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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순임금이 젊은시절 살았던 역산(歷山)과 뇌택(雷澤), 하빈(河濱)은 과연 지금의 어디일까? - 최초공개

윤여동 2012. 4. 21. 10:06

윤여동설 - 순임금이 젊은시절 살았던 역산(歷山)과 뇌택(雷澤), 하빈(河濱)은 과연 지금의 어디일까? - 최초공개


 

 

[순임금이 젊은 시절 살았다는 역산, 뇌택, 하빈(황하변) : 대청광여도]

 

맹자는 “순임금은 제풍(諸馮)에서 태어나 부하(負夏)에서 살다가 명조(鳴條)에서 죽었으니 동이사람이다” 라고 하였고,

 

☆ 순임금의 출생지 제풍은 지금의 산동성 곡부 부근이라 하고, 명조는 산서성 운성시 부근이라 하는데, 다른 기록에는 순임금이 남쪽지방을 순수하다가 동정호가 있는 지금의 호남성 악양시 부근에서 죽었다고도 하므로 순임금이 악양 부근에서 죽자 그 시신을 옮겨 명조에 장사지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의 산서성 운성시 북쪽에 순임금(제순유우)의 능이 있다.

 

사기에는 “순임금은 역산(歷山)에서 밭갈고, 뇌택(雷澤)에서 물고기를 잡았으며, 하빈(河濱: 황하변)에서 도자기를 구웠다”라고 전해지고 있으니 결국 순임금이 젊은 시절 고향인 제풍이라는 곳을 떠나 부하라는 곳으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농사도 짓고, 물고기도 잡았으며, 도자기도 구우며 살았다는 말로 이해해도 될 것이다.

 

 

☆ 순이 역산(曆山)에서 농사를 짓자, 역산의 사람들이 서로 경계를 다투지 않았고, 뇌택(雷澤)에서 물고기를 잡자 뇌택의 사람들이 그물을 내릴 자리를 서로 양보하였으며, 황하 변에서 그릇을 구우니 그릇이 이지러지지 않았다고 하고, 1년이 지나자 머무르는 곳이 마을을 이루었고, 2년이 지나자 고을을 이루었으며, 3년이 지나자 도회지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부하(負夏)라는 곳은 과연 지금의 어디일까?

  위 지도는 대청광여도라고 하는 청나라 때의 지도인데, 뇌택(雷澤)이라는 호수가 표시되어 있고, 그 북쪽에 역산(歷山)이라는 산도 있으며, 하택(夏澤)이라는 곳도 표기되어 있는데, 뇌택(雷澤)의 동쪽으로는 대야택(大野澤)과 제녕주(濟寧州), 연주부(兗州府) 등이 있고, 서쪽으로는 동명(東明)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황하(黃河)가 흐르고 있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어 위 지도상의 하택(夏澤)이라는 곳은 지금의 산동성 하택시(菏澤市)를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택(夏澤)”이 “하택(菏澤)”으로 글자만 바뀌어 있을 뿐이므로 지금의 산동성 하택시 부근을 부하라 할 수 있고 또 태공 망(강태공)이 태어난 곳도 지금 산동성의 임치라 하고, 그 역시 순임금과 같이 동이사람이라고 하니 지금 산동성 지역이 옛 동이 강역이었던 것은 틀림없는 듯하다.

  그런데 지금 산동성 하택시에서는 그곳이 옛날 순임금이 젊은 시절 농사도 짓고, 물고기도 잡고, 도자기도 굽고 살았던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장소라는 것을 모르는지 부하는 연주시에 빼앗기고, 역산은 제남시에 빼앗긴 채 순임금이 물고기를 잡았다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호수인 뇌택은 순임금과 아무 관련도 없어보이는 청년호라는 엉뚱한 이름으로 바뀌어져 있다.

  산동성 하택시가 대청광여도를 근거로 하택시가 옛날 순임금이 살았던 부하임을 확인하여 세상에 알리기만 해도 매스컴들은 서로 다투어 보도할 것이고, 그를 보려고 사람들이 물밀 듯이 찾아올 것이며, 하택시의 시민들도 순임금이 살던 곳이라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인데, 이를 모르고 있는 듯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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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동성 하택시 시가지 위성사진]<!--[endif]-->

 

 

 

 

 

 

 

 

 

 

      [순임금릉 대문 : 유우제순릉이라 씌여 있다]

 

 

                               [순임금릉]

 

 

  [포주고성유적지]

 

 

 

 

  [포주고성 발굴 당시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