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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우수주(우두주)는 한반도 강원도 춘천이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 2010. 8. 30. 07:40

윤여동설 - 우수주(우두주)는 한반도 강원도 춘천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 최초주장

 

 

 

   삼국사기 지리지 삭주(朔州) 조를 보면,

  “삭주는 가탐의 고금군국지에 이르기를 ‘고구려의 동남쪽과 예의 서쪽이 옛날 맥의 지역’이라 하였으니 대개 지금 신라의  북쪽삭주(盖今新羅北朔州)인 듯하다.

  선덕왕(선덕여왕) 6년인 당 정관 11년에 우수주(牛首州)로 만들어 군주를 두었고[문무왕 13년인 당 함형4년에 수약주를 설치하였다고도 한다], 경덕왕이 개칭한 것인데 지금의 춘주이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 강원도 춘천도호부 건치연혁을 보면,

  “본래 맥국인데 신라의 선덕왕(선덕여왕) 6년에 우수주(우두주라고도 한다)로 만들고 군주를 배치했다.

  문무왕 13년에는 수약주(오근내라고도 하고 수차약이라고도 한다)라고 불렀고, 경덕왕이 삭주(朔州)로 고쳤다가 뒤에 광해주로 고쳤다.

  고려 태조 23년에 춘주(春州)로 만들었고, 성종 14년에 단련사라고 불러 안변부에 예속시켰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삼국사기 지리지 기록 속의 삭주와 신증동국여지승람 속의 춘천이 동일한 장소를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춘천이 곧 옛 기록 속의 우수주, 우두주, 수약주, 삭주, 춘주 등임을 알 수 있다.

 

☆ “대개 지금 신라의 북쪽 삭주(盖今新羅北朔州)”라고 한 것은 평안도에도 동일한 지명인 삭주가 있었기 때문에 그를 구분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삼국사기 신라본기 나해이사금 27년(A.D.222) 조를 보면, “10월 백제군사가 우두주(牛頭州)에 들어와 이벌찬 충훤이 군사를 거느리고 막다가 웅곡에서 적에게 패하여 단신으로 돌아오니 그를 진주로 강등시키고, 연진을 이벌찬으로 삼아 군사사무를 겸하여 보게 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고,

 

  또 기림이사금 3년(A.D.300) 조를 보면, “3월 왕이 우두주(牛頭州)에 이르러 태백산에 제사를 지냈다”라는 기록이 있음을 보면 선덕여왕 훨씬 이전에도 이 우두주가 신라 땅이었고, 백제와의 접경지역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신라에서는 이곳 우두주를 매우 성스러운 장소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우두주(우수주)에 관해서는 진덕여왕 원년(A.D.647) 조의 “2월 대아찬 수승을 임명하여 우두주 군주를 삼았다”는 기록, 

  태종무열왕 2년(A.D.655) 조의 “겨울 10월 우수주에서 흰 사슴을 바쳤다”는 기록, 

  삼국통일 이후인 효소왕 7년(A.D.698) 조의 “봄 정월 이찬 체원으로 우두주 총관을 삼았다”는 기록,

  성덕왕 35년(A.D.736) 조의 “이찬 윤충, 사인 영술을 보내 평양과 우두 2 주의 지세를 살폈다”는 기록들이 계속적으로 나타나는데, 특히 성덕왕 때 신라가 평양주와 우두주의 지세를 살폈다는 것은 성덕왕 34년(A.D.735)에 당 현종이 패강(浿江, 浿水) 이남 땅을 신라에게 준 바로 그 다음해이므로 신라에서는 당나라로부터 할양받은 그 땅을 본격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사전 조사가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 춘천도호부 산천 조를 보면,

  “봉산(鳳山) : 부의 북쪽 1리에 있는 진산이다.

  청평산 : 다른 이름은 경운산이다. 부의 동쪽 44리에 있다.

  용화산 : 부의 북쪽 111리에 있다.

  화악산 : 부의 서쪽 90리에 있다. 영평 사람들은 백운산이라고도 부른다.

  대룡산 : 부의 동쪽 20리에 있다. 다른 이름은 여매압산이다.

  석파현(석파고개) : 부의 서쪽 28리에 있다.

  우두산(牛頭山) : 부의 북쪽 13리에 있다.

  모진 : 부의 북쪽 42리에 있다. 회양의 덕진, 금성의 보리진, 낭천의 대리진은 곧 그 상류이다.

  신연진 : 부의 서쪽 15리에 있으며, 소양강의 하류이다.

  소양강 : 부의 북쪽 6리에 있다. 근원이 인제의 서화현에서 나와서 본 부의 기린현의 물과 합류하여 양구현의 남쪽에 이르러서 초사리탄이 되고, 또 부의 동북쪽에 이르러 청연이 되며, 주연이 되며, 적암탄이 되고, 소양강이 된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춘천도호부의 북쪽 13리에 우두산이 있다는 것이다.

  우두산(牛頭山)이라.............

  옛 사람들은 산 이름을 지을 때 대개 산의 형태에 따라 이름을 지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봉황산이라 하면 산의 형태가 새를 닮았고, 용산이라 하면 산의 형태가 용을 닮은 경우이다. 

  따라서 “우두(牛頭)”라는 의미는 “소머리”라는 뜻이므로 산의 형태가 소의 머리같이 생겼다는 말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지금의 춘천이 사서 기록 속의 우두주(우수주)가 확실하다면 지금도 춘천에는 소머리 형태를 하고 있는 우두산이라는 산이 있어야 할 것인데, 지금 한반도 강원도 춘천에 우두산이 있기는 있으나 이곳의 우두산은 이름만 우두산이지 실제 그 산에서는 소머리 형상을 전혀 찾을 수 없고, 마치 긴 몸통을 가지고 있는 뱀이나 미꾸라지 머리처럼 보일 뿐이다. 

  지명은 있으나 지명과 형상이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매우 이상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이상한 것이 아니라 사실 우리가 지금 신라, 백제, 고구려 삼국역사의 현장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고 있을 뿐이다.

  즉 지금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신라가 한반도의 경주에 도읍하고 천년왕조를 이룬 나라로 알고 있으나 사실 신라는 지금의 중국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부근에 도읍하고 있던 나라였다. 금주시(錦州市)가 신라의 천년도읍지 서라벌이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의 고대 역사를 정확히 해석할 수 없다]

  앞서 전한의 무제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땅을 나누어 설치했던 한사군은 한반도 북부가 아닌 지금의 중국 하북성 난하 부근에 설치되었었고, 그 남쪽 당산, 진황도, 호로도에는 삼한(마한, 진한, 변한)이 위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신라는 그 삼한 중 진한 땅에서 일어났고, 백제는 마한의 동북쪽 땅에서 일어났으며, 가야는 변한 땅에서 일어났다.

 

[삼한과 삼국의 위치]   

                                       

              마한(백제)                진한(신라)

 

 

                                             변한(가야)       

 

  그러다가 신라가 가야와 백제 그리고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그 땅을 차지하게 되고, 통일신라의 뒤를 이어 고려가 일어나 옛 고구려 땅 일부와 통일신라 땅을 모두 차지하게 되는데, 북사나 구당서, 신당서 등 중국사서 대부분은 신라가 한나라 때의 낙랑 땅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신라의 전신인 진한이 직접 낙랑에 속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진한 땅에서 건국된 신라가 낙랑 땅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은 확실할 것이고, 또 옛 백제의 북쪽에는 말갈이, 동쪽에는 신라가 위치하고 있었는데, 이는 한반도에 관한 기록이 아니라 지금의 중국 요녕성 능원 부근에 관한 기록이라는 것이 우리 역사 해석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초기 한사군의 설치 위치]

 

                                  현토군

 

 

                       낙랑군                                             임둔군                          

           (치소 하북성 승덕시 부근)         

         

                  

                              

                                                                   진번군

 

☆ 임둔군의 위치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많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강릉을 예국, 임둔군이라 하였다.   

 

[2군의 위치]

        

        현토군                                낙랑군                        낙랑동부도위            

       [신현토군]                                                            [구 현토군]

 

 

                                             낙랑남부도위

                 

☆ 신현토군은 기원전 82년에 임둔군과 진번군이 폐지되면서 한나라에서 본국 방어를 위해 구현토군을 낙랑군에 이관하고 관할지역을 구려의 서북쪽으로 옮겼고, 구현토군은 낙랑동부도위가 되고, 낙랑남부도위는 후일 대방군이 된다.     

 

  따라서 원래의 신라 우수주나 우두주는 한반도의 강원도 춘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요녕성 능원 부근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위 사진은 필자가 찾아낸 우수주(우두주)의 소머리 형상이다.

  이렇듯 산의 형상이 꼭 소의 머리형태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라에서는 그곳을 우수주, 우두주라 이름 붙였던 것이고, 그곳이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그곳에 군주를 두어 방어를 튼튼히 했던 것이며, 그곳은 통일신라 때 전국을 9주로 나누었을 때 삭주가 되고, 고려 때 춘주가 되는 것이다.

 

☆ 고려 때는 춘주 인삼이 매우 유명했는데, 이는 한반도 춘천에서 생산된 인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륙의 춘주(우수주, 우두주)에서 생산된 인삼을 말하는 것으로서, 지금도 대륙의 춘주로 비정되는 능원 부근에서는 인삼을 많이 재배하고 있고, 품질도 좋다. 

 

  또한 그곳은 삼국유사 고조선 왕검조선 조에서 개성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주를 달아 놓았고, 우수하벌판에 건설했다고 전해지는 고조선(왕검조선)의 첫도읍 아사달이다.

 

☆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원래의 신라 땅을 나누어 상주, 양주, 강주를 설치하였고,  옛 백제지역을 나누어 웅주, 전주, 무주를 설치하였으며, 옛 고구려의 남쪽지역을 나누어 한주, 삭주, 명주를 설치하였는데, 지금의 난하를 중심으로 한 그 부근이고, 고려의 도읍 개경은 중국 하북성 승덕시 관성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원래 대륙에 있었어야 할 우두주(우수주)가 한반도에 춘천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고, 우두산도 있고, 대룡산도 있고, 소양강도 있어 많은 사람들이 헷갈리고 있는 것이다.

  대륙 능원, 건평 부근에 있어야할 원래의 우두주가 한반도로 와서 춘천으로 둔갑을 해버렸고, 우두산, 소양강도 함께 따라와 버린 것이다. 

  그러다보니 지금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는 조선시대에 이루어진 완벽한 지명의 교치로 인하여 대륙에 우리의 옛 땅이 있었다는 것 자체를 모르게 되었고, 한반도 강원도의 춘천을 옛 우두주(우수주)로 인식하게 되고 말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