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해두국(海頭國)은 어디에 위치했을까?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5년(A.D.22) 조를 보면,
“여름4월 부여왕 대소의 동생이 갈사수(曷思水) 가에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었다.
이는 금와왕의 막내아들인데 그의 이름은 실명되어 알 수 없다.
앞서 그는 대소왕이 피살되자 장차 나라가 망할 것으로 짐작하고 자기를 따르는 무리 1백여명과 함께 압록곡에 이르렀을 때 해두왕(海頭王)이 사냥 나온 것을 보고 그를 죽이고 그 백성을 빼앗았었다.
이때에 이르러 (갈사수 가에) 도읍을 정하고 갈사왕이 되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압록강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해두국이 위치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고, 갈사수 역시 압록강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강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갈사국은 고구려의 건국지 졸본과도 그리 멀리 떨어진 거리가 아니었을 것이고, 국내성과도 가까운 거리였을 것이다.
그리고 대무신왕 15년(A.D.32) 조를 보면,
“겨울11월 왕의 아들 호동이 자살하였다. 호동은 왕(대무신왕)의 둘째 왕비인 갈사왕 손녀의 소생이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어, 대무신왕이 금와왕의 막내아들이 해두왕을 죽이고 그 백성을 빼앗아 세운 나라였던 갈사국왕의 손녀를 둘째 왕비로 맞아들였었고, 그 소생이 유명한 호동왕자였음을 알 수 있다.
이때 고구려의 대무신왕은 동부여를 침공하여 대소왕을 죽였지만 완전히 항복받지는 못했고, 그 후 대소왕의 막내동생이 세운 갈사국을 회유하기 위하여 그 손녀를 둘째 왕비로 맞아들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갈사국(曷思國)의 근간이 되었을 해두국(海頭國)은 지금의 어디에 위치했던 나라였고, 왜 그 나라는 "해두(海頭)"라는 국호를 사용하게 되었을까?
이는 아마 바다로 흘러가는 강의 최상류에 위치한 나라였기 때문에 그 발원지라는 의미로 해두국(海頭國)이라 하지 않았을까 싶고, 그 위치는 동부여가 지금의 내몽골 정람기 부근에 위치한 나라였고, 당시 고구려의 도읍 국내성이 그 남쪽인 지금의 북경 연경의 영녕진에 위치했기 때문에 그 중간 지점인 지금 난하(옛 패수)의 발원지인 섬전하가 옛 갈사수였을 것이고, 따라서 내몽골 고원(沽源) 부근이 해두국이었고, 후일 갈사국(曷思國)이 되었을 것이다.
그 유명한 고구려 호동왕자의 어머니 갈사왕의 손녀는 내몽골 고원 부근에 위치했던 갈사국왕의 손녀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