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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남천정(南川停)과 금돌성(今突城)의 위치찾기

윤여동 2014. 9. 12. 21:20

윤여동설 - 남천정(南川停)과 금돌성(今突城)의 위치찾기

 

 

 

 

 

 

 

  삼국사기 신라본기 태종무열왕 7년(A.D.660) 조를 보면,

  나당연합군의 백제침공로가 나타나는데, 이때 신라군의 진격로 중 남천정(南川停)과 금돌성(今突城)이 있다.

  기록을 보면,

『여름 5월 26일에 왕이 유신, 진주, 천존 등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서울(금성)을 출발하여 6월 18일에 남천정(南川停)에 머물렀다.

  소정방은 내주(萊州 : 지금의 산동반도)로부터 떠나는데 전선이 천리를 잇달아 물길을 따라 동쪽(필자주 : 서북쪽의 오기이다)으로 왔다.

  6월 21일에 왕이 태자 법민으로 하여금 병선 1백척을 거느리고 덕물도에 가서 소정방을 맞게 하였다.

  소정방이 법민에게 말하기를 “나는 7월 10일 백제에 도착하여 (사비의) 남쪽에서 대왕의 군사와 합류하여 의자의 도성을 치려고 한다” 하였다................(중략)....................

  법민이 돌아와 정방의 군사가 매우 장하더라고 고하니 왕이 매우 기뻐하였다.

  다시 태자(법민)와 대장군 유신과 장군 품일과 흠춘(흠순이라고도 한다) 등으로 하여금 정병 5만을 거느리고 응하도록 하고 왕은 금돌성(今突城)에 머물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 신라군의 백제 침공일정표

 

660년 5월 26일 : 태종무열왕 김춘추 등이 이끄는 신라군 서라벌(금성) 출발

6월 18일 : 남천정 도착

6월 21일 : 태자 김법민 덕물도에서 소정방 만나 7월 10일에 기벌포에서 합류하기 로 약속하고 돌아와 왕에게 상황 보고

일자미정 : 신라군 이동 금돌성 도착(왕은 금돌성에 머무름)

일자미정 : 김유신 등이 이끄는 신라군 금돌성을 출발하여 진격(탄현 통과)

7월 9일 : 황산벌 전투

7월 10일 : 나당연합군 기벌포 합류예정일

7월 11일 : 신라군 기벌포 도착(신라군이 하루쯤 늦게 도착했던 듯하다)

7월 12일 : 나당연합군 소부리벌로 진격 사비성 공격

7월 13일 : 밤에 의자왕이 웅진으로 도망

7월 18일 : 의자왕이 웅진방 령군 등을 이끌고 사비로 와서 항복

[웅진방 령군 예식(예식진)이 의자왕을 잡아와서 항복하게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다]

7월 29일 : 태종무열왕 김춘추 금돌성으로부터 사비성 도착

8월 2일 : 승전연회(의자왕으로 하여금 술을 따르게 함)

 

☆ 지금 반도사관론자들은 남천정을 한반도 경기도 이천부근에, 금돌성을 경북 상주부근에 비정하는데, 이는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당시 신라의 도읍 서라벌(금성)에서 출발하여 백제의 도읍 사비로 향한 태종무열왕 김춘추가 5만의 군사를 이끌고 엉뚱하게도 경기도 이천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 경상북도 상주에 머물렀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백제의 마지막 도읍 사비는 지금의 하북성 당산시 난현(난주)이었고, 신라의 천년도읍 서라벌(금성)은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부근이었다.

  그렇다면 위 기록 속 신라 29대 태종무열왕 김춘추가 백제 사비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금주시(錦州市) 부근을 출발하여 서남쪽으로 향하여 호로도시, 흥성, 수중을 지나고 산해관을 통과하여 진황도, 무녕을 지나 갈석산 북쪽 고개를 넘어 백제의 도읍 사비를 향하여 행군해야 한다.

  따라서 태종무열왕 김춘추가 머물렀다는 남천정(南川停)은 지금의 요녕성 수중(綏中)부근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되고, 금돌성(今突城)은 진황도시 부근으로 비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