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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새로 그려보는 백제 초기의 왕위 계승도

윤여동 2008. 5. 29. 23:40

윤여동설 - 새로 그려보는 백제초기의 왕위 계승도

 

  시조 온조왕
          ↓자
          ?(실명) : 아버지인 온조왕보다 일찍 죽었다.
          ↓자
    2대 다루왕
          ↓자
          ?(실명) : 아버지인 다루왕보다 일찍 죽었다  
          ↓자
    3대 기루왕      
          ↓자  
          ?(실명) : 아버지인 기루왕보다 일찍 죽었다
          ↓자
    4대 개루왕
          ↓자
    5대 초고왕
          ↓자
    6대 구수왕   
          ↓자
          ?(실명) : 아버지인 구수왕보다 일찍 죽었다
          ↓자      
    7대 사반왕   : 약 10세쯤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으나 8대 고이왕에게 왕위를 찬탈 당했다.

 

☆ 백제 초기의 왕위 계승에 대한 삼국사기의 기록은 잘못되었음이 확실하다.
  따라서 그 진실을 찾아야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기록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데, 비록 필자의 추정이 진실까지는 못된다 하더라도 그 진실에 한발자국 다가갈 수는 있을 것이다.
 
  백제 시조 온조왕은 기원전 46년경 태어나 29세쯤의 나이에 십제를 세우고 왕위에 올랐다.

 

☆ 온조왕의 어머니 소서노가 기원전 66년생이므로 그녀가 18세에 장자인 비류를 낳았고, 그 3년 뒤에 온조를 낳았다고 추정하면 온조왕은 기원전 46년생이 되고, 왕위에 오른 기원전 18년에 29세가 된다. 그런데 어머니인 소서노의 행동을 보면 비류와 온조가 쌍둥이 형제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40세인 기원전 7년에  그 형인 비류백제의 비류왕이 죽자 비류백제와 온조십제를 통합하고 국호를 백제로 개칭함으로써 명실공히 백제의 시조가 된다.

 

2대 다루왕은 온조왕의 아들이 아니라 손자?
 
  그런데 삼국사기 백제본기를 보면, 온조왕 재위 28년(A.D.10) 봄2월에 원자 다루를 세워 태자로 삼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우리는 지금까지 다루가 온조왕의 장자라고 만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 기록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때 온조왕의 나이가 56세이기 때문이다.
  만약 다루가 정말로 온조왕의 장자라면 서기 10년 태자로 봉해질 때 그의 나이는 30세쯤은 되었을 것이고, 왕위에 오른 서기 28년에는 48세쯤이 되었을 것인데, 그는 왕위에 올라 재위 50년에 죽는 것이다. 
  기록대로라면 다루왕은 100세 가까이 살았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다루왕이 온조왕의 손자라고 본다면 이야기는 많이 달라지게 된다.
  즉 온조왕의 태자가 서기 10년쯤 아버지인 온조왕보다 먼저 죽어버리자 10세쯤의 장손자인 다루를 태손으로 봉할 수밖에 없었다고 보면, 다루가 왕위에 오른 서기 28년에 그의 나이는 28세쯤이 되고, 왕위에 올라 재위 50년에 죽는다고 해도 다루왕은 78세에 죽었다는 말이 된다.
  옛날에 78세 정도까지 살았다는 것도 아주 오래 산 것이지만 이 정도까지는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다.

 

3대 기루왕은 다루왕의 아들이 아니라 손자?

 

  그런데 또 다루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3대 기루왕에 대한 기록 역시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를 보면,
  "기루왕은 다루왕의 원자이다. 다루왕 재위 6년에 태자가 되었고, 재위 50년에 왕(다루왕)이 죽으니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다루왕이 죽고 기루왕이 왕위에 오른 때는 서기 77년이었다.
  다루왕은 서기 28년 왕위에 오를 때 28세 정도였고, 재위 6년이라면 다루왕의 나이가 33세 정도였을 것인데, 그가 20세쯤의 나이에 장자인 기루를 낳았다면 기루는 서기 20년생으로서 태자로 봉해질 때 13-14세 정도 되었다는 말이 되고, 그가 왕위에 오른 서기 77년에 그의 나이 58세쯤이 된다.   
  그리고 그는 왕위에 올라 재위 52년에 죽었으므로 기록대로라면 기루왕은 110세 정도까지 오래 살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삼국사기의 기록을 틀렸다고 단언할 수는 없겠으나 혹시 다루왕의 태자가 다루왕보다 일찍 죽어버리자 다루왕이 손자를 태손으로 삼아 두었다가 그 손자로 왕위가 이어졌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면 기루왕은 약 80세 정도에 죽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4대 개루왕은 기루왕의 아들이 아니라 손자?

 

  그런데 또 삼국사기는 4대 개루왕을 기루왕의 아들이라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기루왕이 80세쯤의 나이로 죽었을 때 개루왕은 50세쯤은 되었을 것이고, 그는 재위 39년에 죽었으니 개루왕은 약 90세 정도까지 살았다는 말이 된다.
  그렇지만 이 역시 개루왕이 기루왕의 아들이 아니라 손자라면 그는 약 60세 정도의 나이에 죽었다는 말로 해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5대 초고왕은 개루왕의 장자였고, 개루왕의 차자는 구태?


  삼국사기는 또 5대 초고왕을 개루왕의 아들이라 기록하고 있는데, 개루왕이 약 60세쯤으로 죽었을 때 아들인 초고왕의 나이가 약 30세쯤은 되었을 것이다.

  초고왕은 왕위에 올라 재위 49년인 서기 214년에 죽었으므로 초고왕은 약 80세쯤의 나이에 죽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초고왕에게는 동생 구태가 있었던 듯 하다.

  구태라는 인물은 수서 백제전에 "동명의 후손에 구태(仇台)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매우 어질고 신의가 두터웠다.처음 대방 옛 땅에 나라를 세웠다.한나라 요동태수 공손도(公孫度)의 딸을 아내로 삼았는데, 나라가 점점 번창하여 동이의 강국이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바로 그 인물인데 후일의 고이왕이 바로 이 구태의 손자이다.  

 

6대 구수왕은 초고왕의 장자


  초고왕의 아들인 6대 구수왕은 50세쯤의 나이에 왕위에 올라 재위 21년에 70세 정도의 나이로 죽었던 것으로 보인다.

 

7대 사반왕은 구수왕의 아들이 아니라 손자?

 

  구수왕의 뒤를 이은 왕은 7대 사반왕인데, 삼국사기에는 그가 구수왕의 장자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구수왕이 약 70세쯤의 나이로 죽었을 때 그의 큰아들이라면 약 40세쯤은 되었을 것인데, 삼국사기는 사반왕이 왕위에 올랐으나 나이가 어려 정사를 처리할 수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반왕은 구수왕의 아들이 아니라 손자였을 것이라는 가정이 성립된다.
  따라서 구수왕이 70세쯤의 나이로 죽었을 때 그 아들은 약 40세, 그 손자는 약 10세 정도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사반이 왕위에 올랐으나 나이가 어려 정사를 처리할 수 없었다라는 기록이 남겨졌던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보면 백제 초기의 왕위 계승이 매우 어렵게 어렵게 이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장자 계승을 원칙으로 했다는 것도 알 수 있는데, 8대 고이왕(초고왕의 동생인 구태의 손자)이 나이 어린 조카인 사반왕으로부터 왕위를 찬탈하여 왕위에 오르면서부터 백제왕실은 왕위찬탈로 피비린내를 풍기게 되고,

  후세 13대 근초고왕 때에 이르러서는 근초고왕의 대륙백제와 무광왕의 반도백제로 분국이 되었다가,

  24대 동성왕 때 반도백제가 대륙백제를 흡수 통합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