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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죽령(竹嶺) 서북쪽 500리 땅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 2011. 8. 7. 01:01

 윤여동설 - 죽령(竹嶺) 서북쪽 500리 땅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신라 선덕여왕 11년(A.D.642)에 백제의 침공을 받아 신라의 대야성이 함락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하여 대야성 도독인 김품석과 그의 아내 고타소가 백제군에 잡혀 죽게 되는데, 이때 죽은 고타소가 곧 김춘추의 첫딸이었다. 고타소가 목이 잘려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김춘추는 너무도 놀라 앞에 사람이 지나가도 모를 정도였다고 하고 이때 백제를 멸망시킬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김춘추는 백제를 멸망시켜 죽은 딸 고타소의 원한을 갚기 위해 고구려에 청병을 하러 가게 되는데, 그 때 고구려 보장왕이 말하기를,  “죽령은 본래 우리 땅이다. 네가 만일 죽령 서북쪽 땅을 돌려준다면 군사를 내어 주겠다” 고 했다는 것이다.

  원래의 고구려 땅을 이때 신라가 빼앗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삼국사기 개소문열전을 보면,

  개소문이 말하기를, “전일에 수나라 군사가 우리나라(고구려)를 침공했을 때에 신라가 그 틈을 타서 우리의 성읍 5백리를 빼앗아 갔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원수로 지낸지 이미 오래 되었으니 만약 신라가 우리의 땅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전쟁을 그만 둘 수가 없다”고 했다는 기록이 있어, 신라가 고구려와 수나라가 전쟁을 하는 고수전쟁 틈을 이용하여 고구려 땅 5백리를 빼앗았다는 것을 알게 하고, 연개소문이 이때 이러한 말을 한 역사적 배경은 고구려와 백제가 연합하여 신라에서 당나라로 가는 길을 막으려하자 신라는 위기감을 느끼고 643년 9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사실을 알리고 원조를 청하게 되고, 당 태종은 644년에 사농승 상리 현장을 고구려와 백제에 사신으로 보내 신라를 치지 말 것을 강요하자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그에 대답한 내용으로서 서기 612년에 수 양제가 100만 대군을 출동시켜 고구려를 침공하자 신라가 그 틈을 이용하여 고구려의 후방을 침공해 죽령 서북쪽 500리 땅을 빼앗아 이미 30년정도를 점거하고 있었고, 고구려가 그 땅을 되찾으려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같은 책 김유신열전 상을 보면,

  김춘추가 청병을 하기 위하여 고구려에 갔을 때 보장왕이 김춘추에게 “마목현(麻木峴)과 죽령(竹嶺)은 본래 우리나라 땅이니 만약 우리에게 돌려주지 못한다면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라고 했다고 기록되어 있음을 보면 죽령 서북쪽 땅이라는 곳이 결국 죽령으로부터 마목현에 이르는 지역임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죽령에 대한 기록은 훨씬 앞선 시기인 신라 8대 아달라이사금 5년(A.D.158) 조에 “봄 3월에 죽령을 개통하였다”라는 기록이 나타나고,

  고구려 11대 동천왕 20년(A.D.246) 조의 기록을 보면, 동천왕이 위나라 관구검의 침공을 받아 환도성을 함락 당하고 도망칠 때 “왕이 남옥저로 달아나다가  죽령(竹嶺 : 필자주 : 사실은 철령의 오기일 것이다)에 이르니 군사들은 거의 다 흩어져 없어지고..............” 라고 죽령이 언급되어 있기도 하다. 

  그런데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옥저(필자주 : 북옥저, 동옥저, 남옥저가 있었다)는 지금의 내몽골 적봉, 옹우특기, 객라심기  부근으로 비정되고, 환도성은 북경북쪽 발해진 부근, 평양성은 하북성 승덕시 부근으로 비정되며, 요녕성 조양, 금주, 호로도 부근이 신라의 중심강역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당시 동천왕은 지금의 북경 북쪽 발해진 부근에서 동북쪽으로 도망쳐 죽령(철령의 오기)에 이르렀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는 동천왕이 지금의 칠로도산산맥을 넘어 도망쳤다는 말이고, 그곳에는 지금 노로아호산(努魯兒虎山)이라는 산맥이 있다.

   이는 곧 지금의 노로아호산 부근이 옛 죽령이었을 가능성이 많고, 죽령 서북쪽 500리 땅이란 결국 죽령(竹嶺)과 철령(鐵嶺) 사이 지역을 말하는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어디인지 확실히 알 수 없었던 죽령 서북쪽 500리 땅의 위치를 비로소 처음으로 찾아낸 것이다.

   역사적 사실은 이러한데 많은 사람들은 지금 한반도 충북 단양에서 경북 풍기로 넘어가는 죽령(지금은 산 아래 터널이 뚫려 꼬불꼬불한 죽령을 넘으려면 일부러 샛길로 가야한다)을 삼국사기 기록 속의 죽령이라 알고 있다.

  삼국사기 기록 속의 사건들이 발생한 곳은 발해 북쪽 대륙인데, 그 기록을 한반도에 비정하여 해석하려 하는 것이다.

  그러니 한반도에서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역사적 장소를 찾을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반도식민사관으로는 우리 고대사의 진실을 아무 것도 밝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