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카테고리 없음

윤여동설 - 환웅설화 속의 웅녀(熊女)는 왕비로 선발된 맥족(貊族)여인이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 2010. 2. 9. 06:30

윤여동설 - 환웅설화 속의 “웅녀(熊女)”는 왕비간택에서 최종으로 선발된 맥족(貊族)여인이었다 - 최초주장

 

 

   삼국유사 고조선 왕검조선 조를 보면, 환웅설화가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에 곰과 호랑이가 등장하여 곰이 웅녀로 변하여 환웅과 혼인하여 단군왕검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고, 호랑이는 사람이 되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어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아무리 옛날이라지만 곰이 사람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일부 사람들은 그 기록을 잘못 이해하고는 직역하여 환인, 환웅, 단군왕검 시대를 역사가 아닌 신화로 치부해 버리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설화 형식을 빌어 전해졌을 뿐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이 기록은 환웅천왕이 왕비를 간택하는 과정에 대한 기록으로서 최종적으로 맥족의 여인이 왕비로 간택되었음을 알려주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면,

  “이때 호랑이 한 마리와 곰 한 마리가 같은 굴속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항상 신웅(환웅)에게 사람이 되기를 기도했다.

  이때 신웅(환웅)이 신령한 쑥 한 줌과 마늘 20개를 주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곧 사람이 될 것이다’ 했다.

  이에 곰과 호랑이가 그것을 먹고 삼칠일 동안 조심했더니 곰은 여자의 몸으로 변했으나 호랑이는 조심하지 않아 사람의 몸으로 변하지 못하였다.

  웅녀는 혼인할 사람이 없으므로 매일 신단수 아래에서 잉태되기를 축원하였다.

  환웅이 잠시 사람으로 변하여 그녀와 혼인했더니 곧 잉태되어 아들을 낳아 단군왕검이라 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기록 속에서 호랑이와 곰이 같은 굴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은 이웃한 지역에 예족과 맥족이 살고 있었다는 말이고, 신웅에게 사람이 되기를 기도했다는 말은 환웅천왕의 왕비가 되고 싶어했다는 말로서  예족과 맥족의 두 여인이 왕비후보로 선발되었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후한서나 삼국지 예전을 보면, 예족들은 호랑이를 신으로 섬겨 제사지낸다고 기록하고 있음을 볼 때 환웅설화에서 말하는 호랑이는 예족을 말한다고 할 수 있고, 곰이 상징하는 것은 맥(貊)족을 말하는 것이므로 결국 예족여인과 맥족여인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러 과정을 거쳐 결국 이 맥족 여인과 예족 여인이 환웅천왕의 왕비후보로 최종 선발되었고, 왕실에서는 마지막 과정으로서 극한 상황에서의 인내심을 테스트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만약 왕비가 극한 상황에서 참고 견디는 인내심이 부족하면 국모로서의 역할을 원만히 수행하기가 어렵다고 보았다는 말이 된다. 

  그리하여 왕실에서는 이 두 여인에게 똑같이 최소한의 식량을 주고(상징적으로 쑥 한줌과 마늘 20개라고 한 듯하다) 백 일간을 견딜 수 있는지를 시험하게 되었을 것인데, 그 결과는 싱겁게도 삼칠일 즉 21일 만에 예족 여인이 경합에서 탈락하게 되어 맥족 여인이 왕비로서 최종 간택되기에 이르렀고, 결국 최종경합에서 승리한 맥족 여인은 환웅천왕의 왕비가 되어 왕자를 낳아 왕위를 이어갔다는 이야기가 설화로 전해지게 된 것이라 생각된다.

 

☆ 환웅시대에 지금의 요녕성 능원부근을 중심으로 살던 맥족과 내몽골 정람기 부근을 중심으로 살던 예족이라는 큰 두 부족이 있었는데, 환웅천왕의 왕비 자리를 놓고 두 부족의 여인들이 경합을 벌이게 되자 온 나라 백성들이 과연 누가 환웅천왕의 왕비로 최종 간택될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던 듯하다.  

  

  그런데 수많은 왕비간택이 있었을 것인데도, 하필 이 웅녀 이야기가 후세까지 전해지게 된 것은 그때의 왕비 간택이 온 국민이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정도로 유명한 사건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그 때의 왕비 간택 과정 과정이 너무도 흥미진진하였기 때문에 설화형식을 빌어 전해졌고, 고려 때 일연이 그 이야기를 삼국유사에 기록했다고 생각된다. 

  어느 사람은 불교 승려였던 일연이 우리의 역사를 신화화하기 위하여 일부러 이러한 기록을 삼국유사에 수록했을 것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는 말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삼국유사를 보면 불교 이적에 관한 기록에 앞서 우리 역사를 먼저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일연이 비록 속세를 떠난 승려라고 해도 반드시 우리 역사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고, 당시 불교 최고의 반열에 올라 왕의 스승 역할도 했던 사람이 역사를 일부러 왜곡하기 위해 그러한 기록을 삽입할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일연이 우리 역사를 그토록 싫어했다면 삼국유사를 지을 때 아예 역사를 다루지 않고 불교 이적에 관한 글만으로도 한 권의 책으로 엮기에 충분했을 것인데, 무엇 때문에 역사를 앞부분에 넣어 중요하게 다루었겠는가!

  이렇듯 설화 속에 내재되어 있는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면 환웅설화 하나를 제대로 해석할 수 없고, 역사를 올바르게 볼 수 없게 되어, 한민족이 곰의 후손이니 어쩌니 헛소리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옛 이야기는 아무 의미없이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