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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고대의 태백산(太白山)은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윤여동 2013. 2. 16. 10:28

윤여동설 - 고대의 태백산(太白山)은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후한서 읍루전을 보면,

  “읍루는 옛 숙신국이다. 부여의 동북쪽 1천여리에 있는데, 동쪽은 대해에 닿고 남쪽은 북옥저와 접했으며, 북쪽은 그 끝을 알 수 없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신당서 흑수말갈전을 보면,

  “흑수말갈은 숙신(肅愼) 땅에 사는데, 또한 읍루(挹婁)라고도 하고, 원위 때에는 물길이라고도 했다.

직선으로 경사(장안)에서 동북쪽으로 6천리에 있는데, 동쪽은 바다에 접하고, 서쪽은 돌궐에 닿았으며, 남쪽은 고구려, 북쪽은 실위와 접했다.

  수십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추장들이 각각 자치적으로 다스린다.

  잘 알려진 것이 속말부로서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태백산(太白山)에 이른다. 도태산(徒太山)이라고도 하는데, 고구려에 접했다.

속말수에 의지해 사는데, 이 강의 수원은 (태백)산 서쪽에서 흘러나와서 북쪽으로 타루하로 흘러 들어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왜 흑수말갈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을까?

    이는 그들이 흑수를 중심으로 그 주변에 넓게 퍼져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특히 흑수말갈은 주변국의 우환거리였는데, 이는 흑수말갈족의 성질이 사납고 활을 잘 쏘았으며, 억세고 보병전을 잘했기 때문이었다.

  삼국지 동옥저전을 보면,

  “북옥저는 일명 치구루라고도 하는데, 남옥저와는 8백여리 떨어져 있다. 그들의 풍속은 남과 북이 모두 동일하며 읍루와 접해 있다.

  읍루는 배를 타고 다니며 노략질하기를 좋아하므로, 북옥저는 그들을 두려워하여 여름철에는 깊은 골짜기의 바위굴에서 살면서 수비하고, 겨울철에 어름이 얼어 뱃길이 통하지 않으면 내려와 촌락에서 생활한다”고 기록되어 있음을 볼 때 주변국이 골칫거리로 여길 만 했다고 생각된다.

  흑수말갈을 힘으로 통제할 방법이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그들은 지금의 어디에서 살았던 것일까?

  우리의 역사상식처럼 한반도 동북쪽 흑룡강 하류에서 살았을까?

  아니다. 그들은 지금의 대흥안령을 중심으로 살았던 민족이었다.

  말갈 중에서도 가장 북쪽에 위치한 부족이 흑수말갈이었고, 가장 남쪽에 위치한 부족이 속말말갈이었는데, 이 속말말갈이 대중상과 대조영이 세운 나라 발해의 중심부족이었고, 남쪽 국경이 태백산(도태산)에 닿았다고 하였다.

  도태산(태백산)에 대하여 수서 말갈전을 보면,

  “도태산이라는 산이 있어 풍속에 매우 숭상하고 경외한다. 산속에는 곰, 큰곰, 표범, 이리 등이 있으나 모두 사람을 해치지 않으며, 사람도 이들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북사 물길전에도,

  “그 나라의 남쪽에 종태산[從太山 : 徒太山(도태산)의 오기]이 있는데, 중국말로 태황(太皇)이라는 뜻이다. 풍속에 그 산을 매우 경외하여 사람들이 산 속에서 소변이나 대변을 보지 않고, 그 산을 지나가는 사람은 오물을 담아가지고 간다. 산 속에는 곰, 큰곰, 표범, 이리가 있으나 모두 사람을 해치지 않으며, 사람들 역시 그들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속말말갈족들이 태백산을 매우 신성하게 여기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환웅천왕이 태백산 꼭대기로 내려왔다고 하고, 말갈족들이 태백산을 신성하게 여기고 있었다는 것은 말갈족들도 환웅천왕이 세운 나라 신시의 백성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장안(지금의 섬서성 서안)으로부터 동북쪽으로 5-6천여리 떨어져 있었을 태백산(도태산이라고도 한다)은 지금의 어느 산을 말하는 것일까?

  필자가 보기에는 지금의 내몽골 정람기 동북쪽 대광정자산(大光頂子山, 2,067m)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