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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한반도 최초의 절은 백제 무광왕이 세운 제석정사일 가능성 - 최초주장

윤여동 2007. 11. 1. 06:12

윤여동설 - 한반도 최초의 절은 백제 무광왕이 세운  제석정사일 가능성 - 최초주장

 

  

                                   

             [불에 타 폐허가 되었다는 제석사지에 깨어진 탑의 심초석만 남아 있다]

 

 

 

  [반도백제 무광왕릉과 왕비릉으로 추정되는 익산 쌍릉]


    삼국사기 기록 상 우리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 중에서 불교가 맨 처음 전래된 나라는 고구려로서 17대 소수림왕 2년인 372년으로 기록되고 있다.
  기록을 보면,
  "2년(A.D.372) 여름 6월 진(前秦)나라왕 부견이 사신과 중 순도를 파견하여 불상과 경문을 보내왔으므로 왕이 사신을 보내 토산물로서 답례했다"
  "4년(A.D.374) 중 아도가 왔다"
  "5년(A.D.375) 봄 2월 처음으로 초문사를 창건하여 순도가 있게 하고, 이불란사를 창건하여 아도가 있게 하니 이것이 해동불법의 시초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어 삼국 최초의 절이 초문사와 이불란사라고 하고 있고, 고구려가 불교를 맨 처음 받아들인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 초문사와 이불란사는 당시 고구려의 도읍이었던 평양성(황성) 부근에 지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특히 아도화상은 이불란사에 거주하면서 신라에도 불교를 전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백제에 불교가 전해진 때는 대륙백제 15대 침류왕 원년인 384년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기록을 보면,
  "원년(A.D.384) 9월 호승 마라난타가 진(東晋)나라로부터 와서 왕이 궁중으로 맞아들이고 예우하여 공경하니 불교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2년(A.D.385) 봄2월 한산에 절을 창건하고 중 10명에게 도첩을 주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어 백제에 불교가 전래된 때는 384년이고, 백제 최초의 절은 한산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는데, 백제는 근초고왕 26년인 371년에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화살에 맞아 죽게 함으로써 승리하여  남한성(후일의 광주)에서 한성(북한성)으로 도읍을 옮긴 때였으므로 침류왕 때 대륙백제의 도읍은 한성이었다.

  따라서 이때 대륙백제의 한산은 서울의 북한산이나 북악산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진황도 도산(북한산)의 남쪽에 위치한 오봉산(五鳳山)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한산에 지은 이 절이 백제 최초의 절이라  하는 것은 잘못 기록된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관세음응험기에 백제 무광왕이 지모밀지로 도읍을 옮기고 제석정사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무광왕이  대륙에서 근초고왕과 왕위찬탈전을 펼치다가 최종으로 패한 때는 서기 365년경이므로 이때 대륙을  떠나  한반도의 지모밀지로 도읍을 옮겨 바로 절을 세웠다면 제석정사의 건축시기는 서기 365년∼370년경으로 볼 수 있을 것인데, 고구려가 불교를 받아들인 372년보다 시기적으로 앞서고, 백제가 불교를 받아들인 384년보다도 앞서는 시기가 된다.
  이때 무광왕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대륙에서 왕위를 빼앗기고 20여 년 간의 왕위 찬탈전에서도 대륙백제의 왕위를 되찾지 못한 채 근초고왕에게 패하고 쫓겨 한반도의 지모밀지로 와서 새롭게 도읍을 건설해야 했던 무광왕(12대 계왕의 아들)으로서는 불법의 힘을 빌어서라도 반드시 빼앗긴 왕위를 되찾고, 잃어버린 대륙의 땅을 되찾고 싶었을 것이고, 전투 중에 죽어야 했던 수많은 영혼들의 명복도 빌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궁궐 조성시 절도 함께 지었을 것이다.       
  사실이 이러했다면 삼국 최초로 불교를 받아들인 사람이 바로 반도백제의 무광왕이었다는 말이 되고, 삼국  최초의 절이 초문사나 이불란사가 아니라 사실은 한반도 전북 익산 금마에 세워졌던 제석정사라는 말이 된다.

  지금 익산 금마의 제석사터를 발굴 중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곳 제석사지는 매우 중요한 곳으로서 우리 한반도 불교의 시원지라는 말이된다.

  잘 발굴한 후 복원하여 성역화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

 

  관세음응험기 중 무광왕 관련 기사   百濟 武廣王 遷都 枳慕密地 新營精舍
백제 무광왕이 지모밀지로 천도하고 정사(절)를 새로 조영하였다. 
以 貞觀 十三年 歲次 己亥 冬十一月
그런데 정관 13년(A.D.639) 기해년 겨울 11월에
天大雷雨 遂災帝釋精舍
하늘에서 큰 벼락이 떨어져 제석정사에 불이 났다.
佛堂七級浮圖 乃至 廓房一皆燒盡
불당과 탱화 그리고 곽방이 모두 불탔다.
塔下礎石中 有種種七寶 亦有佛舍利 채水精甁
탑아래 초석 가운데에는 여러 가지 칠보와 불사리가 들어있는 채수정병
又以銅作紙 寫金剛波若經 貯以木漆函
그리고 구리로 만든 얇은 판에 금강반야경을 베껴 목칠함에 넣었었다.
發礎石開視 悉皆燒盡
초석의 뚜껑을 열어보니 모두가 타버렸고,
有佛舍利甁與波若經漆函如故 
불사리병과 반야경칠함도 마찬가지였다.
水精甁內外徹見 蓋亦不動
수정병 내외가 새까맣게 그을렸고 뚜껑이 열리지 않았다.
而舍利悉無 不知所出
그런데 사리는 하나도 없었다. 어디로 나갔는지 알 수 없었다.
將甁以歸大王
얼마 후 병을 대왕에게 가져다 놓고 
大王請法師 發卽懺悔 開甁視之
대왕이 법사를 청하여 참회하게 하고 뚜껑을 열어보니,
佛舍利 六箇俱在處內甁
불사리 여섯 개가 병 안에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自外視之右一條 普門品云 火不能燒
이와같은 것을 볼 때 보문품은 불로도 능히 태울 수 없는 것이다.
夫聖人神迹 導化無方
무릇 성인의 신기한 기적은 온 세상을 인도하고 교화하도다.
若能至心仰信
어찌 마음으로부터 우러나 믿지 않을 손가
無不照復捨
다시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리 없을 것이다.
右條追繼焉
이와같은 일은 계속하여 일어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