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직계혈통도 - 최초주장
시조 추모왕(성은 해씨 이름은 주몽, 고구려 건국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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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2대 유리왕(성은 해씨 이름은 유류) 딸 추모왕의 공주
↓[구려 고여달[高閭達)과 혼인]
고여율(高如栗)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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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막래(高莫來) 외증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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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3대 대무신왕 고추가 고재사(高再思) 외고손자
4대 민중왕
증손자 5대 모본왕
(유리왕은 막내아들 여진이 비류수에 빠져 죽은 후 이복여동생의 증손자이고, 죽은 막내아들 여진 또래인 고재사를 양자로 삼았던 듯하다. 그리하여 삼국사기 태조대왕 조에 재사가 태조대왕 궁의 아버지이고, 유리왕의 아들이라 기록될 수 있었을 것이다. 재사의 원래 성씨는 고씨, 왕위에 오르지 않았는데, 그의 장자인 태조대왕 궁이 고구려 6대 왕위에 오름으로써 이때 고구려왕실은 은연중 해씨에서 추모왕의 외손인 고씨로의 역성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하여 이후 고구려왕은 모두 이 고재사의 후손으로 이어지게 되고, 궁을 왕조를 개창한 왕에게 붙일 수 있는 태조대왕이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궁이 고씨왕조의 초대왕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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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5세손 ?(실명, 6대 태조대왕의 막내동생으로서 8대 신대왕의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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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6세손 ?(실명, 신대왕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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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7세손 8대 신대왕(6대 태조대왕, 7대 차대왕의 막내동생이라 기록되어 있으나, 태조대왕과는 나이차이가 무려 42세, 차대왕과는 18세의 차이가 나므로 신대왕이 태조대왕이나 차대왕의 형제일 수는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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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8세손 ?(실명, 신대왕의 아들, 신대왕이 오래 살아 그 아버지보다 일찍 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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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9세손 10대 산상왕(9대 고국천왕의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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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10세손 11대 동천왕(6대 태조대왕을 닮았다 하여 위궁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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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11세손 12대 중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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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12세손 13대 서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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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13세손 고추가 돌고(14대 봉상왕이 역모로 몰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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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14세손 15대 미천왕(어릴 적 아버지인 돌고가 역모로 몰려 죽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도망쳐 신분을 숨기고 머슴살이와 소금장사를 하다가 봉상왕이 제거된 후 왕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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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15세손 16대 고국원왕(백제의 침공을 받고 평양성전투 중 백제군이 쏜 화살에 맞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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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16세손 18대 고국양왕(17대 소수림왕의 동생, 소수림왕이 아들이 없어 왕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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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17세손 19대 광개토태왕
☆ 호태왕 비문 중 “세월이 흘러 17세손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있는데 광개토태왕이 왜 17세손인지 지금까지 그 혈통을 정확하게 알 수 없었는데, 드디어 그 의문이 풀린 것이다.
[참고]
고구려 왕위계승도
고구려시조 주몽(추모왕)
(재위 B.C.37-B.C.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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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2대 유리명왕 추모왕의 공주 딸
(재위 B.C.19-A.D.18) (고여달과 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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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여율)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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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막래) 외증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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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차자 ↓3자 ↓4자 ↓5자 ↓(유리왕의 양자) 외고손
손자 도절 해명 3대 대무신왕 4대 민중왕 여진 재사(고씨)
(A.D.18-44) (A.D.44-48) (요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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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손자 5대 모본왕 (이상은 해씨로서 주몽 아들의 혈손)
(A.D.48-53) ( )는 왕위 재위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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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사 (이하는 고씨로서 추모왕의 딸 후손 재사의 혈손) 외고손자
↓ ( )는 왕위 재위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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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태조대왕 ?(실명) ?(실명) 외5세손
(A.D.53-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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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 차대왕 ?(실명) 외6세손
(A.D.146-165)
↓ ↓자
? 8대 신대왕 외 7세손
(A.D.165-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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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안 ?(실명) 외8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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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차자 ↓3자 ↓4자 ↓5자 외9세손
발기 9대 고국천왕 발기 10대 산상왕 계수
(A.D.179-197) (A.D.197-227)
↓자
11대 동천왕 외10세손
(A.D.227-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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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
12대 중천왕 예물 사구 외11세손
(A.D.248-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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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차자 ↓3자 ↓4자 ↓5자
?(실명) 13대 서천왕 달가 일우 소발 외12세손
(A.D.270-292) (안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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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자
14대 봉상왕 돌고 외13세손
(A.D.292-300)
↓자
15대 미천왕 외14세손
(A.D.30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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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차자
16대 고국원왕 무 외15세손
(A.D.331-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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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자
17대 소수림왕 18대 고국양왕 외16세손
(A.D.371-384) (A.D.384-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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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광개토왕(추모왕의 17세손) 외17세손
(A.D.392-413)
[참고]
대(代)와 세(世)
많은 사람들이 “○세(世)”와 “○대조(代祖)”, “○세손(世孫)”을 잘 구별하지 못하고 혼동하거나 혼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하여 명확히 해 두고자 한다.
족보를 따질 때는 “상대하세(上代下世)”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
위로 선조를 말할 때는 몇 대조(代祖)라고 말해야 하고,
아래로 후손을 말할 때는 몇 세손(世孫)이라고 말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는 호태왕비문에 "環至十七世孫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二九登祚號爲永樂太王(세월이 흘러 17세손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에 이르렀는데 18세에 왕위에 올라 영락태왕이라 하였다)"라는 기록에서도 그 예를 확인해 볼 수 있고, 또
삼국사기 신라본기 38대 원성왕 조에, "元聖王立 諱敬信 奈勿王十二世孫(원성왕이 왕위에 올랐는데 이름은 경신이고 나물왕의 12세손이다)"라는 기록에서도 그 예를 확인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