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주몽이 동부여에서 졸본(홀본)으로 간 남하로 찾기
[지금 중국에서는 원 상도유지(원 상도성터)라 하고 있는데 이곳은 옛 동부여의 도읍 부여성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고구려 건국시조 주몽은 22세 때에 동부여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자 그곳에서 남쪽으로 도망쳐 엄호수(호태왕비문에는 엄리대수라고 하였다)를 건너 졸본(홀본)으로 갔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아들이 없던 졸본부여 왕의 둘째공주와 혼인을 하였다.
☆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그후 주몽이 부여(동부여)에서 용납되지 못하자 전한 건소 2년 봄2월에 남쪽으로 도망쳐 졸본에 이르렀다”고 하였고, 위서 고구려전에는 “주몽은 오인, 오위 등 두 사람과 함께 부여(동부여)를 떠나 동남쪽으로 도망하였다”라고 하였다.
두 기록이 주몽이 동부여에서 도망친 방향을 남쪽과 동남쪽으로 약간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 후 졸본부여왕이 죽자 주몽이 그 왕위를 물려받아 졸본부여의 왕위에 21년간 있다가, 기원전 37년에 이르러 졸본부여를 없애버리고 국호를 고구려라 하게 되는데, 지금까지 우리는 동부여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는지, 졸본이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지 확실하게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동부여는 지금의 내몽골 정람기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고, 졸본(홀본)은 지금의 하북성 적성 후성진 부근이었으며, 요동군은 북경 부근, 현토군은 장가구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이때 주몽은 지금의 내몽골 정람기 부근에 위치했던 동부여에서 도망쳐 남쪽으로 향하여 엄호수(삼국사기의 주에는 “개사수라고도 하는데 압록강의 동북쪽에 있다”고 설명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은 주몽이 건넜다는 엄호수가 구체적으로 지금의 어느 하천을 말하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다만 고대의 압록수(마자수라고도 한다)는 지금의 북경 북쪽을 흐르는 백하(밀운수고)로 비정되므로 동부여에서 도망친 주몽은 내몽골 정람기 부근으로부터 남쪽으로 향하여 하북성 적성현 후성진(졸본부여)으로 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