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카테고리 없음

윤여동설 - 고구려 안시성(安市城)을 찾았다 - 최초주장

윤여동 2010. 3. 8. 06:57

윤여동설 - 고구려 안시성(安市城)을 찾았다 - 최초주장

 

 

 

 

 

 

 

 

  신증동국여지승람 평안도 용강현(龍岡縣) 건치연혁 조를 보면, “고황룡국(古黃龍國)으로서 고구려가 병합하였고, 고려에서는 황룡성(군악이라고도 했다)이라 하였다. 후에 지금 이름(용강)으로 고치고 현으로 만들었는데, 본조(조선)에서는 그대로 따랐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평안도 용강이 옛날에는 황룡국이었음을 알 수 있고,

  성곽 조를 보면, “안시성(安市城)은 오석산(烏石山)에 있는데, 현의 치소와는 5리 떨어져 있으며, 험하고 견고하기가 비할 데가 없다.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1만2천5백80척이며 안에는 샘 열 개가 있는데 합쳐 흐르고 군창이 있다. 세상에서 이 성을 당 태종이 친히 치려하였으나 함락 시키지 못하였다고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우리가 지금까지 그 위치를 정확히 찾지 못하고 있는 안시성이 평안도 용강현에 있었다고 이해할 수 있도록 기록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는 또 “지금 대명일통지를 보면 ‘안시폐현은 개주위 동북쪽 70리에 있는데, 한(漢)나라가 세웠으며, 당 태종이 공략했으나 함락 시키지 못하자 설인귀가 흰 옷을 입고 올랐다는 곳이 이 성이다. 발해에서는 철주를 세웠고, 금나라에서는 탕지현이라 고치고 개주에 내속시켰다’고 하였는데 원성이 운운한 것은 여기를 안시성이라 여겼던 것이나 잘못이다.” 라고 대명일통지의 기록이 잘못되었다고 지적까지 하고 있다.

  그런데 당 태종은 고구려를 침공할 때 요동을 경유했고, 군사들과 함께 흙을 져 날라 높게 둑을 쌓아 올려 간신히 요동성을 함락 시키고 백암성의 항복을 받아들인 후 곧 바로 안시성에 도착하여 공격하게 되는데, 요동성에서와 같이 흙산을 쌓는 등 별별 짓을 다 해 보았으나 끝끝내 안시성을 함락 시키지 못하고 결국은 철군을 결정하게 되는데, 이유는 “요동은 일찍 추워져서 풀이 마르고 물이 얼어 군사와 말을 오래 머무르게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안시성이 요동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기록이고,  

  한서지리지 권28하 지리지 제8하 요동군 조를 보더라도,

  “ 요동군(遼東郡)

    진(秦)나라가 설치했고 유주(幽州)에 속했다.

  55,972호이고, 인구는 272,539명이다.

  18현이 있는데, 양평(襄平), 신창(新昌), 무려(無慮 : 서부도위치소), 망평(望平: 대요수가 요새 밖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안시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가는데, 길이가 1,250리이다), 방(房), 후성(候城: 중부도위치소), 요대(遼隊), 요양(遼陽), 험독(險瀆), 거취(居就), 고현(高顯), 안시(安市), 무차(武次: 동부도위치소), 평곽(平郭), 서안평(西安平), 문(文), 번한(番汗), 답씨(沓氏)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안시현이 요동군에 속했던 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명나라 때의 기록인 속문헌통고 동령부 조에도, “순주(順州)는 본래 요대현이고, 철주(鐵州)는 본래 안시현이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사기 잡지 제6 지리 편에도, 

  “압록강 이북에서 항복하지 않은 11개 성은 원래의 조리비서인 북부여성주와, 원래의 무자홀인 절성과 원래의 초파홀인 풍부성과 원래의 구차홀(돈성이라고도 한다)인 신성주와 원래의 파시홀인 도성과 원래의 비달홀인 대두산성과 원래의 오열홀인 요동성주와 옥성주와 백석성과 다벌악주와 옛날 안촌홀(환도성이라고도 한다)인 안시성(安市城) 등이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안시성이 요동지역에 위치했음을 확인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안시성이 위치했다는 평안도 용강현이 원래는 요동지역에 위치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되니,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은 잘못 되었거나 한반도에 관한 기록이 아니라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앞글들에서 옛 요동은 지금의 요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요수 역시 지금의 요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누차에 걸쳐 강조하였다.

   고대의 요수는 지금의 요하가 아니라 영정하(永定河)를 말하는 것이고, 강물의 색깔이 청둥오리의 머리색과 같이 푸른빛을 띄고 있었다는 고대의 압록강은 지금의 북경 북쪽을 흐르는 백하(白河)를 말하는 것이다. 

 

☆ 수경을 보면, “대요수는 요새 밖 백평산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요새로 들어가 요동 양평현 서쪽을 지나고, 또 동남쪽으로 흘러 방현 서쪽을 지나고, 또 동쪽으로 흘러 안시현 서남쪽을 지나 바다로 들어간다. 또 원토(현토) 고구려현에 요산이 있는데 소요수가 발원하여 서남쪽으로 흘러 요대현에 이르러 대요수로 들어간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요수가 안시성이 있는 안시현의 서남쪽을 지나는 강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요동성은 지금 북경부근으로 비정되고, 고구려의 평양성은 열하행궁이 있는 하북성 승덕시이다.

  이때 당 태종은 요동성을 지나 안시성을 함락 시키고 고구려의 평양성 즉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를 향하여 진군하려고 했었으나 안시성에 걸려 압록강도 건너보지 못하고 철군하였다. 

  따라서 안시성은 지금의 영정하(요수)와 백하(압록수)사이에 위치했던 것이다.

  고구려 난공불락의 요새 안시성(安市城)은 지금 북경 북쪽 회유구 발해진 일원을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