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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원래의 탁록(涿鹿)은 지금의 하북성 탁주(涿州) - 최초공개

윤여동 2014. 5. 17. 07:35

 

윤여동설 - 원래의 탁록(涿鹿)은 지금의 하북성 탁주(涿州) - 최초공개

 

 

  탁록벌판(涿鹿之野)은 그 옛날 치우천왕과 황제헌원이 국운을 걸고 전쟁을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는 매우 유명한 곳이다.

  그리하여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 위치를 알고 싶어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 탁록이 어디인지 위치를 잃어버렸다.

 

☆ 지금 중국에서는 북경 서북쪽 관청수고 부근에 있는 지금의 탁록현을 바로 치우천왕과 황제헌원이 다투었던 탁록이라고 하며, 중화삼조당을 세워 관광지로 개발해 놓고 있는데, 그곳은 원래 지명이 보안현(保安縣)으로서 1916년에 이르러 탁록현으로 이름을 바꾼 곳이다. 가짜 탁록이다.

 

  그런데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원래의 “탁록(涿鹿)”이라는 곳은 지금의 북경 서남쪽에 위치한 하북성 보정시 “탁주(涿州)” 부근으로 비정된다.

 

 

 규원사화 단군기를 보면,

  “......이때 단군의 교화가 사방에 두루 미치게 되어 북쪽으로는 대황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알유를 거느리고, 남쪽으로는 해대에 이르고, 동쪽으로는 창해에 닿았다..................

  천하의 땅을 나누어 공적에 따라 나누어 주었는데, 치우씨의 후손에게는 서남쪽의 땅을 주었는데, 들이 넓고 바다와 하늘이 푸르러 남국(藍國)이라 하고..........신지씨의 후손에게는 동북쪽의 땅을 주니 산하가 웅장하고 풍기가 굳세어 숙신(肅愼)이라 했으며..............고시씨의 후손에게는 동남쪽의 땅을 주었는데, 산하가 아름답고 초목이 무성하여 청구국(靑丘國)이라 하였으며..............주인씨의 후손에게는 개마국을 주고, 여수기는 예의 임금을 삼았다. 부소, 부우, 부여는 모두 서쪽 땅을 주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 후일 남국은 요동이 되었고, 청구국은 삼한 즉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이 되었다.

 

  그런데 앞선시대에 탁록의 벌판에서 황제헌원과 다투었다는 사람이 다름 아닌 치우천왕이었는데,

  고조선 시대에 이르러 단군 왕검께서 바로 그 치우천왕의 후손을 고조선의 서남쪽 땅 남국(藍國)의 제후로 봉하는 것이다.

  이는 남국이 원래 치우천왕의 나라이었는데(혹시 치우천왕의 고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고조선 때에 이르러 단군왕검이 그곳을 제후국으로 삼고 치우천왕의 후손을 제후로 봉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규원사화에는 또,

  “치우씨에게 남국을 주고, 선조의 뜻을 이어 백성을 어루만지게 하여 생업을 즐겁게 하고, 전쟁에 대비하여 훈련을 하니 언제나 서남쪽의 방패가 되었다. 그리고 백성들이 자주 해대(海岱) 땅으로 옮겨가니 후세에 항상 중국의 여러 나라와 승부를 겨루게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 위 기록을 한반도에 적용할 경우, 치우씨의 남국이 충청, 전라도 지역에 배치되어 이상한 기록이 되고 만다. 그러나 북경 부근을 고조선의 남국으로 놓고보면 기록이 아주 정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국이 고조선의 서남쪽에 위치했고, 방패역할을 하였으며, 항상 중국의 여러 나라들과 승부를 겨뤘다고 하였다.

  그런데 고조선의 왕검성이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부근으로 비정되므로 그 서남쪽이라면 지금의 북경[필자주 : 고대의 요동이다] 부근에 해당되는데, 남국에 대한 규원사화의 기록과 정확히 부합한다.

  옛 치우천왕의 나라가 지금의 북경[고대 요동군]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옛날 북경 부근을 다스리고 있었을 치우천왕이 넓은 평원지역으로 뻗어나갈 곳은 서남쪽 방향인데, 그곳에 탁주(涿州)가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 위치를 알 수 없었던 탁록벌판은 지금의 북경 서남쪽 하북성 탁주시 부근을 말하는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