설치했다는 상주를 경북 상주로, 양주를 경남 양산으로, 강주를 경남 진주로 생각했고,
백제지역에 설치했다는 웅주를 충남 공주로, 전주를 전북 전주로, 무주를 광산 즉 지금의 광주광역시로 생각했다.
그리고 고구려 남쪽지역에 설치했다는 한주는 지금의 서울로, 삭주는 강원도 춘천부근으로, 명주는 강원도 강릉쯤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의 큰 착각이었음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삼국사기 기록 속 신라는 지금의 중국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호로도시, 내몽골 고륜기, 오한기 일원이었고, 백제는 그 서남쪽 난하 하류 부근이었으며, 고구려의 기본 강역은 난하 상류인 하북성 승덕시, 장가구시, 내몽골 적봉시 일원을 차지하고 백제, 신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그리고 신라의 천년 도읍 서라벌(금성)은 한반도 경주가 아니라 지금 중국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부근이었다.
따라서 통일신라 때인 경덕왕 때 새로이 획정한 신라의 9주는 지금의 하북성, 요녕성 호로도시, 금주시, 내몽골 고륜기 부근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위치를 비정해 보면,
"사벌주를 상주(尙州)로 고쳐 주1, 군10, 현30을 소속시켰다고 했으므로 지금의 요녕성 의현, 부신시 부근으로 비정되고,
삽량주를 양주(良州 또는 梁州)로 고쳐 주1, 소경1, 군12, 현34를 소속시켰다고 했으므로 지금의 요녕성 흥성 부근을 말하는 것이고,
청주를 강주(康州)로 고쳐 주1, 군11, 현27을 소속시켰다고 했으므로 지금의 요녕성 수중부근으로 비정되고,
한산주를 한주(漢州)로 고쳐 주1, 소경1, 군27, 현46을 소속시켰다고 했으므로 하북성 도산 부근으로 비정되고,
수약주를 삭주(朔州)로 고쳐 주1, 소경1, 군11, 현27을 소속시켰다고 했으므로 지금의 요녕성 능원 부근으로 비정해 볼 수 있고,
하서주를 명주(溟州)로 고쳐 주1, 군9, 현25를 소속시켰다고 했으므로 지금의 내몽골 고륜기 부근으로 비정해 볼 수 있고,
웅천주를 웅주(熊州)로 고쳐 주1, 소경1, 군13, 현29를 소속시켰다고 했으므로 지금의 하북성 노룡 부근으로 비정되고,
완산주를 전주(全州)로 고쳐 주1, 소경1, 군10, 현31을 소속시켰다고 했으므로 지금의 하북성 당산 부근으로 비정되며,
무진주를 무주(武州)로 고쳐 주1, 군14, 현44를 소속시켰다고 했으므로 지금의 하북성 난하구 부근으로 비정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신라 5소경의 위치
기록 속에서 신라의 다섯소경(五小京) 즉 금관소경, 중원소경, 북원소경, 서원소경, 남원소경이 소속되었다는 주는 양주, 한주, 삭주, 웅주, 전주이다.
양주는 지금의 요녕성 흥성 부근을 말하는 것으로서 그곳은 옛날의 가야 지역이었다.
한주는 지금의 하북성 도산 부근으로 비정해 볼 수 있는데, 중원소경은 진황도 태영진(台營鎭)에 위치했을 것이다.
그리고 삭주는 지금의 요녕성 능원 부근을 말하는 것으로서 북원소경은 객라심좌익에 위치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 영성, 능원, 객라심좌익 부근지역은 토질이 황토이고, 지형이 산악지역으로서 날씨가 선선해 인삼이 많이 재배되고 있는데, 중국에서도 유명한 고급품이다.
고려시대 유명했던 춘주 인삼은 바로 이 부근에서 생산된 인삼을 말하는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웅주는 지금의 진황도 노룡 부근지역을 말하는 것으로서 연하영이 서원소경이었을 것이다.
지금의 연하영은 직지심체요절이 인쇄된 청주로 비정되는 곳으로서 그 서쪽 가까운 천안에서 생산된 고려지로 인쇄했을 것이다.
그리고 전주는 지금의 하북성 당산 부근으로 비정되는데, 당산 동남쪽 난하 하류 부근을 남원소경으로 비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이 이러할 경우,
통일신라의 강역은 지금의 북경 부근으로부터 동북쪽으로 요하까지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이해할 수 없었던 신당서에 기록된 "신라는 한나라 때의 낙랑 땅에 사는데, (땅의 크기가) 횡으로는 1천리, 종으로는 3천리이다"라는 기록을 이해할 수 있고, 신라의 동쪽에 장인국이 위치하고 있었다는 기록도 해석이 가능해 지며, 신라를 이어 일어난 고려가 남쪽으로 요해, 서쪽으로 요수, 북쪽으로는 옛 거란지역, 동쪽(동북쪽)으로 금나라와 접해 있다는 고려도경의 기록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신라가 한반도 경주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생각하고는 어떻게 신라의 동쪽인 동해바다 가운데에 장인국이 있을 수 있느냐고 하며 기록이 틀렸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신라가 한반도 경주가 아닌 요하 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면 그 동쪽에 있었다는 장인국이란 키가 큰 사람들을 말하는 것으로서 바로 지금의 요하 부근에 한 때 키가 큰 종족이 살았다는 말이 된다.
신라의 중심 강역은 한반도가 아닌 발해 북쪽 대륙이었던 것이다.
주의 : 지명의 위치비정에 약간의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