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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백제는 대방고지(帶方故地)에서 건국되지 않았다 - 최초주장

윤여동 2014. 9. 19. 08:51

윤여동설 - 백제는 대방고지(帶方故地)에서 건국되지 않았다 - 최초주장

 

 

 

 

  백제의 건국지를 말할 때 일반적으로 “대방고지(帶方故地 : 대방옛땅)” 또는 “패대지간(浿帶之間 : 패수와 대수 사이지역)” 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백제는 대방옛땅에서 건국되지 않았고, 패수(浿水)와 대수(帶水) 사이에서 건국되지도 않았으며, 대수와 패수를 건넌 진번(眞番) 남쪽 한산(漢山) 부근에서 건국되었다.

 

 

☆ 한사군 중 진번군의 설치위치에 대하여 논란이 있는데, 북한산이 위치하고 있는 그 북쪽 부근이 진번군이었다.

 

 

  수서 백제전을 보면,

  “동명의 후손에 구태라는 자가 있었는데, 매우 어질고 신의가 두터웠다. 비로소 대방고지(帶方故地)에 나라를 세웠다. 한 나라 요동태수 공손도의 딸을 아내로 삼았는데, 나라가 점점 번창하여 동이 중 강국이 되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북사 백제전에도,

  “동명의 후손에 구태가 있었는데 매우 어질고 신의가 있었다. 비로소 대방고지(帶方故地)에 나라를 세웠다. 한나라 요동태수 공손도의 딸을 시집 보냈는데 마침내 동이 중 강국이 되었다”라고 동일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 중국 사서들의 기록을 보고는 백제가 “대방고지(대방옛땅)”에서 건국되었다고 이해하게 되었을 것인데, 사실 백제는 대방고지에서 건국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대방은 곧 대수와 패수 사이 지역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삼국지 한전을 보면, “(후한) 환제와 영제 말기에 한과 예가 강성하여 군현에서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여 군현의 많은 백성들이 한국으로 흘러 들어가자 건안 중(A.D.196-220)에 공손강이 (낙랑군) 둔유현 남쪽의 황무지를 나누어 대방군으로 만들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대방군의 최초 설치시기를 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삼국사기 백제본기 시조 온조왕 조를 보면, 백제의 건국설화가 두 가지 형태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 하나에는 “비류와 온조는 태자(유리)에게 용납되지 못할까 염려하여 드디어 오간, 마려 등 열 명의 신하를 이끌고 남쪽지방으로 떠나니 백성들 중에서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리하여 한산(漢山)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 살만한 곳을 살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하나는 비류가 말하기를 “............차라리 어머니를 모시고 남쪽지방으로 가서 땅을 선택하여 따로 나라를 세우는 것이 낫겠다 하고는 드디어 그의 아우와 함께 무리들을 이끌고 패수와 대수 두 강을 건너 미추홀에 이르러 살았다.[渡浿帶二水 至弥鄒忽以居之]” 라고 기록되어 있어 백제의 초기 건국지가 패대지간이 아니라 대수와 패수를 건넌 곳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곳이 바로 백제의 한산(漢山), 북한산 부근의 땅이었다.

 

 

  비류와 온조는 그 어머니 소서노와 함께 졸본을 떠나 대수와 패수(대수와 패수 사이 지역 바로 이곳에 후일 대방군이 설치되었다)를 건너 진번 남쪽 한산 아래 미추홀에서 살다가 한산 부아악에 올라 도읍할 곳을 둘러보고, 비류는 미추홀로 돌아갔고, 온조는 한산 아래 위례성에 도읍하였는데, 이가 곧 백제의 시작이었다.