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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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환웅의 신시(神市)는 칠로도산산맥의 대광정자산(大光頂子山) 부근이다 - 최초주장

윤여동 2010. 2. 17. 04:19

윤여동설 - 환웅의 신시(神市)는 칠로도산산맥 대광정자산(大光頂子山) 부근이다 - 최초주장

 

 

  삼국유사 고조선 왕검조선 조를 보면,

  고기에 이르기를 “옛날 환인의 서자(庶子) 환웅이 있었는데 자주 천하를 차지할 뜻을 두어 인간 세상을 탐내고 있었다.

  그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인간들에게 널리 이로운 땅이었다.

  이에 환인은 천부인 세 개를 환웅에게 주어 인간 세상을 다스리게 했다.

  환웅은 무리 3천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太伯山) 신단수 아래로 왔다.

  이곳을 신시(神市)라 하고 이 분을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우리는 이 기록에 따라 환웅천왕이 나라를 처음 세운 곳이 태백산(太伯山 또는 太白山) 부근이고, 최초로 도읍한 곳이 “신시(神市)”였으며, 환인에게 여러 아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장자가 왕위를 계승하던 전제 왕조시대에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장남이 아니면 왕위를 계승할 수 없었다.

  그런데 환웅은 장남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인물로서 그 아버지 환인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태백산 부근의 땅을 영지로 나누어 줄 것을 끈질기게 요구했던 듯하다.

  그 아버지 환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대로 두었다가는 자신이 죽은 후 왕위찬탈과 같은 불상사가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환인은 그러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환웅에게 태백산 부근의 땅을 나누어 주고 그곳으로 가서 새로운 왕국을 건설할 수 있도록 허가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리하여 환국은 환인의 장자가 왕위를 이었을 본래의 환국과 환웅이 새로 세운 나라 신시배달국으로 분리되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이때 환인이 환웅에게 주었다는 천부인 세 개가 과연 무엇을 말하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태백산 부근의 땅에 대한 관할권과 관리를 임명할 수 있는 임명권, 그리고 백성들에 대한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세개의 옥새(玉璽)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하여 환웅은 자신을 따르는 백성 3천명을 이끌고 가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신시(神市)에 도읍하고 배달국이라 했다고 전하는데, 환인이 처음 나라를 세울 때 동녀동남 800명을 기반으로 했다는 기록과 비교해 보면 환웅을 따르는 무리가 매우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환웅의 인물됨이 특출했던 듯하다.

  

☆ 안함로의 삼성기에는 “환웅씨가 계속하여 일어나 천신의 뜻을 받들어 백산과 흑수 사이에 내려왔다. 사람 모이는 곳을 천평(天坪)에 마련하고 그 곳을 청구로 정했다. 천부의 징표를 지니고 모든 일을 주관하며 세상을 다스려 교화를 베푸니 인간에게 크게 유익하였다.  또 신시에 도읍을 세우시고 나라를 배달(倍達)이라 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백산은 (태백산, 불함산)을 말하는 것으로서 지금의 칠로도산산맥의 대광정자산 부근을 말하는 듯 하다.   또한 원동중의 삼성기 전 하편을 보면, "처음에 환인이 천산에 올라 도를 얻어 오래도록 살았으니 몸에는 병도 없었다.................고기에 이르기를 파나류산 아래 환인씨의 나라가 있었으니 천해 동쪽의 땅이다"라고도 기록되어 있는데, 천해 동쪽 지역이 곧 옛 환국의 강역이었음을 알 수 있고 그곳에 천산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천해를 지금의 바이칼로 보면 그 동쪽 지역이 원래의 환국 강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환웅이 나라를 세우고 도읍으로 정했다는 태백산의 “신시(神市)”는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그 단서가 될 만한 기록이 규원사화에 보인다.

  규원사화 단군기를 보면,

  “여러 고을 땅의 길흉을 판단하여 도읍을 태백산(太白山 : 불함산,장백산) 서남쪽(?, 필자주 : 동남쪽의 오기로 보인다) 우수하 벌판에 정하고 왕검성(필자주 : 첫 도읍 아사달을 말하는 것이다)이라고 했다” 라고 기록하고 있어 왕검조선의 첫 도읍지인 우수하 벌판의 왕검성(필자주 : 아사달이다) 동북쪽(필자주 : 서북쪽이다) 방향에 태백산이 위치하고 있었다는 것인데, 태백산은 지금의 북경 동북쪽 대광정자산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환웅의 신시와 왕검조선은 지금의 칠로도산산맥 부근에서 찾아야 한다.

  그랬다가 후세에 단군왕검이 태백산 동남쪽 우수하 벌판에 위치한 아사달(필자주 : 내몽골 적봉시 영성현 대명진고성 일원)에 도읍하고 새로운 나라 조선(고조선)을 세웠고, 다시 평양왕검성(필자주 :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으로 도읍을 옮겼을 것으로 본다면 대흥안령, 칠로도산산맥 부근이 곧 아주 먼 옛날부터 원래 우리 역사의 중심 강역이라 할 수 있고, 지금 신비의 문화라고 하는 홍산문화는 바로 우리 환인 환국문화, 환웅의 신시문명과 고조선 문명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이를 알지 못하고 한반도를 중심으로 우리 역사를 해석하고 있으니 역사가 혼란스러운 것이고, 홍산문화권에서 출토되는 유물들이 우리 선조들이 남겨 놓은 것이라는 것도 모르게 된 것이다.

  발상을 전환하면 우리 역사가 환히 보이는데, 그 “발상의 전환”이라는 것이 그렇게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