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수 양제 고구려 침공 때의 좌12군, 우12군의 행군로는? - 최초공개
수 양제는 611년 2월 조서를 내려 고구려 침공을 공식화 하고, 군사를 탁군(涿郡)으로 모이도록 발표한 후, 자신도 도읍인 장안을 떠나 4월에 탁군의 임삭궁에 도착한다.
그리고는 전쟁 준비를 완벽하게 한 후 612년 정월에 이르러 군사들을 탁군에서 출발 시키게 되는데, 총 군사의 수효는 1,133,800명으로서 출발에만 40일이 소요되었고, 늘어선 군사들의 깃발이 960리에 이르렀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이 소위 말하는 수 양제 고구려 2차 침공이다.
이때 수 양제는 고구려 침공에 총 24군(여기에서의 한 개 군이 정확히 몇 명으로 구성되었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을 동원하였는데, 좌12군, 우12군으로 나누어 각각의 행군로를 정해주고 고구려의 평양성을 향하여 가도록 했고, 발해를 뒤덮고, 부여를 경유하여 번개처럼 휩쓸 것이라고 호기를 부린 기록도 보인다.
☆ 이때 한개 군의 군사수가 정확히 몇 명이었는지는 기록이 자세하지 않아 알 수 없으나 이 전쟁 기록 중에 우문술이 지휘하는 9군이 처음 요동에 도착했을 때는 총 수가 305,000명이었는데, 고구려 평양성까지 갔다가 퇴각할 때 살수전투에서 대패하고 군진이 무너져 압록강을 건너 요동성으로 돌아온 군사가 겨우 2,700명 뿐이었다는 기록이 있음을 보면 이때 수나라 군사들이 살수전투에서 30만명 이상이 죽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고구려군이 대승을 거둔 것이었다.
그런데 이 기록 속의 9군을 아홉 개 군의 통합 군사수로 보면, 한개 군에 평균 약 34,000명(기병4000명 + 보병30,000명) 정도로 편제되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고, 육군 24군 외에 수군과 수양제가 직접 지휘한 직할부대가 또 따로 있어 총 군사수가 113만명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록을 보면, 좌12군은 누방도, 장잠도, 명해도, 개마도, 건안도, 남소도, 요동도, 현토도, 부여도, 조선도, 옥저도, 낙랑도를 따라 각각 행군하게 했고,
우12군은 점제도, 함자도, 혼미도, 임둔도, 후성도, 제해도, 답돈도, 숙신도, 갈석도, 동이도, 대방도, 양평도를 따라 각각 행군하게 했다고 기록되어 전한다.
☆자치통감(資治通鑑) 권181 수기5 양황제 대업8년 5월 임오 조를 보면, "좌익위대장군 우문술(宇文述)은 부여도(扶餘道)로 나오고, 우익위대장군 우중문(于仲文)은 낙랑도(樂浪道)로 나오고, 좌효위대장군 형원항(荊元恒)은 요동도(遼東道)로 나오고, 위익위장군 설세웅(薛世雄)은 옥저도(沃沮道)로 나오고, 좌둔위장군 신세웅(辛世雄)은 현토도(玄菟道)로 나오고, 우어위장군 장근(張瑾)은 양평도(襄平道)로 나오고, 우무후장군 조효재(趙孝才)는 갈석도(碣石道)로 나오고, 탁군태수검교좌무위장군 최홍승(崔弘昇)은 수성도(遂城道)로 나오고, 검교우어위호분랑장 위문승(衛文昇)은 증지도(增地道)로 나와 모두 압록수 서쪽에서 집결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24군 중 9군의 지휘관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고구려의 평양성을 지금의 북한 평양으로 인식해 수 양제가 탁군(현 북경 서남쪽 탁주)을 출발하여 동북쪽으로 북경을 지나고 산해관을 넘고, 대릉하, 요하, 압록강, 청천강을 건너 북한 평양을 향하여 행군했을 것이라고 하면서 좌12군, 우12군의 행군로를 찾으려 했으나 아직까지 그를 정확히 밝힌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필자가 처음으로 부여(동부여)는 내몽골 정람기 부근, 요동은 북경 부근, 현토는 장가구 부근, 대방은 준화 부근, 수 나라 군의 최종 공격 목표였던 고구려의 평양성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부근이었고, 백제(대륙백제)는 난하 하류부근, 신라(대륙신라)는 요녕성 금주시(錦州市)일원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밝혀내었다.
따라서 수 양제가 이끈 좌12군, 우12군은 탁군이라는 곳을 출발하여 길을 나누어 북경 동북쪽에 위치했던 고구려의 평양성 즉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를 향하여 행군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수 양제 고구려 2차 침공 때 좌12군, 우12군 행군로의 진실이지 탁군에서 출발한 수나라 군이 수 천리를 걸어 한반도 평양까지 왔다가 패전하고 돌아갔던 것이 아닌 것이다.
북한 평양은 옛 고구려의 도읍 평양성이 아니고, 청천강은 옛 살수가 아니며, 압록강은 옛 압록강이 아니고, 요하는 옛 요수가 아니다.
이것을 인식하는 사람 만이 우리 역사의 진실을 밝힐 수 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역사를 직시하면 언젠가는 되찾아야 할 대륙의 우리 옛 땅이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