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고죽국(孤竹國)과 백이숙제가 굶어 죽은 수양산(首陽山)의 위치
백이숙제의 나라 고죽국은 과연 지금의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일까?
주(周) 무왕이 은(殷)나라를 멸망시키자 기자(箕子)는 자신을 따르는 은나라 유민(遺民)들을 이끌고 고죽국(孤竹國)으로 갔고, 그러자 주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고 전하는곳이다.
사기 권61 백이열전 제1의 주를 보면,
“括地志云 孤竹古城在盧龍縣 南十二里 殷時諸侯孤竹國也(괄지지에 이르길 고죽고성은 노룡현 남쪽 12리에 있다. 은나라 때의 제후 고죽국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전한서 권28하 지리지 제8하 요서군 영지현 조를 보면,
“令支 有孤竹城 莽曰 令氏亭 應劭曰 故伯夷國 今有孤竹城(영지현에 고죽성이 있다. 왕망은 영씨정이라 했다. 응소는 옛 백이국으로서 지금 고죽성이 있다고 했다)”고 기록되어 있고,
후한서 지리지 제23 군국5 요서군 영지현 조에도,
“令支 有孤竹城 伯夷叔齊本國(영지현에 고죽성이 있다. 백이숙제의 본국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통전 권178 주군8 평주 조를 보면,
“平州 今理盧龍縣 殷時孤竹國 春秋山戎肥子二國地也 今盧龍縣 有古孤竹城 伯夷叔齊之國也 戰國時屬燕, 秦爲右北平及遼西二郡之境 二漢因之 晉屬遼西郡 後魏亦曰遼西郡 隋初置平州 煬帝初州廢 復置北平郡 大唐因之 領縣三(평주는 지금의 노룡현으로 이해된다. 은나라 때의 고죽국으로서 춘추때는 산융, 비자 두 나라 땅이었다. 지금 노룡현에 옛 고죽성이 있고, 백이숙제의 나라이다. 전국시대 때는 연나라에 속했고, 진(秦)나라 때는 우북평과 요서 두 군의 경계였다. 전한과 후한은 그대로 따랐고, 진(晉)나라 때는 요서군에 속했다. 후위 때는 역시 요서군에 속했고, 수나라 초기에 평주를 설치했다가 양제가 평주를 폐하고 다시 북평군을 설치했다. 당나라는 그대로 따랐고 영현이 셋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한나라 때의 요서군 영지현, 수나라와 당나라 때의 평주, 북평이 곧 전설 속의 나라 고죽국이었음을 알 수 있고, 다시 노룡현으로 지명이 바뀌었음을 알게 한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은 지금 하북성 난하 변에 있는 "노룡(盧龍)"이라는 곳을 옛 고죽국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중국에서도 그곳을 옛 고죽국이라고 하고 있으나 이는 후대 지명의 이동으로 인한 착각일 뿐이다.
지금의 진황도 노룡현은 고죽국이 아니라 고조선이었고 삼한이었고 대륙백제 땅이었다.
옛 백이, 숙제의 나라 고죽국은 지금 하북성 탁주 부근으로서 옛날 은나라 때는 그 부근까지가 고조선의 땅이었다.
☆ 고죽국의 위치에 대하여, 진황도노룡설, 산해관부근설, 내몽골 적봉시 객라심좌익(객좌)설, 요녕성조양설 등도 있는데, 고죽국의 위치를 잘못 비정함으로써 후대의 역사해석도 잘못하게 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위 대청광여도를 보면 “雷首山 一名 首陽山(뇌수산 일명 수양산)”이라고 표기되어 있고, “白夷叔齊墓(백이숙제묘)”라고도 표기되어 있어 이곳이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뜯어 먹고 살다가 죽었다는 역사의 현장임을 알게 한다.
그러자 어떤 사람은 이렇듯 수양산과 백이숙제묘가 있자 그 부근이 고죽국이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한마디로 바보같은 주장이다. 왜냐하면 백이와 숙제는 서로 왕위를 양보하다가 둘이 함께 고죽국을 떠나 지금의 섬서성 서안 부근에 위치하고 있던 주나라의 서백 창을 찾아 갔으나 이미 서백 창은 죽고 그 아들인 주 무왕이 은나라의 마지막 도읍인 조가(朝歌 : 현 하남성 기현 조가진)를 침공하려 하기 때문에 그를 말렸으나 듣지 않자 도가 무너진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겠다고 하면서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뜯어 먹다가 굶어 죽었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때 백이와 숙제는 주 무왕을 만난 후 고죽국으로 돌아갔던 것이 아니라 주나라의 도읍인 호경(현 서안)에서 가까운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뜯어 먹었으므로, 후세 사람들이 고사리는 주나라 땅에서 난 것이 아니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던 것이다.
☆ 백이과 숙제는 고죽국을 출발하여 주나라의 도읍이었던 호경 즉 지금의 섬서성 서안 부근을 향하여 가다가 은나라의 마지막 도읍인 조가를 치기 위하여 가던 주 무왕을 만났다고 한다. 따라서 백이숙제와 주 무왕이 만났던 곳은 지금의 낙양 북쪽 맹진 부근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